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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9일 오전, 경기도 시흥의 스티로폼 파쇄 업체에서 파쇄기에 상반신이 압착되는 사고로 한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20대에 산재를 겪고 이후 15년 동안 산재노동자를 위한 활동가로 살았던 남현섭(49)씨였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그와 함께 활동했던 전지인 건강한노동세상 사무국장의 추모글을 싣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황망한 소식이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였습니다.

그는 20대에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 네 개가 잘린 산재노동자였고, 그 후 15년 동안 산재상담을 하던 활동가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다시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2016년에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2016년에 벌어진 일

지난해 둘째아이 돌잔치 때 부인과 두 아이와 함께.
 지난해 둘째아이 돌잔치 때 부인과 두 아이와 함께.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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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섭 동지는 47세에 결혼한 늦깎이 신랑이었습니다. 그는 산재노동자이기 때문에 결혼에 소극적이고 위축되면서도 늘 행복한 결혼을 꿈꾸던 평범한 활동가였습니다.

"나에게 결혼은 단순하다. 먹고 살 만큼만 일해서 벌고 내 반쪽이랑 신나게 여행도 다니고 욕심 없이 살면서 평생 옥신각신 싸우기도 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나의 조그만 소망이요, 내가 그리는 청사진이다." (건강한노동세상 소식지 30호, 남현섭)

그는 소박한 꿈을 꾸었고, 어렵게 반쪽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가정을 이룬 지 단 4년 만에 일어난 사고입니다. 3살, 5살의 두 아들과 소박하게 가정을 꾸려나가려 했지만 활동비가 부족했고, 일을 다시 시작했을 때는 산재로 인한 장애 때문에 저임금 사업장으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남현섭 동지가 일한 공장은 폐스티로폼을 파쇄하는 경기도 시흥의 한 영세사업장이었습니다. 공장장과 남현섭 동지 단 두 명이 일하던 사업장이었습니다. 이곳의 실제 사장은 신용불량으로 26살 아들의 명의를 빌려 사업을 시작한 지 두 달째라고 합니다. 남현섭 동지도 이 사업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반 만에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영세사업장의 사장은 그저 돈을 적게 들여 사업을 시작할 생각만 했지 사업장의 안전이나 일하는 사람의 건강은 안중에 없는 듯했습니다. 실제 만나본 사장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천산재노협 총회 모습
▲ 고인의 생전 활동사진 인천산재노협 총회 모습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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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33조 2항에 따라 파쇄기 접촉을 예방하는 덮개와 비상 정지 센서만 있었더라도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였습니다. 안전장치가 전무한 기계가 사업장에서 버젓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노동부는 어떠한 감독도, 규제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고 이전부터 파쇄기 앞쪽에 몸을 지탱할 수 있는 가슴 높이의 안전난간을 설치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위험에 대한 그 어떠한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업체는 15일 영업정지를 당했고, 사장은 폐업을 할 것입니다. 아마도 공장과 기계는 헐값에 또다른 사장에게 넘어가겠죠. 그 사장은 사고가 났던 기계로 다시 일을 시작할 겁니다.

고작 얼마의 이윤 때문에 영세 사업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은 이곳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살아생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산재 노동자의 벗으로 헌신했던 남현섭 동지의 마지막 길이 안타깝기만 한 이유입니다.

남현섭 동지는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에서 산재상담을 하면서 힘에 부칠 때마다 홀로 갈등하면서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한길을 걸었습니다. 사무실보다는 병원으로, 공단으로 뛰어다니면서 지키고자 했던 남현섭 동지. 그와 그로 인해 행복했을 수많은 산재노동자의 삶을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태그:#남현섭, #산재사망, #인천산재노협, #건강한노동세상,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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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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