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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각하고 기억하는 동물이다.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자꾸 없어진다. 굳이 기억하지도 않아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불과 십몇 년 전만 하더라도 기억력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인간의 핵심 기능이었다.

수첩을 들고 다니며 생각나는 것을 적고 친구나 거래처의 전화번호를 암기했다.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 카세트 라디오의 재생과 정지 버튼 누르기를 반복하며 가사를 적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외웠다. 낯선 길을 찾아갈 때는 몇 차례 길을 멈추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쪽지를 보여주며 이곳을 가려면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그것도 안 되면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고 방문하고자 하는 이와 통화하고 나서 나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노래방이 나오고 나서 사람들은 더 이상 노래 가사를 외우려 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이 나오고 나서 사람들은 더 이상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거나 이정표를 꼼꼼하게 쳐다보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나서 사람들은 굳이 힘들게 외우고 생각하고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다. 궁금한 것을 옆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고, 전화해서 나의 위치를 파악할 필요도 없다. 가족과 친구의 생일과 각종 기념일과 일정을 기억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스마트폰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에서 사람들은 쉽게 세상의 일을 알게 되었지만 그만큼 쉽게 잊었다. 쉽게 분노하지만 쉽게 잊힌다.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정작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실이 너무나 쉽게 잊힌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세월호의 진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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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 부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이 사고로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은 아직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다. 벌써 2년이 지났다. 시간의 흐름과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이지 않지만 누군지는 다 아는 사람들의 방해 속에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2차 청문회가 지난 3월 28일 열렸지만 지상파 방송이나 각종 언론에서 이 뉴스를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이 청해진 해운의 지시였음을 밝혀지고 청해진 해운과 국정원과의 관계 등 새로운 의혹이 나왔음에도 일부 매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외면했다.

20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임을 감안하더라도 언론들의 외면은 너무 심하다. 지난 2년간의 유가족들의 세월호 진상 규명의 요구는 지금도 변함이 없으나 정부와 언론은 무관심과 외면으로 세월호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고 있다.

사회적 강자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돈과 권력이지만 사회적 약자가 부당한 돈과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무기는 기억과 행동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의 생명력은 점점 더 짧아지고 쉽게 소멸한다.

많은 사람들은 2년 전의 세월호 참사를 어느덧 아득한 옛일로 느낀다. 진실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고 밤을 새웠던 목소리는 이제 조용하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진도 팽목항을 찾고 대통령도 합동 분향소를 찾았지만 그것은 진실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하나의 몸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임기에 만든 세월호진상규명법에 따라 만들어진 세월호 특조위의 공식 활동 기간은 올해 6월 30일까지이다. 세월호진상규명법 제7조는 위원회의 활동 기간을 '그 구성을 마친 날부터 1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필요한 경우 6개월 이내에서 연장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1일 출범 당시 위원장 등 상임위원들은 임명장도 받지 않은 상황이었고 120명의 직원이 모두 출근한 것은 지난해 7월 27일이었다. 더구나 여당 추천 상임위원 2명은 총선에 나가기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하며 사퇴했고, 고영주, 차기환 위원은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 조사에 반발해 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 태극의열단, 어버이연합, 고엽제 전우회 등의 보수 단체들은 세월호 특조위 해체 시위를 하고 있다.

또한 보수 언론들은 본질과는 거리가 먼 보도로 진실규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진실을 밝히고자 만든 특조위 내부에서 진실을 방해하는 세력이 포진하고 정부와 여당은 이를 묵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을 밝혀내기란 힘든 상황이다.

기억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아마도 아이들의 첫 투표였을 테죠.
 아마도 아이들의 첫 투표였을 테죠.
ⓒ 계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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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이면 특조위의 활동 기간은 끝나고 세월호 인양작업은 7월에 이루어진다. 핵심 증거가 국민들 앞에 나타나지만 그 핵심 증거를 살펴보고 조사할 특조위는 없어진다. 특조위 관계자는 총선이 끝난 직후 여야에 활동 기간 연장을 요청하겠다고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새누리당의 압승이 예상되고 있고 총선 이후 야권에게 기대하는 건 더 어려워진다. 인양된 세월호 선체는 진실의 증거가 아니라 '아픔의 기억'이 될 가능성이 높다.

4월 13일은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이다. 그리고 4월 16일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13일은 세월호 사건이 아니었다면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헛된 외침을 믿고 조용히 세상을 떠난 그 청춘들이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첫 투표를 하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 하는 투표에 들떠 SNS에 인증샷을 올리고 친구들끼리 웃고 떠드는 그저 평범한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힘이 없는 평범한 시민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기억과 그에 따른 행동밖에 없다. 세월호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세월호의 진실을 거부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금 그 행동은 '투표'다. 그래야 진실에 반걸음이나마 다가설 수 있는 기회라도 가질 수 있다.


태그:#세월호, #기억,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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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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