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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 꾸미기
 결혼식장 꾸미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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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의 자이피 팰리스 호텔은 정원이 잘 가꿔진 일류 호텔이다. 그곳에서 하루를 묵으며 아침 산책을 하다 보니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다. 정원 입구부터 꽃으로 치장하고, 나무에까지 꽃과 인형, 장신구들이 치렁치렁 걸렸다. 인형은 신랑과 신부도 있고, 신부로만 이루어진 것도 있다. 동물로는 코끼리, 낙타, 공작새가 보인다. 힌두교 상징인 만자(卍)문을 새겨 넣은 앵무새도 보인다. 이들 모두 상서로운 동물이다.

연단은 온갖 꽃으로 치장한다. 그곳이 결혼식장이 될 것이다. 연단 앞으로 의자를 놓아 결혼식 하객들이 앉을 수 있게 한다. 뒤쪽으로는 잔치에 대비해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식탁을 배치하고 있다. 결혼식은 점심 때쯤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아그라성을 보고 카주라호로 가야 하기 때문에 결혼식 장면을 볼 수 없다. 준비가 대단한 것으로 보아 부유한 사람의 결혼식이 틀림이 없다.

인도와 한국의 딜쿠샤 이야기

인도의 틸쿠샤
 인도의 틸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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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Dilkusha)는 우르두(Urdu)어로 '마음의 행복' 또는 '마음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우르두어는 무굴제국의 지배계급이 쓰던 언어로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지역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그 딜쿠샤가 델리에도 있고, 럭나우(Lucknow)에도 있다. 델리에는 쿠틉 미나르가 있는 메라울리 지역에 딜쿠샤가 있다. 영국인 메트칼프 경(Sir Thomas Theophilus Metcalfe, 1795~1853)이 정원을 갖춘 주말 별장으로 만들었다.

이 건물은 인도식과 영국식이 가미된 특이한 양식으로 지어져 인도로 신혼여행을 오는 부부에게 임대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메트칼프 경은 동인도 회사에 근무하며 무굴제국 황실의 자문역을 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딜쿠샤는 럭나우에 있다. 이 건물은 영국 관리들의 숙소로 1800년경 지어졌다. 지금 현재 이 건물은 우타 프라데시 지방정부 소유다.

서대문구 행촌동의 딜쿠샤
 서대문구 행촌동의 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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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내가 본 딜쿠샤는 서울 서대문구 행촌동에 있다. 1923년에 알버트 테일러(Albert Wilder Bruce Taylor, 1875~1948)와 메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 1889~1982) 부부의 저택으로 지어졌다. 이 건물에는 딜쿠샤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것은 아내인 메리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인도에서 만나 1917년 6월 뭄바이 토마스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므로 인도를 여행하며 본 딜쿠샤에서 그 이름을 따왔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딜쿠샤는 처음 지어질 때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지금까지도 무단점유 건물로 남아 있다. 알버트와 메리 부부는 1942년 일본 정부로부터 강제 추방을 당할 때까지 딜쿠샤에서 살았다. 1941년부터 알버트는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을 떠날 것을 강요받았지만,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아 서대문 형무소에 6개월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알버트는 1948년 죽었고, 그의 시신은 아내 메리에 의해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Dilkusha 1923 글씨
 Dilkusha 1923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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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된 메리는 이후 한국에서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 남편 알버트보다 더 유명해졌다. 1956년 한국의 호랑이 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호랑이 발톱>(The Tiger's Claw)이라는 책으로 남겼고, 그녀가 죽은 지 10년 후인 1992년 그녀의 자서전적인 기록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가 발행되었다. 이 책을 발간한 아들 브루스(Bruce Tickell Taylor, 1919~2015)도 2010년 <은행나무 옆의 딜쿠샤: 역사적인 나무 옆 우리 집>(Dilkusha by the Ginkgo Tree)이라는 책을 냈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딜쿠샤 옆에는 권율 도원수 집터가 있다. 그리고 책 제목처럼 집 앞에 은행나무가 있다. 딜쿠샤의 벽에는 'DILKUSHA 1923 PSALM CXXVII. I'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시편 127장 1절의 문구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딜쿠샤 벽에 걸려 있는 옛 사진과 시편 내용
 딜쿠샤 벽에 걸려 있는 옛 사진과 시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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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 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현재 딜쿠샤의 벽에는 딜쿠샤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과 시편 문구를 새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나는 지난 1월 딜쿠샤를 방문했고, 그런 인연으로 인도의 딜쿠샤와 한국의 딜쿠샤가 갖는 연결고리를 찾아보고자 노력했다. 이들 건물 사이에 건축학적 유사성은 없지만, 집주인들이 그곳에서 마음의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이드를 통해 알게 된 시크교 이야기

시크교도인 꿀빈더 싱이 아그라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크교도인 꿀빈더 싱이 아그라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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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 동안 날씨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인도의 겨울은 일교차 때문인지 안개가 많아 일출을 보기 어려웠고, 낮에도 파란 하늘을 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인도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하고 알게 되었다. 우리를 안내한 꿀빈더 싱(Kulvinder Singh)은 8일 동안 인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시크교도로 늘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다녔다. 그것도 패션이라고 매일 터번의 색깔을 바꾸는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는 시크교도여선지 시크교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시크교도 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크교의 역사와 특성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시크교는 15세기 인도의 펀잡 지방을 중심으로 생겨난 유일신교다. 신앙과 명상, 진실한 삶이라는 기본 가치 외에 인류 평등, 사회 정의, 정직한 행동 같은 이념적인 문제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크교도인 라자스탄 왕이 코끼리를 탄 모습
 시크교도인 라자스탄 왕이 코끼리를 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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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Guru)로 불리는 선지자 나낙(Nanak, 1469~1539)에 의해 시크교의 가르침이 정립되었으며, 이후 10명의 후계자에 의해 가르침이 추가되고 완성되었다. 이들의 말씀이 현재는 구루 그란트 사힙(Guru Granth Sahib)이라는 책으로 편찬되어 경전 역할을 하고 있다.

구루 나낙은 1500년부터 1524년까지 인도뿐 아니라 미얀마에서 아라비아 반도까지 여행하면서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교리를 연구했다. 그리고  이슬람교에 토대를 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시크교가 이슬람교처럼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도도 무슬림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 나는 누구의 길을 따라야 할까? 나는 신의 길을 따라 갈 것이다. 신은 힌두교도도 아니고 무슬림도 아니다. 내가 따르는 길은 신의 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구루는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의 화신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고, 단지 빛나는 영혼(an illumined soul)일 뿐이다. 그러므로 구루 나낙은 신에 대한 헌신과 사랑인 박티(Bhakti)를 강조하고, 진실성을 추구하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이며 실용적인 삶을 요구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다음 세 가지를 실천하라고 말한다.

1. 다른 사람과 나눠라.
2. 정직하게 살아라.
3. 신의 이름으로 명상하라.  

바라나시 가트에서 만난 인도 사람들

힌두교 사두
 힌두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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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바라나시 가트를 찾는 걸까? 우리는 관광 목적으로 가트를 찾았다. 가트에서 벌어지는 강가 아르티를 보고 화장 장면을 보고, 가트를 찾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도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과 행동거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가트까지 사람을 실어다 주는 릭샤꾼, 물건을 팔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 수행에 몰두하는 힌두교 사두들, 단체로 성지순례를 와서 기도하는 힌두교도들, 이들 모두는 각자 자기 직분에 충실했다.

힌두교 사두는 팬티만 입고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 있다. 소위 화두라는 걸 들고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단체로 성지순례를 온 힌두교도들은 가트에 앉아 기도하고 저녁을 먹기도 한다. 밥에 반찬이 두 가지인 1식 2찬의 간소한 음식이지만 그들은 감사히 먹는다. 그들 모두 잠은 어디서 잘지 궁금하다. 바라나시 풍경을 그린 그림을 파는 예술가도 있다. 수채화인데 그림의 수준이 상당해 보인다.

바라나시로 성지순례를 나선 사람들
 바라나시로 성지순례를 나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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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에는 장례를 집행하는 사람과 가족이 함께 있다. 또 이 장면을 구경하는 현지인과 관광객이 있다. 가까운 곳에서는 화장 장면을 못 찍게 하는 등 통제가 심한 편이다. 그곳에는 또 메리골드 꽃을 먹으며 어슬렁거리는 소도 있다. 나는 인도 사람들이 주검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볼 수 있었다. 매장을 하건 화장을 하건, 장례식은 슬프고 또 경건하다. 

<카마수트라> 우리말 번역을 도대체 누가 한 거지?

인도에서 판매되는 한글판 <카마수트라> 책
 인도에서 판매되는 한글판 <카마수트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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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주라호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카마수트라>(Kama Sutra) 책을 한 권 샀다. 미탈 출판사(Mittal Publishing)에서 나온 것을 우리말로 번역해 2104년에 발행한 것이다. 그런데 번역이 엉망이어서 도저히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누가 번역한 걸까? 이 책은 카주라호 관광 안내서를 사는 과정에서 덤으로 얻은 것이어서 그때는 내용을 살펴볼 틈이 없었고, 나중에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사랑을 시작하려면 애인 은혜와 진미를 진행합니다. 그 꽃으로 장식되었으며 향수와 함께 향기로운 만든 기쁨 방에 있는 여자가 나타납니다. 친구와 하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는 여자가 다과와 음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왼쪽에 자리해야 그녀와 그의 오른쪽으로 그녀를 포옹, 장난스럽게 그녀의 머리와 끝부분 또는 그녀의 의류의 매듭을 건드렸다. 그럼 그들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재미있는 대화를 하고 수행한다."

카주라호 사원의 카마수트라 조각
 카주라호 사원의 카마수트라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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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수트라>는 인도사람들의 섹스 과정과 방법을 설명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여기서 카마는 성적인 욕망(심리적 즐거움)을, 수트라는 경전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섹스의 방법론뿐 아니라 사랑의 속성, 즐겁게 사는 방법, 가정생활 등에 대해 품위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바츠야야나(Mallinaga Vatsyayana)로 알려졌지만, 그도 역시 기존에 전해오던 책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첨가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카마수트라>는 기원전 400년경 문자로 정착되었고, 기원후 200년까지 내용이 첨가 수정 보완되어 완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바츠야야나의 <카마수트라>는 7부 36장 1250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1부 2장 14행을 보면 다음과 같다.

"도덕적 올바름(Dharma)이 경제적 성공(Artha)보다 더 중요하다. 경제적 성공이 심리적 즐거움(Kama)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나 왕에게는 경제적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경제적 성공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즐거움은 일반 여성들을 사로잡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카마를 다르마와 아르타보다 더 중요시한다. 이들처럼 일반적인 규칙에도 예외가 있다."

힌두교에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목표가 네 가지다. 앞에 언급한 다르마, 아르타, 카마에 모크샤(Moksha)가 더해진다. 모크샤는 정신적 해탈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네 가지가 서로 갈등을 겪을 경우 우선순위가 있다. 다르마가 아르타보다 중요하고, 아르타가 카마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최종 목표는 모크샤다.

모크샤의 상징 사라스와티 여신
 모크샤의 상징 사라스와티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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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3회를 마지막으로 [북인도 라자 문화기행] 연재를 마친다. 이번 기사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정리했다. 이번 연재에서는 인도 국립박물관의 전시물을 통해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본 것이 가장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족하지만 인도의 종교 즉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와 그 문화유산을 정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음에 자유여행을 하면서 인도를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길 기대한다.



태그:#인도 여행, #결혼 준비, #딜쿠샤, #시크교, #카마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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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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