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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마실을 아이들하고 나간 다음에 집으로 돌아올 적에 두 군데에서 군내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한 곳은 읍내 시외버스역이고, 다른 한 곳은 읍내이면서도 읍내 거의 끝자락입니다. 읍내 시외버스역은 늘 사람이 붐비고 차가 많을 뿐 아니라, 우리가 쉬거나 앉을 만한 자리도 없습니다. 읍내에서 끝자락에 있는 버스역은 자동차가 그리 많이 오가지는 않으면서 읍내 초등학교 옆에 있습니다.

우리는 으레 읍내 끝자락 버스역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곳에는 둘레에 냇물이 흐르고 풀밭이 있는데, 요즈막 새봄에 큰아이는 이 풀밭에서 '네잎토끼풀'을 찾느라 바쁩니다. 잎이 넷인 토끼풀을 찾아서 기쁨을 한가득 누리려는 마음으로 버스가 들어오기 앞서까지 풀밭에 쪼그려앉아서 눈알을 굴려요.

지난주에 큰아이가 찾은 네잎토끼풀은 큰아이가 내내 손에 쥐고 놀다가 어느새 시들더니 잎이 톡 끊어졌습니다. 오늘 큰아이가 찾은 네잎토끼풀은 큰아이가 더 손에 안 쥐고 아버지한테 건넵니다. 지난주에 큰아이한테 "그 네잎토끼풀을 책 사이에 끼우고 잘 누르면 오래도록 예쁜 모습을 이을 수 있단다." 하고 말해 주었을 적에는 안 들었지만, 오늘 큰아이는 지난주 일을 겪은 뒤 '또 이 네잎토끼풀을 그냥 버리지 않아야겠다'고 느끼면서 바로 아버지한테 주는구나 싶어요.

겉그림
 겉그림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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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야호! 이것 좀 보세요. 멍청한 나무꾼의 빵을 슬쩍 가져왔어요!" 꼬마 악마는 자랑스럽게 말했어. 그러자 큰 악마들이 불같이 화를 냈지. "네 요놈, 무슨 짓을 한 게냐! 가난한 나무꾼의 귀한 빵을 훔치다니! 당장 가서 잘못을 빌지 못할까!" (6쪽)

우치다 리사코 님이 글을 쓰고, 호리우치 세이치 님이 그림을 빚은 <빵을 훔친 꼬마 악마>(비룡소,2014)라는 대단히 멋진 그림책을 읽습니다. 일본에서 1979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4년에 나온 그림책인데, 나는 이 그림책이 대단히 멋지다고 느낍니다. 일본사람이 담은 리투아니아 옛이야기 그림책인데, 이 그림책을 보면 '일본스러움'뿐 아니라 '리투아니아스러움'이 함께 흘러요. 참 마땅한 일일 테지만, 글을 쓰고 그림을 빚은 사람은 일본사람이요, 이야기 바탕은 리투아니아이니까요.

그나저나 이 그림책이 왜 대단히 멋진 그림책인가 하고 느끼느냐 하면, 나는 이 그림책 겉그림만 보고도 아주 재미나겠구나 하고 느꼈고, 책을 장만해서 처음 받아서 펼칠 적에도 이야 참 재미있네 하고 느꼈으며, 우리 집 두 아이 모두 날마다 한두 차례씩 이 그림책을 펼치면서 깔깔거리며 읽는 모습에서도 참말로 재미있네 하고 생각했어요. 더욱이, 그림책에 나오는 '꼬마 악마'는 아주 조그마한 몸집이지만 꾀도 바르고 힘도 세며 슬기로울 뿐 아니라, 아주 착한 마음이에요. 이야기에서는 '악마'로 나오지만 더없이 착한 마음이랍니다.

속그림.
 속그림.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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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이 웃으며 말했어. "빵을 가져왔으니 됐다. 어서 돌아가거라." "무슨 일이든지 할게요. 시켜만 주세요." 꼬마 악마가 울음을 터뜨렸어. 나무꾼은 깜짝 놀라 골똘히 생각하더니, 꼬마 악마에게 말했지. "그럼, 나를 따라오너라." (9쪽)

그러고 보니까, 리투아니아 옛이야기에 나오는 '꼬마 악마'는 참말 '악마'입니다. 그런데, 이 꼬마 악마는 마음이 착해요. 개구쟁이에 장난꾸러기라서 '멍청한 나무꾼 도시락'인 빵 한 조각을 훔치기는 했는데, '수많은 어른 악마'는 이 개구진 장난꾸러기 꼬마 악마를 아주 무시무시하도록 나무랍니다. 얼른 그 빵을 돌려주고 잘못을 뉘우칠 뿐 아니라 나무꾼을 도운 다음에야 '악마네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해요.

이렇게 놓고 보면 악마는 '나쁜 짓'을 일삼는 넋이 아니라, '바탕은 착한 마음'이면서 '나쁘게 사는 사람'한테 그 나쁜 짓 좀 그만하라고 일깨우는 '착한 숨결'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악마'라는 이름은 '악마가 아닌 악마'한테서 '무시무시하게 꾸지람을 들은 사람'이 심통이 나서 붙인 이름일는지 모르지요.

속그림. 꼬마 악마는 빵을 훔치고 돌아왔다가 크게 꾸지람을 듣는다.
 속그림. 꼬마 악마는 빵을 훔치고 돌아왔다가 크게 꾸지람을 듣는다.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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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이 땅 주인의 허락을 받고 돌아오자마다 꼬마 악마는 서둘러 일을 했어. 커다란 나무들을 모조리 뽑아내고, 물을 단숨에 쭈욱 들이마셨지. 그런 다음, 땅을 평평하게 갈았어. 꼬마 악마는 땅에 보리 씨앗을 골고루 뿌렸어. 나무꾼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지켜보다가 함께 씨앗을 뿌렸지. (14∼15쪽)

그림책 <빵을 훔친 꼬마 악마>에 나오는 나무꾼 아저씨는 착하고 수더분합니다. 꼬마 악마가 빵을 훔치든 말든 그리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빵이 사라졌어도 그저 한 끼니를 굶고서 조용히 지나갈 만한 마음결입니다. 꼬마 악마가 나무꾼 아저씨한테 꿈을 하나 들어 주겠다고, 무엇이든 시키라고 할 적에도 이 나무꾼 아저씨는 돈을 달라거나 뭔가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못 쓸 땅'으로 여기는 자리를 꼬마 악마한테 가리키면서 이 자리에 보리를 심는 보리밭으로 가꾸고 싶다고 말할 뿐이에요.

아이들 사이에서 그림책을 얼핏설핏 보다가, 아이들이 잠든 뒤에 혼자서 가만히 그림책을 더 들여다보다가, 나중에 큰아이가 동생한테 그림책을 읽어 줄 적에 나도 곁에 함께 앉아서 큰아이 목소리로 이 그림책을 새삼스레 자꾸자꾸 다시 들여다보다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꼬마 악마가 내 둘레에서 나한테 해코지를 했다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찾아오면 나는 꼬마 악마한테 무엇을 바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여러 날, 여러 달 생각해 보았는데, 나도 이 그림책에 나오는 나무꾼 아저씨하고 비슷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다만, 나는 보리밭보다는 숲을 가꾸고 싶다는 말을 했으리라 생각해요. 큰길마다 아름드리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고, 골짜기마다 짙푸른 숲으로 아름다워서 시골사람뿐 아니라 도시 이웃도 숲바람을 즐겁게 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속그림. 나무꾼은 사람들이 쓰지 않는 늪을 보리밭으로 일구고 싶다는 뜻을 꼬마 악마한테 밝힌다.
 속그림. 나무꾼은 사람들이 쓰지 않는 늪을 보리밭으로 일구고 싶다는 뜻을 꼬마 악마한테 밝힌다.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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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부자가 된 나무꾼은 눈물 흘리며 기뻐했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꼬마 악마가 말했어. "나무꾼 님, 그런 말 마세요. 이제 나무꾼 님의 귀한 빵을 훔친 저를 용서해 주시는 거죠?" (30쪽)

가난한 이웃한테 '귀한 것'이란 무엇일까요? 금은보화일까요? 아니지요. 엄청난 보배일까요? 아니지요. 자가용이나 아파트일까요? 아니지요. 은행계좌일까요? 이도 아니지요. 가난한 이웃한테 '귀한 것'이란 수수한 아침저녁 한 끼니 밥입니다. 그리고, 수수한 옷 한 벌입니다. 그리고, 이 수수한 밥을 차리는 사랑스러운 손길이요, 이 수수한 옷을 짓는 따사로운 손매예요.

우리 집 큰아이가 풀밭에 한참 쪼그려앉아서 찾아내는 네잎토끼풀이 대수롭다고 느낍니다. 네잎토끼풀이 아니어도, 아이들이 새봄을 맞이해서 거의 날마다 한 줌 가득 훑어서 까르르 웃고 즐기는 들꽃이 더없이 대수롭다고 느낍니다. 우리 집 마당에 떨어지는 곱고 빨간 동백꽃잎을 아이들이 머리에 얹고서 그야말로 맑게 웃으면서 노는데, 이 동백꽃잎이 참으로 대수롭다고 느낍니다.

리투아니아라고 하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이야기에 나오는 '꼬마 악마' 이야기란 바로 이 대목을 조용히 밝히지 싶습니다. 우리가 이웃하고 동무 사이에서 아끼면서 보듬을 자리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옛이야기요, 어른이자 어버이라는 나 스스로 아이들 앞에서 무엇을 살뜰히 보살피면서 하루 살림을 지을 때에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밝히는 옛이야기이지 싶어요. 사월을 맞이해서 내린 비가 논을 흠뻑 적시니 해가 떨어질 무렵부터 개구리 노랫소리가 우렁찹니다.

덧붙이는 글 | <빵을 훔친 꼬마 악마>
(우치다 리사코 글 /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 고향옥 옮김 / 비룡소 펴냄 / 2014.10.17. / 9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yes24.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빵을 훔친 꼬마 악마 - 리투아니아

고향옥 옮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우치다 리사코 글, 비룡소(2014)


태그:#빵을 훔친 꼬마 악마, #우치다 리사코,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책, #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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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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