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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 지네."

봄이 오니 나른해진다. 아련한 감성이 샘솟고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그런데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니 또다시 선거가 다가온다. 이제 다가오는 13일이면 한국에선 20대 총선이 치러진다.

선거가 다른 선거로 잊혀선 안 된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지난 선거를 돌아보자. 과연 어땠는가. 기왕이면 가장 큰 이벤트였던 지난 대선을 떠올려 보자. 지난 2012년으로 다시 시간을 되감아서 돌이켜 보자.

지나간 월드컵의 마지막 경기를 떠올리기만 해도 씁쓸한 것처럼, 지난 대선 결과를 떠올리는 것이 어느 유권자에겐 유쾌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어쩌면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대선과 그 이후의 일을 짚어보도록 도와줄 책이 있다. 바로 지난 2월 발간된 강인규 시민기자의 <대한민국 몰락사>다.

어느 선거 이후 몰락한 한국의 기록

"운동경기에 졌다고 해서 현실의 여건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 그 자체다. 정치는 현실의 기쁨과 고통, 삶과 죽음의 문제다. 그런데 그리 간단히 '승복'을 말할 수 있을까? 가혹한 경쟁에 치여 꿈을 잃은 어린이들, 감당할 수 없는 등록금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거나 학업을 미룬 채 돈벌이에 나서야 하는 학생들, 수십에서 수백 통의 지원서를 내도 취업을 할 수 없는 졸업생들, 고공에서 생존권 싸움을 벌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절반 이상이 빈곤층으로 전락해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노인들에게도 말이다." (본문 16쪽 중에서)

<대한민국 몰락사>를 쓴 강인규씨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20대의 65%, 30대의 66%, 40대의 55% 이상이 야권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유권자들이 '불순한 사상에 물든 탓'이 아니라 '현실의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고통이란, 앞서 인용한 책의 구절이 그려냈듯이 정치가 국민의 삶을 더 나은 상황으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통과를 치르겠다는 얘기인지 이것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며 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통과를 치르겠다는 얘기인지 이것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며 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비판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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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는 어떠했는가. 그의 '수첩 인사'와 '도피 외교'가 대중의 화두에 올랐고, 알아듣기 힘든 발언에 '박근혜 번역기'가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떨어지는 지지율은 '종북' 논란으로 압축되는 '색깔론'을 해결책으로 삼는 듯했다. 그 대열에 앞장선 대통령과 보수 인사들의 '애국 페티시즘'이 최근까지 사회를 붉게 물들였다. 한때 통일부 홍보 영상에 출연했던 신은미씨의 토크콘서트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종북콘서트'라 불리며 지탄받았다.

자극적인 사건들은 국민의 시선을 괴로운 현실에서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책에서 저자 강인규씨는 짧은 글로 그 현실을 날카롭게 다시 들춰내고 신랄하게 풍자한다. 집회 탓, 노조 탓, 종북세력 탓으로 보수·우익세력이 가려놓았던 한국의 처절한 상황을 말이다.

"대형 참사나 높은 자살률은 특정 정부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보다 돈을 앞세우는 야만적 이윤추구는 정치 성향을 넘어선 뿌리 깊은 사회 문제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다. 자살의 주원인이 경제적 생활고와 경쟁에 내몰린 불안한 삶인데도, 정부는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고 임금을 줄이는 것을 '대안'이라고 내놓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몰상식한 억지를 '통치 철학'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지도자였다. 그는 강에 콘크리트를 부으며 '강 살리기'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불우한 전통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그는 벼랑 끝에 몰린 국민들을 떠미는 정책을 '구조 개혁'이라고 부르고, 정부 입맛대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을 '바른 역사'라고 부른다." (본문 7~8쪽 중에서)

'무책임한 정치' 앞에서 반복되는 비극

일부만 드러나 보이는 침몰된 세월호 '세월호 침몰사건' 2일째인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침몰현장에 세월호 선수의 일부가 보이고 있다.
▲ 일부만 드러나 보이는 침몰된 세월호 '세월호 침몰사건' 2일째인 지난 2014년 4월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침몰현장에 세월호 선수의 일부가 보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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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304명의 국민을 집어삼킨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당시 온 국민은 무기력하게 가라앉는 배를 지켜봐야 했다. 이후 '안전행정부'가 사라지고 '국가안전처'가 신설됐지만 1년 후 메르스 사태에서 정부의 무력한 모습은 재현됐다. 오히려 세월호 1주기 집회에선 '차벽'이 애도하던 국민을 가로막았고, 공권력은 물대포로 집회 참가자를 향해 물줄기를 쏘아댔다.

정권이 '위기'를 말할 때마다 어김없이 '종북 논란'은 재현됐다. 신은미씨 토크콘서트 테러와 통합진보당 해산 등으로 이어지며 '붉은 덧칠'은 사회 여기저기로 번졌다. 이념 논쟁으로 무능과 부도덕을 덮으려는 정치인을 향해 "목숨보다 중요한 이념은 없다"고 말하는 저자의 일침은 그래서 더욱 통렬하다.

"'부도덕해도 유능하다'는 왜곡된 언어로 지도자 자리에 오른 대표적인 사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집권 후 그는 대통령의 자격 기준을 한없이 낮춰놓았다. '누구나 대통령을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든 셈이지만 그가 남긴 물리적 유산은 끔찍하며, 보이지 않는 유산은 더욱 끔찍한 형태로 남아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괴롭힐 것이다. 그를 이어 대통령이 된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격'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의 존재 가치' 자체를 회의하게 만들었다." (본문 57쪽 중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와 대형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없이 '질책'만 늘어놓았다. 본인은 책임의 대상에서 스스로 제외하면서 다른 사람을 탓했고, 그러는 사이 사고는 비슷한 이유로 다시 벌어졌다. 문제로 지적된 체계가 변하지 않는 사이, 무책임한 정치 앞에서 비극은 반복됐다. 또한, 그럴 때마다 '애국심 강요'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국민이 애국할 마음이 사라진 상황일수록 거꾸로 횡포는 심해졌다.

"국가가 최선을 다해 국민의 목숨을 구해내고 억울함을 풀어줄 때, '제발 애국하지 마시라'고 사정해도 애국심이 샘솟고 세금 내는 게 아깝지 않게 된다. 정부가 국민에게 '애국심'을 강매하는 행위는 스스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고 실토하는 것이다. 21세기의 한국 정부가 갑자기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이고, '애국가 4절 부르기'를 공무원 시험문제로 출제하고, 역사교과서 내용을 바꿔 애국심을 고취시키겠다고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과 경찰의 수사 축소·은폐, 국정원의 간첩조작,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세월호 구조 실패 등에서 보듯이 법과 공권력은 국민을 억울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죽도록 방치하기까지 했다." (본문 327~328쪽 중에서)

무너지는 삶을 재건하려면

 <대한민국 몰락사> 표지
 <대한민국 몰락사> 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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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돈'을 논하는 정부.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이만 잊고 경제 살려야' 한다는 논리가 나왔고, 메르스 사태에선 관광객 감소를 우려한 '메르스 보험'이 거론됐다. 저자가 "차라리 메르스 로또를 만드는 건 어떨까"라며 '코리안 룰렛'이라 이름 붙이는 부분은 당시의 '웃픈(웃기고도 슬픈)' 상황을 적절히 지적한 것 같다.

지난 몇 년의 한국을 돌아보면 "세계 최고의 자살률, 줄어드는 출산율, 바닥을 기는 행복지수는 '이윤'과 '경쟁'을 더하고 '사람'을 셈에서 뺄 때 어떤 세상이 열리는지" 보여준다. <대한민국 몰락사>가 고스란히 담아낸 것처럼 말이다.

고통을 접했을 때 가장 쉽고 빠른 길은 '잊고 외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고통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한국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사고와 죽음, 이어지는 누군가의 슬픔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린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일이다. 정치와 경제, 언론과 비뚤어진 인식이 만들어낸 한국의 참혹한 현실을 강인규 시민기자의 책이 압축해서 들려준다. 지옥보다 나을 바 없다는 '헬조선'이 변화하려면,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문제를 알고 길을 찾아야 마땅한 일이다. 여러 이유와 해결법을 제시하는 <대한민국 몰락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할 이유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 몰락사>(강인규 씀/ 2016.2.29/ 오마이북/ 1만6000원)



대한민국 몰락사 - 지옥실험의 기록 2008-2018

강인규 지음, 오마이북(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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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