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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현 지원콘텐츠 대표
 윤재현 지원콘텐츠 대표
ⓒ 전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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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에서 사과라도 한 번 한다면 속이 풀릴 것 같다. 내 인생은 쑥대밭이 됐는데 사과는커녕 시간끌기만 하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 간다."

윤재현 지원콘텐츠 대표는 힘없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1990년 설립된 지원콘텐츠는 캐릭터 '헬로키티'를 개발한 일본 기업 산리오에게 헬로키티의 라이센스를 받아 국내에 독점적으로 유통하는 업체다.

31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만난 그는 '삶의 희망을 잃었다'고 했다. 윤 대표는 직원 200명을 이끄는 어엿한 중소기업 대표였지만 지금은 지인의 작은 사무실 한켠을 얻어 쓰는 형편이 됐다.

연매출 500억 원에 이르는 지원콘텐츠가 무너졌다. 지원콘텐츠에서 시작된 부도는 다른 기업들로 전이되고 있다. 완구와 인형 등을 생산하는 캐릭터 유통시장 전체가 휘청이는 모습이다.

연매출 500억 기업, '폭삭' 주저 앉았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지원콘텐츠는 헬로키티를 국내에 독점으로 유통하면서 승승장구해 왔다. 2011년 부도 전 최근 3년(2008~2010) 매출은 300억대에서 500억대로 매년 100억씩 뛰어올랐다. 헬로키티의 매출액이 97%에 이르렀던 지원콘텐츠는 산리오와의 로얄티 관련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1차 부도가 났다.

지원콘텐츠는 2011년 11월  우리은행에 어음할인을 요청했고 학동지점장과 부지점장이 어음을 할인해주겠다며 원본을 가져갔다. 지원콘텐츠가 넘긴 어음원본 5장은 7억79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채권보존' 등을 이유로 자금은 물론 어음 원본을 주지 않았다.

같은 달 23일 지원콘텐츠는 최종 부도처리가 됐다. 뿐만 아니라 지원콘텐츠를 통해 헬로키티를 공급받던 150여 곳의 관련 업체는 연쇄 부도나 경영난을 겪게 됐다. 우리은행은 직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어음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인정했지만 직원 개인의 잘못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우리은행의 세 가지 거짓말

우리은행 본사 건물.
 우리은행 본사 건물.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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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는 그간의 사건들로 많이 힘들어 보였다. 생업을 포기하고 소송에 뛰어들었다는 그는 우리은행에 관해 얘기할 땐 낮지만 힘있는 어조를 이어갔다.

취재를 하면서 우리은행이 세 가지 거짓말을 한 것을 알게 됐다. 첫 번째는 '상사유치권'이다. 상사유치권은 기업간의 거래로 인해 채권자가 채권(차용증서)을 받기 위해 어음을 확보한 것이다.

우리은행은 지원콘텐츠에게 어음할인을 해주지 않아 그 결과 지원콘텐츠가 부도를 맞았지만 이는 정상적인 상사유치권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표는 "2011년 우리은행 본점에서 학동지점에 상사유치권을 했다고 얘기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며 "당시 검찰이 본점과 지점을 3차례나 압수수색했는데 관련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는 면직이다. 우리은행 쪽은 학동지점장과 부지점장이 관련 사건으로 2011년 면직 처리됐다고 했지만 지점장은 사건 직후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퇴직을 했다. 기자가 재차 취재에 나서자 학동지점장은 나이가 돼서 퇴직을 신청했다고 했다. 우리은행은 '전직지원제도'를 운영해 임금피크 또는 특별퇴직금을 선택할 수 있으며 지점장은 퇴직금을 받고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는 채우석 전 우리은행 부행장의 발언이다. 윤 대표는 부도 이후 은행장과의 면담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담당 직원에게 관련내용을 아무리 읍소해도 얘기만 들어줄 뿐 진전되는 사항이 없었다.

그해 말 힘들게 만남을 가진 자리에서 채 부행장은 "1심이 끝나면 어떤 식으로든지 선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형사 1심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1심 결과가 나오면 당연히 보상이 이뤄질 줄 알았다. 윤 대표는 "이렇게 사건이 마무리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형사 진행 중에 가진 만남이었기에 민사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던 상황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학동지점장과 부지점장은 최종 사기판결을 받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우리은행은 민사소송을 걸었다.

윤 대표는 보상을 해주지 않으려는 '시간 끌기'라며 분개했다. 그는 "민사소송이 언제 끝날 줄도 모르는데 숟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것이냐"며 "우리은행이 미적댈수록 부도난 지원콘텐츠와 협력업체들은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을 잃어간다"고 호소했다.

우리은행은 '민사 1심'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은행 쪽은 "보상금액은 고객의 재원으로 일군 것인 만큼 근거가 필요하다"며 "민사소송을 거쳐 피해액을 산출하겠다"고 강조했다.

"소송 끝나 주주·채권단에게 피해금액 주고 싶다"

캐릭터 유통 기업 중에서도 매출 1위를 달리던 지원콘텐츠는 잘나가는 유통기업이었다. 지원콘텐츠는 수직상승하는 연매출을 바탕으로 코스닥 상장까지 꿈꿨지만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됐다.

윤 대표는"2011년 12월 중순으로 날짜를 잡아 놓았었다"며 "상장을 1년 넘게 준비해 왔는데 부도를 맞다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돈 걱정 없이 살면서 1억 원씩 척척 빌려주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윤 대표는 "벤츠를 3대나 굴렸지만 지원콘텐츠가 부도를 맞으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며  "차를 팔기 위해 아내에게 열쇠를 달라고 할 때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지금 지원콘텐츠에 남아있는 직원은 없다. 매출도 거의 없는 상태다.

부도가 난 이후 그는 극단적인 생각을 매일 했다고 했다. 술을 입에 대지 못했지만 매일 소주를 5병이나 들이켰다. 가방에는 늘 소주를 갖고 다녔다.

그는 맨 정신으로는 살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가족들도 제가 어떻게 될까봐 늘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윤 대표는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서 삶에 대한 의지는 가지게 됐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눈시울이 불거지기도 했다. 든든한 가장으로서 그를 지탱해온 사업체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는 "소송이 원만하게 끝나 600명에 이르는 피해 주주와 상거래 채권단에게 피해 금액을 돌려줄 수 있길 바란다"며 "새로운 문구 팬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사업을 추진할 동력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태그:#우리은행, #지원콘텐츠, #산리요, #헬로키티, #윤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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