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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이 되도록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 한 분 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친일파는 '을사오적' 5명밖에 없는 것처럼 가르쳐온 것과 진배없다. 영화 <암살>(2015)에서 여성 독립군이자 저격수인 '안옥윤'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의 관심과 조명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시기별로, 분야별로 수많은 여성 항일투사들이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했다.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은 분은 불과 270명밖에 되지 않지만 이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아직 이름조차 밝혀내지 못한 분들도 있고, 공적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분들도 있으며 이념 문제로 인해 포상이 보류된 분들도 적지 않다. - 머리말에서.

2016년 1월 현재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 270명은 전체 독립유공자의(1만 4262명) 2%에 불과하다고 한다. 문제는 2% 밖에 안 될 정도로 여성독립운동가가 적은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받지 못했거나, 묻혀버린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책표지.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책표지.
ⓒ 인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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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딸, 총을 들다>(인문서원 펴냄)는 이런 현실의 여성독립운동가 24인의 독립운동, 그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임종국 평전>, <친일파는 살아있다>, <작전명 녹두> 등을 쓴 정운현 작가.

띠지에도, 머리말에도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밖에 알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유관순 외에 누구를 알고 있을까?

헤아려보자니 몇 년 전 알게 된 남자현 의사와 지난해 영화 <암살>을 통해 알게 된 안옥윤. 안창호와 이봉창의 거사를 도왔다는 이화림.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고 말했다는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그리고 백범 선생의 어머니 정도다.

아는 아름은 몇이나 될까. 목록을 훑자니 '33살 임산부, 일제의 품에 폭탄을 던지다'란 제목으로 소개되는 안경신 지사가 여간 궁금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임신한 몸으로 독립운동을 했을까. 대체 그는 누구일까?'라는 궁금함과 함께 말이다.

1888년에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난 안경신은 3·1만세의거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9일간 유치장에 구금되었다고 한다. 이후 평양에 본부를 둔 대한애국부인회에 합류, 모금한 군자금을 상해임시정부로 전달하는 교통부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모금된 돈은 2400원. 쌀 한 가마에 1원 하던 시절이니 엄청난 금액이었다. 안경신은 이처럼 중대한 일을 맡을 정도로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믿은, 당차며 독립의지가 강한 인물이었다.

안경신이 체포된 것은 도피생활 7개월째인 이듬해 1921년 3월 20일. 피신처에서 아기를 낳은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평양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에게 체포된 그는 원산을 거쳐 3월 26일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품에는 태어난 지 12일 정도 된 핏덩이가 안겨 있었다. (…)여성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남자현 의사처럼 항일무장투쟁에 나선 이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폭탄 투척 거사와 같은, 남성의 열사들도 함부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에 나선 여성 투사는 안경신이 유일하다. 거사 직후 언론은 그를 두고 '여자 폭탄법'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의 동지 최매지는 이렇게 증언했다.

"독립투쟁가가 많이 있고 여성 투쟁가도 수없이 있다. 그러나 안경신같이 시종일관 무력적 투쟁에 앞장서서 강렬한 폭음과 함께 살고 죽겠다는 야멸찬 친구는 처음 보았다." - <조선의 딸, 총을 들다>에서.

이런 안경신이 겨우 며칠 전에 출산한 몸으로 체포되어 1심에서 사형,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을 구형 받고 수감생활을 한 이유는 평양경찰서 폭파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총독부나 동양척식주식회사, 전국의 경찰서 등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 대표적인 건물 폭파를 목표로 조직된 대한광복군 총영 결사대원이었다.

1920년 8월 당시, 미국 상하 의원단 100여 명이 동양 시찰차 중국에 들러 일본으로 가는 길에 조선(한국)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정보를 입수한 대한광복군 총영은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총영 소속 10여 명의 청년들로 결사대를 꾸려 서울과 평양, 신의주의 경찰서 등을 폭파하는 거사를 계획한다.

33세의 안경신은 유일한 여성 대원이었다. 게다가 임신한 상태였다. 안타깝게도 안경신이 속한 제2대 2조의 평양경찰서 폭파는 폭탄의 불발로 실패하고 만다. 이에 다른 대원들은 황해도로 가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를 시도한다. 그러나 안경신은 임신한 몸이라 동행하지 못하고 혼자 남아 폭파 기회를 노리다가 한층 강화된 감시와 경비로 뜻이 좌절되고 만다. 그리고 출산한 지 보름도 되지 않은 몸으로 체포되고 만 것이다. 도피 7개월째였다.

8쪽으로 들려주는 안경신 지사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출생 직후 감옥에서 함께 지낸 아들은 감옥에서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시각장애인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출옥 후 안경신의 행적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핏덩이를 안고 형무소로 끌려간 그가 출옥한 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 그의 남편이나 앞을 보지 못하는 아들은 또 어떻게 되었는지 등, 그에 대한 모든 것이 말이다.

정부는 1962년에 3·1절을 맞아 그에게 건국훈장 국민장(현 독립장)을 추서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정부가 그 행적을 인정해준 결과이니 말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유족조차 찾지 못해 훈장을 국가보훈처가 보관하고 있단다. 하루 빨리 유족이라도 찾아 안경신지사의 영전에 뒤늦으나마 훈장을 바쳤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란다.

안경신 다음으로 만난 인물은 여성의 몸으로 조선의용대에 소속되어 일본군과의 전투에 직접 참가했으며, 의열단원으로 의열단장 김원봉과 부부의 연을 맺었던 박차정(1910~1944.5.27.) 그리고 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의 주인공으로 박헌영의 아내이자 독립운동 동지였다는 주세죽(1901~1953)이다.

저자는 이들을 포함 24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 그 행적과 삶을 8~16쪽 가량의 분량으로 들려주는데,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워낙 굴곡지고 험난한 시대였기 때문일까? 그들이 보통 사람들 하고는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한 편, 한 편이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쓴 생생한 드라마처럼 와 닿았다. 한 편, 한 편이 '흥미롭다'고 표현하면 그들의 숭고한 삶에 실례가 될까. 여하간 그만큼 쉽게 읽을 수 있는 독립운동사, 독립운동가들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시기별로, 분야별로 수많은 여성 항일투사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했다.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은 분은 불과 270명밖에 되지 않지만 이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아직 이름조차 밝혀내지 못한 분들도 있고, 공적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분도 있으며 이념문제로 인해 포상이 보류된 분들도 적지 않다. 혹자는 남성 독립유공자 수만큼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와 고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생존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증언을 듣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우선 1차 자료를 찾고 유적지를 뒤지는 일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기초자료가 수집되는 대로 서훈신청을 하여 공적을 제대로 평가받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런 연후에 기념사업과 현창사업도 병행해야 한다. 나라를 되찾는데 남녀가 따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이 그런 노력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 <조선의 딸, 총을 들다> 머리말 중에서.

문득 떠오르는 한사람이 있다.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이 파견한 의열단원들을 숨겨주는 한편 거사 계획 일부분에 관여했던 김혜숙씨가 연기한 '아네모네 카페 여주인'이다. 그녀는 단순한 협력자가 아니었다. 독립군 연락책이었다. 영화에서는 그 이상 다루지 않았지만, 카페 아네모네와 자신의 역할이 드러나자 권총으로 죽음을 선택한 그 카페 여주인은, 아마도 조국의 독립에 우리가 짐작하는 것 그 이상으로 자신의 많은 것들을 바친 여성 독립운동가이지 않았을까?

그처럼 일제강점기 많은 여성들이 독립운동을 돕거나 직접 참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알려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왜 겨우 2%에 불과할까? 그래서 이렇게라도 그들의 숭고한 삶을 들려주는 이 책 <조선의 딸, 총을 들다>이 참 귀하다 싶다.

'1980년대 말부터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있는 친일 문제에 깊은 관심으로 자료수집과 취재를 해왔다(프로필에서)'는 저자의 묻히고 잊힌 우리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데 작은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는 뜻에 마음을 더하고자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보다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데 힘을 내게 하는 응원이 될 것이기에.

덧붙이는 글 | <조선의 딸, 총을 들다>(정운현) | 인문서원 | 2016-03-03 | 16,000원



조선의 딸, 총을 들다 - 대갓집 마님에서 신여성까지, 일제와 맞서 싸운 24인의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

정운현 지음, 인문서원(2016)


태그:#여성독랍운동가, #안경신, #정운현, #역사, #박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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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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