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의 말을 할 때, '별 것도 아닌 일에 왜 목숨을 걸지?'라고 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이는 꼭 목숨을 걸어서가 아니라 남에게는 별 거 아니지만 내게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일요일, 부활절 미사를 보려고 남편과 집을 나섰다. 엄격히 말하자면 성당에 가는 길에 마을 입구에 마을 안내 돌을 세우는 곳에 들렀다가 성당에 가기로 한 것이다. 명칭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몰라서 마을 안내 돌이라고 했지만 쉽게 말해서 마을에 들어가는 입구에 마을 이름을 세긴 표지석이라면 좀 쉽게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멀리서 봐도 동네의 주민들과 작업하시는 분들이 꽤 많아 보인다. 우리 옆으로는 아주머니들이 걸어서 작업장으로 가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코앞에 승용차를 세울 수가 없어서 작업장과 좀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갔다.

아주 잘 생긴 자연석에 '구산동 입구'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 마을 명찰 다는 날인데, 좋지 안 좋아요?"

구산동 입구 자연석 그대로를 이용한 구산동 안내 돌이 멋스럽다.
▲ 구산동 입구 자연석 그대로를 이용한 구산동 안내 돌이 멋스럽다.
ⓒ 김경내

관련사진보기


이 동네에 살러 와서 두 번째 봄을 맞았다. 동네는 깨끗하고 아늑하고 인심도 좋다. 하지만 항상 마음에 의문이 생기고 아쉬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동네는 왜 마을을 알리는 아무런 표지판이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우리 마을에 들어오는 길은 두 곳이다. 하나는 다른 동네를 거쳐서 들어오는데 그 마을 입구에는 월산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세긴 돌이 서 있다. 그 돌을 보면서 들어 올 때마다 혼자서 우리 동네에 안내 돌을 세울 자리를 가늠해 보고는 했었다.

또 한 곳은 보해 양조장 길이다. 보해양조는 아마 장성을 대표하는 기업일 것이다. 그 앞길 약 700m를 거쳐야 우리 동네에 들어올 수 있다. 그렇게 우리 동네는 안 쪽에 있다. 길의 초입이라면 몰라도 안쪽에 있을수록 안내 돌이 있어야지 외지에서 오는 손님이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다. 아무리 내비게이션이 발달하고 흔하다고는 하지만,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 없을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각설하고, 어쨌든 이제 마을에 안내 돌을 세운다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쁘기까지 하다. 이런 내게 남편이 한마디 한다.

"당신 디기 좋아하네."
"그럼 좋지 안 좋아요? 드디어 우리 마을이 명찰을 다는 날인데. 제가 귀촌일기 연재를 1년 가까이 하면서도 우리 마을 이름을 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참 무심했네요."

생각의 전환점이란 게 별 거 아니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생각을 바꾼다거나 입장을 달리해 보면 그 사람에게 혹은 그 자리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생각이란 게 미련스러워서 꼭 필요할 때 떠오르지 않는다.

무의식 중에 주민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필자)도 최소한 한 번 정도는 안내 돌을 세울 마중물이 될 기회가 있었다.

35년 전, 성당에 어떤 물품을 구입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 그 물품의 필요성은 전 신자가 알고 있었으나 혼자 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침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선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얼른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현금 10만 원을 받아들고 나는 바로 성당으로 갔다. 그리고 사무장님한테 이러이러한 용도로 써 달라고 했다. 그 다음 주에 성당에 갔더니 전 신자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 마련돼 있었다. 모두 행복해하며 그걸 사용하고 있었다.

사무장님한테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머지 돈이 마련됐느냐고 물었더니, 한 사람에게 이러이러한 일로 헌금이 10만 원이 들어왔다고 이야기했더니 그 나머지 부족한 돈을 그 사람이 얼른 내 놓더라는 것이다. 그 사람 역시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라고 했단다.

그때처럼 먼저 적은 금액이지만 돈을 미리 내 놓고 이장님에게 그 돈의 용도를 얘기하면서 뜻을 전달했더라면, 그것이 마중물이 돼 보다 일찍 일을 해결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 자신이 참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중 짐을 옮기는 중장비차가 안내 돌을 들어서 밑돌에 올리고 있다.
▲ 작업중 짐을 옮기는 중장비차가 안내 돌을 들어서 밑돌에 올리고 있다.
ⓒ 김경내

관련사진보기


마을 안내 돌은 필자 혼자서만 필요성을 느낀 건 아니었다. 동네 이장님인들 왜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다만 그 시기가 좀 늦어졌을 뿐일 것이다.

작업은 이미 시작을 해서 밑돌은 앉혀놨다. 그 밑돌 위에 윗돌을 꽂을 쇠막대를 세우는 사람, 짐을 옮길 때 쓰는 작은 중장비차에 돌을 묶은 줄을 걸고 있는 사람, 그 밖의 사람들은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일을 돕느라고 분주했다. 분주함 속에서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 일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처음에는 잠깐 참석했다가 성당으로 가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일이 끝날 때까지 함께하기로 했다. 카메라가 미처 준비되지 않았지만 얼른 손전화의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동시에 인터뷰를 시작했다. 무의식 중에 20년 넘게 한 기자 기질이 나도 몰래 발동한 것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내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임을 밝히는 것도 처음이었다. 시골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어르신들이 주로 사는 곳이어서 그런지 인터넷 뉴스를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은 <사는이야기>의 특성상 풀어서 쓴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지폐를 내놓는 사람들

감사패 증정 구산동 이장님(검은 상의) 진태구 이사님(노란색 상의)에게 감사패를 전달 한 후 기념 촬영 한 컷
▲ 감사패 증정 구산동 이장님(검은 상의) 진태구 이사님(노란색 상의)에게 감사패를 전달 한 후 기념 촬영 한 컷
ⓒ 김경내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주민 회의에서 마을 입구에 안내 돌을 세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 돌을 표지석이라고 부르지만 여기서는 안내 돌로 한다) 모두가 찬성을 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성연(62) 구산동 이장님이 마을 입구에 있는 ㈜태현건설 사무실을 방문해서 마을 입구에 안내 돌을 세우고 싶다고 얘기했다.

마침 태현건설 진태구 이사님이 구산동 출생이어서 이야기는 뜻밖에 쉽게 성사됐다. 진태구 이사님은 현재 다른 동네에 살고 있지만 지금도 구산동 식구나 다름없기에 선뜻 돌을 기증하겠다고 했다. 돌에 글씨를 새기고 설치하는 일의 비용은 마을 회비로 충당했다.

며칠간 돌을 고르고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밑돌 위에 안내 돌을 세웠다. 덕담이 쏟아져 나왔다. 글씨가 좋다, 곰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어서 모든 복을 다 마을로 물어들이겠다, 그 돌 참 잘 생겼다는 등등의 덕담과 함께 돌을 기증한 이사님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의 뜻과 정성이 담긴 감사패를 돌을 기증한 진태구 이사님에게 이장님이 전달했다. 서로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마을 사람들 웃음이 아름답다. 지나가는 자동차도 멈추고 구경을 할 정도로 경사스러운 분위기였다.

나눔 구산동 주민들이 덕담을 주고 받으며 음식을 나누고 있다.
▲ 나눔 구산동 주민들이 덕담을 주고 받으며 음식을 나누고 있다.
ⓒ 김경내

관련사진보기


드디어 잔일까지 끝나고 완벽하게 세워진, 글씨도 또렷한 '구산동 입구'라고 적힌 안내 돌! 곧이어 그 자리에서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아니, 잔치라기보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형식의 상차림이었다. 돼지머리는 없었지만, 북어포와 넉넉한 떡시루, 각종 과일과 잔치에 빠질 수 없는 막걸리까지.

게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폐를 내놓기 시작했다. 주저하는 사람 없이, 돈은 이럴 때 쓰는 거라며 돈을 내면서도 기뻐하는 모습이다. 이어서 결코 애니미즘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의식이 거행됐다. 여자와 특정한 종교인을 제외한 주민들이 돌아가며 절을 했다. 기쁨의 표현을 그렇게 나타내는 게 아닌가 한다.

한 차례 의식이 끝나자 나눔이 시작됐다. 접시가 모자라자 손바닥에 떡을 올려 주어도 마냥 즐겁고 맛있기만 하다. 오가는 사람이 누구에게랄 것 없이 축하의 인사를 던졌다. 주민들도 떡이라도 좀 드시고 가라며 권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봄날 햇살보다 따뜻했다.

회관에는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현장소식을 기다리고 계신다. 소찬이지만 정성으로 점심을 준비해 놓고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신다. 현장에서의 행사가 끝나자 주민들은 마을 회관으로 갔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리듬이 실렸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은 일일지 모르겠으나 같은 일이라도 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성당에 가야 한다. '비록 부활 미사에는 참석이 늦었지만, 부활 미사는 내년에도 있으니까' 하고 자위하며 잘 되지도 않는 사투리를 써 본다.

"어쩌가이! 그래도 성당은 가야 쓰것는디. 시방 가도 괜찮을라나 몰러."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