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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실 때 송경동 시집 사다 주실 수 있어요.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신간 시집이에요."

며칠 전 퇴근 무렵,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야자를 시작하고 있을 아이가 대뜸 문자를 보내온 것. 무슨 급한 일일까 한참 문자를 들여다 보았다. 밤에 집에 와서 말해도 될 것을 뭐가 그리 급히 읽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는 언제부턴가 도서관에서 혹은 서점에서 여러 시인들의 시를 만났다. 송경동 시인의 시는 '꿀잠'과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읽었다고 한다. 한 번은 야자가 끝나고 집에 와서 늦은 밤, 나에게 한 페이지를 펼쳐주며 꼭 읽어보라고 하기도 했다.

내가 처음 만난 시인의 시는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란 시였다. 그 시를 통해 시인의 삶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흔히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노동자 시인, 운동권 시인 같은 거였다. 고졸이라는 학력, 소년원 출신이란 설명도 있었다.

그 다음 세월호 집회의 현장에서 그의 절규를 먼 발치에서 들었다.

돌려 말하지 마라
온 사회가 세월호였다
자본과 권력은 이미 우리의 모든 삶에서
평형수를 덜어냈다 정규직 일자리를 덜어내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성을 주입했다
사회의 모든 곳에서 '안전'의 자리를 덜어내고
그곳에 '무한이윤'이라는 탐욕을 채워넣었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중에서)

송경동 새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 새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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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에는 현장을 누비던 시인의 시간들이 빼곡하게 들어있다. 공장에서 노동하던 시간들에 대한 회상과 더불어, 무수한 현장에서 연대하고 함께 싸우던 시간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한진중공업 고공 농성장의 김진숙과 기륭전자 비정규직과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과 용산 철거민들과 그는 늘 함께 있었다.

그는 또 우리나라 약자들과의 연대를 넘어, 외국에 있는 약자들에게도 똑같이 따뜻한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는 그렇게 나온 시다.

2013년에 있었던 캄보디아의 유혈시위는 나에게도 생생하다. 한국 공장이 입주해 있던 공단에 캄보디아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을 올려 달라고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한국 대사관 요청으로 신속하게 투입된 캄보디아 군인들의 총격으로 여럿이 사망한 사건이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 대사관은
유혈사태 전 '긴급서한'을 통해
'정체불명 아웃사이더들의 불법 행동'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없을 시
'캄보디아 내 한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된다'고
캄보디아 정부와 정치권의 강력한 개입을 요청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중에서)

스스로 노동자였고, 스스로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처절한 생존 싸움인지, 그럼에도 밑바닥 노동자들은 '꿈이란 것을 가져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하루하루를 사는지 잘 아는 송경동 시인. 그는 같이 연대하고 싸우는 동안, 싸움의 대상이 어느 한 개인, 어느 한 자본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은 아닐까.

돈이면 몇몇 시시한 사람들 생명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는 이 무시무시한 세상의 모습을, 그는 용산 철거민들의 비극적 죽음에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줄지은 죽음에서 이미 목도했을 것이다.

자본의 마수는 외국에서도 똑같은 논리로 평범한 서민들의 꿈을 쉽게 바스러뜨리고 있다는 것을 캄보디아 한국 공장 노동자들의 죽음에서, 2013년 방글라데시 다카 봉제공장이 무너져 압사해 죽은 노동자들에게서 그는 다시금 처절히 깨닫는 것이다. 국내에서 국외에서 자본의 탐욕에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을 보며 그는 끝내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묻는 것이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전세계 부자 85명이
세계 인구 절반과 동일한 부를 소유한 이 지구별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중에서)

시인은 부끄러움이 많다. 그렇게 연대의 손을 내밀고도,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약자를 탄압하는 입장에 선 기업을 보자니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심지어 남들의 아픔을 시로 쓰는 것조차 부끄러워 한다. 이 맑고 맑은 영혼이라니.

'그'를 저작권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가
누군가의 비참과 울분을
확실한 저작권의 계기로 상상하지는 않았는가
('저작권' 중에서)

울분과 투쟁과 눈물이 배어난 시들을 따라가노라면 조금 버겁기도 하다. 우리 일상도 팍팍한데 이 많은 울분들을 어찌 다 감내할 것인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큰 울음만 내고 있지는 않다. '그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란 시에서 길고양이에게 우유를 건네는 모습은 시인의 맑은 소년 같은 연민을 읽게 한다. 또 탈곡기로 콩을 털면서 땅에서 나는 것들에게 생명의 경이를 느끼고 있다.

우수수 쏟아지는
오늘, 콩들이 새롭다
(다른 서사 중에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말하는 그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 '내 안에 더 큰 어둠이 웅크리고 산다'고 고백하는 그에게 그 어둠을 조금 몰아내 줄 희미한 빛으로 같이 서 있고 싶다.

아이와 시집을 읽고 나서 어땠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말을 아끼는 아이는 "이런 시들이 꼭 필요하죠" 그런다. 얼마 전에 테러방지법 시대에 떠오르는 시라며 송경동의 시 '혜화경찰서에서'를 들려주던 아이였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 지음, 창비(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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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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