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대 총선에서 인천 남구을에 출마한 김성진 정의당 후보의 홍보 현수막이 지난 31일 남구 학익동에 내걸려 있다.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야권단일후보로 결정됐지만 지난 1일 인천지방법원 현수막 철거 가처분신청 인용으로, 오는 5일부터는 '야권단일후보'란 표현을 쓸 수 없다.
 20대 총선에서 인천 남구을에 출마한 김성진 정의당 후보의 홍보 현수막이 지난 31일 남구 학익동에 내걸려 있다.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야권단일후보로 결정됐지만 지난 1일 인천지방법원 현수막 철거 가처분신청 인용으로, 오는 5일부터는 '야권단일후보'란 표현을 쓸 수 없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국민의당 후보를 빼고 '야권단일후보'라고 하면 위법이다."

공정성과 일관성이 생명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가 총선을 불과 열흘 앞두고 기존 유권해석을 뒤집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빼고 야권연대에 합의한 더불어민주당-정의당에서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지를 놓고 rdn 1주일 사이에 입장이 뒤바뀐 것이죠.

애초 선관위는 지난달 25일 "(인천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야권연대합의에 따라 등록한 후보자가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건 그 선거구에 다른 야당 후보자가 있어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관련기사: 국민의당 빠지면 '야권단일후보' 아니다?

그런데 선관위는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으면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할 수 없다"고 번복했습니다. 불과 1주일 전 유권해석을 180도 뒤집은 것이죠. 왜 선관위가 이런 무리수를 둔 걸까요?

'야권단일후보' 쓰면 불법? 1주일 만에 말 바꾼 선관위

일단 선관위는 전날 인천지방법원 결정을 수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인천지법 민사21부(재판장 박태안·최선재·윤양지)는 지난 1일 인천 남구을에 출마한 안귀옥 국민의당 후보가 김성진 정의당 후보를 상대로 제기한 '야권단일후보' 현수막 철거와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현수막뿐 아니라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도 쓰지 못하게 한 것이죠.

법원은 이날 가처분신청 인용문에서 '야권단일후보 확정'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김성진 후보가) 야권의 유일한 후보자 혹은 야권을 대표하는 정당한 후보자라고 오인하게 할 우려가 크"고 "다른 야당 소속 후보가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포기하였다거나 이미 이루어진 야권단일화에 불복하고 선거에 출마한 것으로 오인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안 후보의 손을 들었습니다. 

법원은 "현재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야권단일화의 핵심은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국민의당 후보 사이에 이루어지는 단일화"라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두 정당 후보 사이의 단일후보라고 이해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면서 단일화 주체를 표기하지 않은 점을 문제삼았습니다.

이에 정의당은 지난 25일 선관위 유권해석을 근거로 내세웠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법원은 오히려 선관위 답변이 타당하지 않다면서 지금까지 선관위 유권 해석을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지금까지 선관위에서 다른 후보가 있는데도 '야권단일후보' 표현을 허용한 중요한 근거도 법원 판례였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11년 1월 야 4당 단일화 협의 없이 '범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쓴 서울시 구청장 후보 관련 판결에서 "범야권 단일후보라는 표현이 모든 야당이 참여한 협상에 의한 후보자만을 지칭한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봤습니다.

선관위는 지금까지 이를 근거로 여러 야당 가운데 일부 야당 후보만 단일화해도 '야권단일후보'란 표현을 쓸 수 있게 허용했습니다. 지난 2012년 4월 19대 총선 당시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과 제3야당인 통합진보당이 '야권단일후보'를 내자 당시 제2야당인 자유선진당과 진보신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에서 반발했지만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유권 해석했습니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선관위는 자유선진당, 진보신당 등 다른 야당이 빠졌는데도 '야권단일후보' 표현을 문제삼지 않았다. 당시 경기 고양시 4개 선거구의 야권 단일 후보인 민주통합당 김현미(일산서구), 통합진보당 심상정(덕양구갑), 민주통합당 유은혜(일산 동구), 송두영(덕양구을) 후보가 3월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총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선관위는 자유선진당, 진보신당 등 다른 야당이 빠졌는데도 '야권단일후보' 표현을 문제삼지 않았다. 당시 경기 고양시 4개 선거구의 야권 단일 후보인 민주통합당 김현미(일산서구), 통합진보당 심상정(덕양구갑), 민주통합당 유은혜(일산 동구), 송두영(덕양구을) 후보가 3월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총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인천지법 "선관위가 과거 판결 취지 오인, 국민의당도 포함해야"

그런데 인천지법 재판부는 선관위가 "(1, 2심 판결) 문구를 단편적이고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결과적으로 위 판결들의 취지를 오인하여 위와 같은 답변에 이른 것이어서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등 야 4당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에 서울시장 후보 등을 단일화했지만, 당시 제2야당인 자유선진당을 비롯해 진보신당 등은 빠졌습니다.

인천지법은 당시 법원 판결이 "'21개 야당 전체뿐 아니라 후보 단일화 논의가 있던 4당 사이에서조차 단일화 협의가 이뤄지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범야권 단일후보'란 표현을 허위사실로 인정"한 것이지, "4개의 당만으로 '주요 야당' 요건이 충족된다고 인정하였던 것은 아니다"라고 달리 해석했습니다. 

인천지법은 한발 더 나아가 "이 사건의 경우 오히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2야당인 국민의당을 포함하여 단일화가 이뤄져야 '야권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제2야당'임을 앞세운 국민의당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국가기관의 구속력 있는 법 해석'을 뜻하는 유권해석은 선관위 같은 행정기관의 '행정해석'과 법원의 '사법해석'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다만 민원인 질의에 대한 행정 해석의 경우 법원에서 다른 사법 해석이 나오면 그 효력을 상실합니다. 따라서 인천지역 '야권단일후보' 표현에 대한 법원 결정이 나온 이상, 앞서 같은 인천지역 민원인 질의에 대한 선관위 유권해석은 무효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다만 정의당이 인천지법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아직 가처분신청 단계이기 때문에 본안 판결로 이어지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만약 법원 판결이 달라지면  선관위는 또다시 유권 해석을 번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투표일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의신청이 기각되면 당장 이번 총선에서 선관위의 바뀐 유권해석이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관위 따랐을 뿐인데" 선거 열흘 앞두고 홍보물 교체 비상

결국 '야권단일후보'란 표현에 대한 선관위와 인천지법의 해석 차이가 총선 후보자들과 유권자들에게 큰 혼란을 부른 셈입니다. 당장 선관위는 오는 5일까지 기존 선거 홍보물에서 '야권단일후보' 표현을 모두 지우라고 통보했습니다.

후보 단일화 지역구에 국민의당 후보가 없으면 '야권단일후보'라고 쓸 수 있지만, 국민의당 후보가 있으면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단일화 후보자'로 바꿔야 합니다. 심지어 후보자 관련 연설이나 토론회 발언에도 '야권단일후보'란 표현을 쓸 수 없고 선관위에서 위법으로 번복한 지난 2일 이후 인터넷이나 SNS에 올라온 게시물도 위법이 됩니다. 선관위 위법 결정에 만든 홍보물이나 게시물은 '위법'은 아니지만 추가 게사나 배포가 금지됩니다.

선관위도 홍보물 교체 비용은 보전해주기로 했지만 현수막부터 명함, 벽보, 차량까지 내용을 바꾸거나 고칠 게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단일화 후보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인천 지역 13개 선거구뿐 아니라 경남 창원성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한 노희찬 정의당 후보를 비롯한 타 지역 단일화 후보도 예외는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선관위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귀책사유는 유권해석을 잘못한 선관위에 있는데 마치 자기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처럼 오해받고 있다는 것이죠.

양당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적법하게 선거 운동을 전개하던 후보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면서 "무엇보다 유권자들에게 마치 우리 후보자들이 위법한 표현을 사용한 것처럼 만든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오마이팩트>는 지난 28일 기존 선관위 유권해석에 따라 국민의당이 빠지면 '야권단일후보' 표현을 쓸 수 없다는 주장이 '거짓'이라고 판정했습니다. 선관위의 유권 해석이 달라지긴 했지만 앞으로 법원 최종 판결에 따라 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진실-대체로 진실-논란-대체로 거짓-거짓' 5단계 가운데 '논란'으로 고칩니다.


태그:#야권단일후보, #선관위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