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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생신잔치는 우리집에서 열기로 했다.
 아버지의 생신잔치는 우리집에서 열기로 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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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 아버지 생신 이번에 너희 집에서 할 거야?"

언니가 카톡으로 묻는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한 것 같다.

한 달 전에 집 단장을 새롭게 했다. 형제들이 있는 단체카톡창에 자랑삼아 사진을 몇 장 올렸다. 인테리어 전후 사진을 올리니 언니 오빠 반응이 좋았다. 방문이랑 창문의 페인트칠은 나 혼자 거의 다 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는 첫째 아이만 자기 방 페인트칠 할 때 도와줬을 뿐이었다. 언니 오빠의 반응으로 그간 내 노고를 보답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 참에 친정 식구들 집으로 불러 밥이나 먹을까? 언제가 좋을까? 달력을 봤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뒤면 친정아버지 생신이다. 그동안 나 살기 바쁘다고 부모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생신상을 차려드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해드릴 버킷리스트 생각도 났다. 부모님과 추억이 될 만한 일을 하는 걸 내일로 미뤄선 안 된다. 자식도 기다려 주지 않는 것처럼 부모님도 날 기다려 주지 못한다. 그래 이참에 아버지 생신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다음 달 아버지 생신 우리 집에서 할게."

톡에 올렸다. 그리고 2~3주 지났을까. 언니가 카톡에 확인 글을 올린 게다.

"아버지 생신 이번에 너희 집에서 할 거야?"

식구들을 초대하려면 해야 할 일이 많다. 모두 다 오면 열두 명은 넘는다. 그 정도 손님을 초대할 만큼 그릇도 없다. 그뿐인가? 난 음식 솜씨도 없는데…. 그럼 올해 말고 다음 해로 넘길까? 올해 우리 집엔 고등학교 3학년 첫째도 있으니 모두 이해는 해 줄 거다. 그런데 내년이면 아버지 연세가 여든여섯이다. 내년에도 건강하게 생신상을 받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올해 하는 게 좋을 듯했다.

"당근이지."

답글을 카톡에 올렸다.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한 생신 잔치

부족한 그릇을 사고 음식재료를 주문했다. 할 줄 아는 요리도 몇 개 안 되니 미역국, 갈비찜, 도토리묵을 하기로 정했다. 다행히 엄마는 물김치를 가져온다고 하고 오빠는 과메기와 두부전골을 가져온다고 한다. 언니도 요리 한 가지 준비해서 온다고 한다. 내가 과일만 준비하면 상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집안 정리를 하는 거다. 도배할 때 베란다에 내놓은 책들이 아직 거실로 들어오지 못했다. 언제 책정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리해야지 했는데 다른 일들 하느라 차일피일 뒤로 밀렸다.

어느새 친정 부모님이 방문 전날이 다가왔다. 이젠 더는 미룰 수 없다. 퇴근하고 온 남편이 정리하겠다고 나선다. 아이들은 놀기 바빠 남편을 도와주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음식 준비로 바쁘다. 그런데 남편이 일하는 것을 보니 좀 이상하다. 책장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자기 책을 꽂고 있다. 나와 아이들 책은 보기 불편한 자리 구석 자리로 밀렸다.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디 있어? 왜 당신 책만 좋은 자리고, 나랑 애들 책은 구석이야?"
"이게 싫으면 당신이 하던가?"

할 말이 없다. 일하는 사람 좋을 대로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이 오시기로 한 날이 밝았다. 오빠가 부모님을 모시고 온다고 한다. 아침은 아이들 깨워서 대충 먹고 치웠다. 이제 빨리 생신상 차릴 준비를 해야 한다. 갈비찜을 올리고 미역국을 올렸다. 중간중간 아이들을 채근했다.

"야, 너희들 빨리 씻어. 그리고 방 좀 치워. 엄마 말 안 들려? 할아버지, 할머니 오시는데 너희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소리를 지르니 어쨌든 아이들은 점차 손님 맞을 준비가 돼간다. 문제는 나다. 언제 씻을지 모르겠다. 음식 준비가 다 되고 나도 빨리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곧이어 식구들이 도착했다. 요리 솜씨 좋은 새언니가 과메기랑 김치전골을 가져왔다. 김치 전골을 데워 상에 올리니 푸짐하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생일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 할아버지 생신 축하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너희들 모두 바쁜데 모이느라 고생들 했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신다. 식구들은 새언니의 김치전골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친 둘째는 친구들 만난다고 나간다.

유니온타워에서 주변을 둘러 보신다. 뒤에 검단산이 보인다.
▲ 아버지 모습 유니온타워에서 주변을 둘러 보신다. 뒤에 검단산이 보인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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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모시고 하남의 명소인 유니온타워에 갔다. 유니온타워에 오르면 팔당댐 아래 한가로운 한강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원래 음식물처리장시설을 만들면서 운동시설과 타워 놀이터 등의 주민편의시설을 포함하면서 공원으로 만들어졌다. 타워 꼭대기 층은 높이가 105m다. 타워에 오르니 미사리 당정섬 앞에 겨울 철새인 큰고니와 다른 새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상류의 팔당댐에서 물을 가둬두기 때문에 미사리의 물 깊이가 얕아서 새들이 먹이를 찾기가 훨씬 수월하다. 덕분에 해마다 겨울이면 큰고니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망원경으로 둘러보시는 부모님께 설명해드렸다.

"아버지 저기 새들 보이시죠? 저게 백조예요. 겨울 철새로 우리나라 말로는 큰고니예요."
"그래? 저게 백조야?"
"시베리아에서 살았는데요. 겨울엔 추우니까 우리나라로 왔다가 겨울나고 봄에 다시 돌아가요. 그리고 저기 강 건너 보이는 산이 예봉산이랑 운길산이고요. 이쪽으로 가면 서울 이쪽으로 가면 정약용 생가 있는 두물머리예요.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만나는 곳이라서 이름이 그렇게 지워졌대요. 다산 정약용이 한양에 갈 때 이쪽으로 배 타고 지나갔을 거에요."

아버지랑 엄마는 신기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신다. 막내는 그새 심심한지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아 달라고 한다. 전망대에서 한층 내려왔다. 3층은 카페처럼 꾸며져 있다. 막내에게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아줬다.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닥의 유리 구멍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아래에 주차장이 보인다.
▲ 유니온타워 유리구멍 아래에 주차장이 보인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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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바깥에 걸어 다니는 사람과 주차된 차가 발아래 보인다. 아찔하다. 겁 많은 우리 식구는 누구도 유리 구멍에 발을 올리지 못하고 엉덩이를 빼고 구경한다. 음료수 다 먹은 둘째가 유리 구멍에 조심스레 발을 올린다. 첫째가 막내가 앉았던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돌아온 막내가 의자에 앉겠다고 엉덩이를 밀며 형을 밀어낸다. 둘이 노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이 웃으신다. 해는 길어지고 식구들 얼굴은 노을 색을 닮는다.

가까운 곳에도 부모님 모시고 오면 좋아하실 곳이 많은데 자주 오지 못해서 죄송하다. 이렇게 좋아하시니 부모님을 집으로 모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한 것은 많았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매일 바쁘고 정신없지만, 부모님 살아생전에 해야 할 버킷리스트 꾸준히 실천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1월 이야기 입니다.



태그:#부모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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