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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 칼럼은 기자가 '대구광역시'의 입장에서, 1인칭 시점으로 쓴 글입니다. - 기자의 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10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했다.
▲ 대구 방문한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10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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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배우 손예진, 한채영, 문채원씨를 우선 꼽을 수 있겠네요. 능금은 또 어떤가요. 프로야구 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이기도 합니다. 아, 물론 요즘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 훨씬 더 친숙하긴 하지요. 네, 짐작하셨다시피 저는 대구광역시입니다.

사실 제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간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답니다. 올해로 13주기인 대구 지하철 참사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누리꾼들이 저를 '고담 대구'라고들 불렀잖아요. 그런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근 10년간 브랜드 슬로건으로 '컬러풀 대구'를 내세웠지만 큰 효과가 없더라고요. 게다가 '박근혜의 정치적 고향'이란 낙인까지 철석같이 달라붙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저를 찾아오셨더랬죠. 참나. 총선이 코앞인데, 창피해서 어디. 대통령님을 보면, 정치적으로 순수한 건지,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실천해서인지 무척이나 화끈하단 말이죠.

오늘(16일)은 또 옆 동네인 부산에 가셨다면서요. 아이고. 부지런하기도 하셔라. 솔직히 저는 지난 10일,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대통령님의 대구 방문 소식을 전하며 이런 멘트를 날리는데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라고요. 아무래도 대통령 옆에는 '상식'이나 '균형'을 갖추고 조언을 해 주는 측근들이 없는 건 확실해 보여요.   

"... 이른바 TK 물갈이설에 이어 당내 공천 갈등이 한창인 가운데, 대통령의 대구 방문이 과연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야당에선 선거 개입이란 비판이 당장 나왔습니다."

화끈한 대통령님, 제 얼굴이 다 화끈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이 26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제20대 총선 공천신청자 면접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공천 면접 마친 유승민 의원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이 26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제20대 총선 공천신청자 면접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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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엔 그런 정치인이 분명 있었는데 말이지요. 대통령님의 기준에 '진실한 사람'은 진박일지 몰라도, 대구 시민들이나 국민들 눈에 '진실한 사람'은 따로 있었거든요. 왜 대통령님과도 한때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잖아요. 대구 동구을의 3선 의원이자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인 유승민 의원 말이에요.

그런데 너무 하셨어요. 원래 싫어하는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대통령님 스타일은 잘 알고 있지만, 10일 경북 안동·예천 신청사 개청식에서 '진박 후보'인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하고만 악수를 하셨다면서요? 에이, '중2병 사춘기'도 아니고 좀 더 대범하게 정치를 하셔야지 그렇게 네 편 내 편 가르면 쓰나요. 가식이라도 대구의 핵심 정치인으로 꼽히는 유승민 의원을 비롯해 현역 의원들도 좀 챙겨주시지 그러셨어요.

아, '배신의 정치'를 하는 정치인은 내치는 게 당연하다고요? 대통령님이 용인하지 않는 '개혁'을 부르짖은 죗값을 아직 덜 치렀다고요? 아니 그럼, 공천 여부라도 좀 빨리 결정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오늘(16일)까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공천심사 결과를 7번이나 발표하는 와중에 자신의 이름만 쏙 빠져있는 유승민 의원이 얼마나 노심초사하겠어요.

또 '진박 물갈이' 소식에 벌벌 떨어야 하는 대구 지역 현역과 예비 후보들은 뭐가 되나요. 아무래도 걱정이 많으셨나 봐요. '진박' 예비후보들이 친유승민계 의원들에게 고전하고 있다는 예측이 나돌아서요. 솔직하기도 하셔라. 그래서 대통령님이 저를 방문하고 난 직후인 지난 13일,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대구 지역 여론조사를 다시 했나 봐요. 이른바 '박근혜 마케팅' 효과를 기대한 노림수였겠지요.

그런데, '선거의 여왕'이신 대통령님의 방문 효과가 그리 큰 것 같진 않더라고요. 어쨌거나 고심 중이시라고요? 여당의 공천은 대통령님이 직접 관장하는 게 아니라고요? 에이, 왜 그러세요. 대통령님을 '누님'으로 부르던 윤상현 의원이 '막말 파동'으로 공천에서 탈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뭐라고 생각하는 줄은 아세요? 이건 다름 아닌 TV조선 보도 제목이랍니다.

'비박 '피의 화요일'... 윤상현 날려 진박 5명 구했다'

이 정도면, 정말 남는 장사 아니었을까요. 이재오 등 친이계 의원들도 우수수 탈락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혹자들은 윤상현 의원의 '자작극' 의혹까지 제기하더라고요. 그 윤 의원은 또 누구와 교감을 나눴겠어요. '청와대의 복심'이라는 관측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니랍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대통령님께, 딱 하나만이라도 부탁하고 싶어요. 대구, 이제 그만 놔 주시라고요.

저요, 정말 심각합니다 

15일 오후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결과를 발표하자 유승민 의원의 선거사무실에서 지지자들과 기자들이 관심있는 표정으로 TV를 바라보고 있다.
 15일 오후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결과를 발표하자 유승민 의원의 선거사무실에서 지지자들과 기자들이 관심있는 표정으로 TV를 바라보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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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다가온다. 그러나 대구·경북의 결과는 또 뻔할 것 같아 미리 재미가 없어진다. 새누리당이 계파 간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공천패권을 남용한다 한들 강고한 텃밭의 지반(地盤)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이 깨질 날은 언제 오려나."

지역 민심에 정통할 수밖에 없는 <영남일보>의 한 칼럼 중 일부랍니다. 그렇게 TK와 대구는 견고한 성채가 됐습니다. 지난주 한 여론조사(14일 리얼미터 3월 2주 주간집계)에 의하면 새누리당 지지율이 70%를 상회한 것에서도 알 수 있죠. 70%라니. 그야말로 독보적입니다. 그 와중에 친유승민계를 몰아내고 '진박'을 구하려는 대통령님의 노력이 가히 눈물겹습니다.

아닙니다. 이제 제발, 저를 좀 놔주세요. 저요, 정말 심각합니다. 20년 넘게 지역내총생산이 전국 꼴찌랍니다. 새누리당과 대구가 낳은 정치인 박근혜만 오매불망 지지하면 뭐합니까. 이뿐만이 아니에요. 소득증가율과 청년고용률은 꼴찌, 청년실업률·월 근로시간 전국 최고. 앞에서든 뒤에서든, 제가 1위를 달리고 있는 항목들을 좀 더 읊어 드릴까요.

'직장인 월평균 급여 전국 꼴찌,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 최하위, 교통 안전 지수 최하위, 외국인 투자 전국 최하위, 지방선거 투표율 최하위, 소득증가율 꼴찌, 가족관계 만족도 전국 최하위, 사회 안전도 인식 전국 최하위, 지역발전 기여도에서 대구 국회의원 꼴찌.'

홍의락 더불어민주당 예비 후보가 내놓은 자료 중 일부입니다. 제가 괜히 '고담 대구'라고 불린 게 아닙니다.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대통령님은 권력놀음에나 취해있으신 거 같네요. '진박'이든 '친박'이든 '비박'이든,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제발 대구 시민들 잘 먹고 잘살게만 해달라는 바람이 그리 크고 어려운 일인가요.

"꼴찌대구,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며 홍의락 의원실에서 만든 카드뉴스.
▲ '고담시티' 대구? "꼴찌대구,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며 홍의락 의원실에서 만든 카드뉴스.
ⓒ 홍의락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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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미터가 CBS와 국민일보의 의뢰로 8일부터 10일까지 대구 동구을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14일 보도), '진박'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유승민 의원에게 밀리고 있다고 하네요. 다른 '진박' 후보들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차라리 잘 됐습니다. '진박'이 얼마나 우스운 정치 마케팅인지, '박근혜 마케팅'이  얼마나 촌스럽고도 유치한 놀음인지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설마 유승민 의원을 내치는 결단을 내리시진 않겠죠? 아니면 이미 새누리당에 메시지를 보내신 겁니까? 그것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내일(17일)이나 되어야 유승민 의원의 '생사' 여부가 결정될 것 같더라고요. 저 대구 역시 두 눈 부릅뜨고 결과를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진박'을 살리고자, 전 원내대표이자 경쟁력 높은 3선 의원을 내치는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유승민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지 말이에요. 유승민 개인이나 유승민계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 대구를 위한, 대구 시민을 위한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그에 대한 민심은 또 어떠한지 꼭 확인해 보렵니다.


태그:#유승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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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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