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대하드라마 <장영실>에서 장영실 역의 배우 송일국이 31일 오전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송일국이 가장 빛을 발하는 장르는 사극이다. 하지마 그는 "<해신> 때 너무 힘들어 다시는 사극 안 하려고 했다"고. ⓒ 이정민


이 남자에게는 수식어가 많다. 염장, 주몽, 김을동 아들, 장군의 손자, 삼둥이 아빠, 그리고 배우 송일국(44). 그는 최근 '장영실'이라는 수식어를 더했다.

송일국이 타이틀롤을 맡은 KBS 1TV 대하드라마 <장영실>은 지난달 26일 10.2%(AGB 닐슨, 전국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송일국은 "사극 치고는 짧은 24부작이라 할 만하니 끝난 느낌"이라며 밝게 웃었다.

"사실 <해신> 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사극 안 하려고 했어요. <주몽>도 하기 싫어서 도망가고 그랬는데. (웃음) 그래도 운명인지 하게 되더라고요."

사극 전문

이미 여러 편의 사극에 출연했던 그지만 <장영실>은 남달랐다. '과학 사극'을 표방한 덕에 자격루 등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는 소품들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고, 천문 용어 등 길고 어려운 대사를 외우느라 "뇌가 녹을 지경"이었다고. 하지만 누구보다 송일국을 잘 아는 여동생은 "물 만난 작품"이라고 했단다.

"워낙 이것저것 만들고 고치는 걸 좋아해요. 전구가 아니라 전등도 직접 교체할 정도예요. 집에 공구박스만 세 개예요. 미대가 목표였던 만큼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런 점에서 재밌게 촬영했죠."

송일국은 잘 알려진 대로 김좌진 장군의 증손자이자 <장군의 아들>로 유명한 김두한의 외손자다. 어머니는 탤런트 겸 국회의원 김을동. 어릴 때부터 TV에 나오는 어머니,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영화, 증조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교과서를 보고 자란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KBS대하드라마 <장영실>에서 장영실 역의 배우 송일국이 31일 오전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일국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 그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일"이라고, "내 환경 때문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 이정민

"어릴 때부터 '조상 얼굴에 먹칠하는 짓만 하지 마라'는 말을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사실 전 정말 철없고 지질하기까지 했어요. 정말 저 닮은 아들 낳을까 봐 아들 낳기 싫었는데, 하하. 어머니 속 많이 썩히고 자랐어요.

제가 15년째 대학생들과 중국 동북 3성, 항일유적지, 고구려유적지 등 역사 탐방을 하고 있어요. 처음엔 가기 싫어서 끌려다니다시피 했는데, 다니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철모를 땐 제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조상 잘 둔 덕에 제가 복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하고 있어요."

"조상 얼굴에 먹칠 하지 마라"

배우로서 훌륭한 커리어와 충분한 매력을 가졌음에도 그는 늘 누군가의 아들, 남편, 아버지라는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일"이라고, "내 환경 때문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선거 시즌이면 반복되는 그의 출마설에 대해서도 "반박해봐야 더 많은 오해를 만들 것 같다, 열심히 내 일 하다 보면 알아주시지 않겠냐"고 담담하게 들이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대중들이) 배우로서 부족함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국민 귀염둥이가 된, 삼둥이 얘기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긴장한 듯, 어색한 듯,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던 그였지만,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여느 아이 아빠처럼 신나했다. 삼둥이는 <장영실>에 카메오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필 그날이 민란 장면 촬영하는 날이었어요. 제 키만한 강풍기 때문에 모래바람 날리고, 사람들은 낫 들고 뛰어다니고...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서 다신 안 가겠대요. 기와집만 보면 거기 무서운 사람들 사는 데라고, 하하하."

이제 48개월이 된 아이들은 아직 TV에 나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슈퍼맨>에서 하차한 지 두 달 남짓. 마지막 촬영은 지난해 12월께였으니 세 달 조금 넘었다. 촬영을 핑계 삼아 아버지와 주기적으로 외출도 하고 여행도 다니다가 <슈퍼맨> 하차와 함께 <장영실> 촬영으로 바빠지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을 터. 아이들은 서운해하지 않을까?

"방송엔 안 나왔지만 제가 아이들을 좀 귀찮게 놀아주는 타입이에요. 너무 예뻐서 옴짝달싹 못하게 꼭 끌어안고 뽀뽀 백 번 하고 그러거든요. 아내에게 아이들은 장난감이 아니라고 혼날 만큼요. 그래서 애들이 저를 좀 귀찮아해요. 제가 집에 가면 오히려 아이들이 '아버지 장영실 가세요, 빨리 옛날 사람 되세요' 한다니까요."

모든 아버지가 그렇겠지만, 송일국의 아이 사랑은 조금 유별나다. 세쌍둥이가 태어나 돌이 될 때까지, 오로지 '아빠'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 태어나고 일이 한동안 안 들어왔어요. 보통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들이 '걱정하지마, 내가 다 키울게' 립서비스 하잖아요. 저도 엄청나게 했어요. 그런데 실제 일이 안 들어오는 바람에 정말 제가 다 키웠죠. 덕분에 '육아의 신'이 됐어요. 세탁기가 아이용-어른용 두 개 있는데, 이 두 대가 거의 24시간 풀가동됐어요. 젖병 삶다 하루해가 다 가기도 했고요. 그게 <슈퍼맨>에서 빛을 발할 줄이야…. 인생사 정말 새옹지마라고, 그렇게 육아 열심히 했더니 돌잔치 무렵부터 일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는 대한이는 만드는 걸 좋아하고, 민국이는 세 아이 중 언어나 암기력 등이 좋고, 민국이는 감성이 뛰어나다며 눈을 빛냈다. "아이들이 공부를 못 하면 못하는 대로 내가 도움이 돼 줄 수 있고, 공부를 잘하면 엄마가 잘 이끌어 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조용조용 말을 이어가다 "바라건대 엄마 닮았으면..."하며 쑥스러운 듯 웃을 땐 영락없는 팔불출 아빠였다.

섹시함을 꿈꾸는 팔불출

배우로서 송일국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관에 들어갈 때까지 촬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성기를 그래프로 그린다면 60대에 정점을 찍었으면 한다, 아직 치고 올라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바라는 60대 배우 송일국은 '여전히 섹시한 배우'라고.

"60대에도 섹시한 배우이고 싶어요. 그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잖아요. 60대에도 섹시할 수 있도록,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는 당분간 '김을동의 아들'이 된다. 총선에 출마하는 어머니 김을동의 선거유세를 도울 계획이라고.

"오늘도 인터뷰 끝나면 또 가야 해요. 어차피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 거, 효도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맑게 웃는 표정에서 그에게 얹어진 많은 수식어의 무게가 전해졌다.

 KBS대하드라마 <장영실>에서 장영실 역의 배우 송일국이 31일 오전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일국은 인터뷰를 마치고 어머니 김을동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우러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 일이라면 효도라도 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 이정민



송일국 장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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