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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단위.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말하는 '우리'라는 말의 기본적인 구성원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우리가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존재이고,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가족은 작은 공감을 해주면서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그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다. 확실히 가족은 힘이 되어주는 내 편이고, 힘이 들 때 응원을 해주는 존재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가족은 점차 그런 이상적인 생각으로 마냥 답할 수 없는 단위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가족이라고 해도 죽일 듯한 기세로 싸우는 모습을 종종 본다.

한국에서 결혼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이혼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족 해체가 급속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 해체가 발생하는 이유는 성격 차이, 경제적 어려움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가족이 되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잠시 글을 쓰는 나와 글을 읽는 독자 모두 우리의 가족을 한 번 돌아보자. 어떤 사람은 몇 번 다투더라도 모두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거나 항상 다투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의 사례에 해당한다.

가족끼리 있어서 행복한 적이 있었는가. 막상 그렇게 물어보면 대답할 수가 없다. 소소한 행복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부모님이 다투는 모습을 봐 왔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나와 동생에게 화풀이 하는 모습은 그나마 있었던 작은 행복을 집어삼켜 버릴 정도로 아팠다.

이번에 읽은 소설 <그의 세컨드 라이프>는 '가족'이라는 의미와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게 한 소설이었다.

그의 세컨드 라이프
 그의 세컨드 라이프
ⓒ 자음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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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세컨드 라이프>는 단편 소설집으로,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이 묶여 있다. 각 단편 하나하나가 가족 구성원으로 지내면서 어떻게 바라보는 시선이 비틀어지고, 어떻게 마음이 망가지고, 어떻게 괴로워하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놀랐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는 '숨을 멈춰봐'이라는 단편이다. 나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 소름 끼칠 정도로 '우리 현실에서 분명히 똑같은 집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지나친 집착을 하는 어머니의 일그러진 욕구는 종종 SNS 공유 혹은 언론을 통해서 몇 번이나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늘 행복하게 지내는 가족은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다툴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같은 피가 흐르고, 오랫동안 같이 지냈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은 모두 가치와 판단 기준이 다르므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만약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면, 그건 심각히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분은 평생, 한 번도 서로를 배신한 적이 없겠네."
그 순간 아리의 얼굴에서 홍조가 싹 가셨다. 온몸이 창백해졌다. 정말 상당한 양의 피가 빠져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당황했다. 아리의 얼굴 안쪽에서 불길한 붉은 기운이 올라오더니 두 눈이 깨진 헤드라이트처럼 번뜩거렸다.
"배신? 믿는 것 따위가 뭐가 중요해? 그건 각자 자기 방식으로 꿈을 꾸는 착각 같은 거야. 중요한 건 누군가가 누군가의 곁에 오래 있는 거야. 보고 만지고 감정들을 주고받으면서. 내가 갤 수 없는 것? 그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버리는 게 나아! (본문 144)

다투는 일 없이 늘 행복하게 지내는 가족은 결국 자기 방식으로 꿈을 꾸는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단위, 자신이라는 존재를 열심히 연기하면서 바깥과 안쪽으로 자신의 이상을 유지하고자 아등바등하는 것뿐이다. 오히려 때때로 싸우고, 때때로 화해하는 것이 인간적인 가족이다.

우리는 그런 가족을 '오손도손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많은 가정이 와해하지 않고, 각자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이런 가족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도 분명히 있다. 상처에 상처를 주는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은 자신에게 가장 상처를 주는.

<그의 세컨드 라이프>에서 나는 '숨을 멈춰봐'라는 이야기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부모님의 지나친 집착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그려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받은 상처는 공포심과 화가 되어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똑같은 방식으로.

"3분이나 숨을 멈추고 있는 거 힘들겠지? 혼자선 못 하겠지? 도와줄게. 기다려."
수완이는 소파 위에 플롯 케이스에서 악기를 닦는 가제 손수건을 꺼내 주방으로 가서 물을 묻혀 돌아와. 정확히 3분 동안 기다린 뒤 젖은 수건으로 지완이의 코와 입을 덮어. 지완이의 영혼이 창백해지고 있어.
바로 그때야. ...(중략)... 수완이는 기억하고 있어. 그동안 몇 차례 저 놀이를 지켜보면서도 몰랐는데 이젠 알겠어. 엄마가 본격적으로 산후 우울증을 앓게 된 무렵 난 공기 정화의 임부를 부여받고 안방에 놓아진 적이 있어. 어느 날 밤 엄마가 아빠랑 심하게 싸운 뒤 아기 침대로 달려들더니 눈만 꼭 감고 있을 뿐 깨어 있던 수완이의 목을 졸랐어. 그 이유는 단 하나겠지.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수완이니 그 앨 아프게 함으로써 아빠를 아프게 하려는 것. 당장 아빠가 달려들어 말려서 수완이는 무사했지만 저 앤, 저 애의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그때부터 아빠가 엄마를 환자로 대하고 케이러를 해주면서 엄마는 호전되었지만, 수완이의 상처는 입을 꼭 다문 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지금 그것은 똑같은 상처를 타인에게 주어야만 숨을 쉴 수 있는 괴물이 돼버렸어.
(본문 192)

오늘날 우리는 정말 잔인한 방식으로 상처를 주는 가족의 모습을 본다. 얼마 전에 보도된 평택의 아동 학대 사건의 범인인 계모와 친부 또한 그 사례에 해당한다. 어쩌면 그들도 어렸을 적에 그와 똑같은 일을 부모님 혹은 주변 어른에게 겪어본 게 아닐까? 어릴 적의 학대는 지울 수 없는 상처이니까.

나는 거기에 근접하는 경헝을 한 적이 있다. 솔직히 나는 내가 스스로 무서울 때가 있다. 사람에게 받았던 공포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사람에 대한 분노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정말 완전히 스스로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나버리게 되면 도대체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이건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이라도 사람과 빚는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하고, 애초에 갈등의 원인이 벌어지는 상황 자체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사람과 거리를 두는 이유 중 하나다. 나는 이런 내가 좋은 친구, 연인, 가족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과연 어릴 적에 받은 상처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나는 당당히 'YES'라고 답할 수 없다. <그의 세컨드 라이프>를 읽다 보니 문득 나의 이런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도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가족에서 배운 건 경쟁과 차별도 있으니까.

사랑을 배운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지만, 사랑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폭력과 집착 혹은 자기 소유욕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런 일그러진 마음은 데이트 폭력, 아동학대, 존속 살해 등으로 벌어지는 모습을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절대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그의 세컨드 라이프>는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을 통해서 가족, 그 자체를 구성하는 우리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우리가 매일 밤 편안하다고 들어가는 집이 누군가에게는 숨이 막혀서 괴로운 장소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어떤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노지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세컨드라이프

윤효 지음, 자음과모음(2016)


태그:#그의 세컨드 라이프, #책, #책 서평, #가족, #가족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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