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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는 시간을 보낸 학교인데 전국에서 가장 먼저 내쳐질 만큼 잘못 살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올해 2월 마지막 우리 반 아이들(전임 휴직 직전 담임했던 학생들) 졸업식에 직접 가서 축하해 줄 걸…… 그런 생각을 했어요."

교육부의 법외노조 후속조치로 전국에서 첫 직권면직 대상자가 된 김용섭 전교조 부위원장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학교법인 영신학원은 지난 8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김용섭 교사에 대한 '직권면직'을 의결했다. 휴직 사유가 소멸했음을 통보하고 복직을 안내했지만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징계위원회를 열기 전 당사자에게 출석통지를 하고 의견청취를 하는 통상적 절차들은 모두 생략됐다. 김 부위원장은 3일 뒤 등기우편으로 '해직'을 통보 받았다.

"학교 측은 교육부의 지시로 전임자 복귀를 요구하고 직권면직 절차를 밟았다고 하지만, 평소 '인사권은 법인에게 있다'는 것이 사립학교 측의 주장"이라면서 "해직시킨 자리에 교육부가 곧바로 정교사 발령을 낼 것도 아닌 만큼 전국 상황을 지켜보며 절차를 진행시켜도 될 텐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교육부의 지시에 충성하는 모양새와 최소한의 예의도 생략한 채 공문 몇 장으로 해직을 통보하는 처사에서 '교사는 시키는 대로 하라'는 사학의 전횡을 떠올렸다"고 비판했다.

김용섭 교사는 법인과의 갈등이 아닌 정부의 전교조 탄압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법인과 감정 대립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면서도 '전국에서 제일 먼저 할 필요가 있었나'라는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삭발하는 김용섭 전교조 부위원장
 삭발하는 김용섭 전교조 부위원장
ⓒ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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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 부위원장에 대한 직권면직 과정의 절차상 하자 논란이 불거지자 학교는 그에게 지난 17일 다시 한 번 징계위원회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 본인도 모르게 '교사 아님'을 결정해놓고 뒤늦게 다시 '교사 아님'을 결정하기 위한 자리에 출석하라는 요구다. 다시 징계위 출석을 요구하려면 기존 직권면직 결정 통보를 취소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 상식일 텐데 그 과정도 생략됐다.

"학교에 전화를 했더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더군요. 아직 시교육청에 보고하지 않아 직권면직이 확정된 것도 아니라는 말을 들으며 씁쓸했습니다. 1989년에 전교조 탈퇴 각서를 끝내 쓰지 않았는데도 해직되지 않았던 몇몇 교사들은 모두 사립학교 교사였어요. '내 손으로 교사를 내치는 일은 없다'는 건강한 생각을 가진 사학들이 있었던 겁니다. 당시 법인 이사장들은 부당한 정부 방침을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지금의 사학들은……"

그의 말 속에는 더 이상 갈 수 없을지 모를 학교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1992년 교직에 발을 디뎠으니 벌써 25년이네요."

그의 교직 생활 중 22년을 보낸 곳이 영신학원이다. 영신여고에서 3년, 영신간호고에서 19년을 근무했다. 영신학원은 그가 생애 첫 담임과 마지막 담임을 한 곳이기도 하다. 김용섭 교사는 '내 평생 가장 열정적으로 생활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떠나게 될 수도 있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1989년 고교 은사이기도 한 이수호 당시 전교조 사무처장이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해직됐지만 군대에 있다는 이유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 평생 빚으로 남았다. 그에게 '사범대에 가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한 선생님이었다. 교직 생활 시작과 동시에 전교조에 가입했고 '제대로 된 교사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활동했다.

교육부의 부당한 후속조치 중단을 촉구하며 삭발한 김용섭 부위원장
 교육부의 부당한 후속조치 중단을 촉구하며 삭발한 김용섭 부위원장
ⓒ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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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탄압에 무너질 수는 없지요. 다시 교사가 정권의 시녀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누군가는 남아서 전교조를 지켜야 하니까 기꺼이 남겠다는 결정을 한 겁니다."

인터뷰 중간 '정말 괜찮느냐'고 물었다.

"올해 노조 전임을 나오면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어느 정도의 각오도 있었다. 예상이 현실이 됐고 각오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간결한 대답은 이미 단련된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첫 발령 직후 어느 수업 시간. 복도에 서성이던 뒷모습을 보며 '저 학부모는 왜 수업을 방해하지?'라는 생각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가 마주친 어머니의 얼굴, '해직교사 복직 요구 실명 선언'에 참여한 뒤 '아들을 말려 달라'는 교장의 전화에 당장 이름을 내리려 길길이 뛰던 어머니, 이제는 병약해진 그 어머니를 떠올리며 아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신문을 통해 그의 해직 소식을 듣고 보내온 은사님의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며 그의 눈가가 붉게 변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나고 아프고 죄스럽고 심경이 복잡하네요.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내린 소신 있는 결단을 깊이 존중해요. 부디 힘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늘 씩씩하게 뚜벅뚜벅 나아가시기 바래요. 자기 몸과 가족은 언제나 가장 먼저 챙기시길. 못난 스승 이수호 드림'

그는 헌법노조의 권리를 요구하고 전교조가 여전히 건재함을 알리겠다고 밝혔다.

"법외노조 시기 정권의 탄압은 가속화 되는 데다가 전임자 축소 등으로 활동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두배 세배 발로 뛰며 전교조가 여전히 살아있는 조직임을 확인 시키고 학교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에도 보냅니다



태그:#전교조, #직권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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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교육희망>의 강성란 기자입니다.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교육 소식을 기사화 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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