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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난해 해방 7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그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사 왜곡으로 세대를 넘은 갈등과 고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3월!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대지를 뚫고 나오고, 나무들은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산과 들에 생명의 바람을 넣어 준다. 그러면 우리의 산과 들에는 약산의 진달래가 뒤덮을 것이며 상춘객들은 그 기운을 듬뿍 받으며 재충전하고 지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준비할 것이다. 

한편 또 다른 3월에는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장렬히 산화해 간 조선의열단과 조선의용대(군)의 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작가는 상춘객들을 의식해서인지 "가려진 지속-약산 아리랑"이라는 주제를 우리에게 던졌다.

개막식이 있었던 지난 13일은 97년 전 경남 밀양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치며 만세운동이 열린 날이다. 종로의 탑골 공원에서 3․1만세 운동을 본 윤치형과 윤세주는 밀양으로 돌아와 을강 전홍표, 지인들과 함께 밀양 장날(음력 2월 12일, 밀양은 2일, 7일장)에 맞춰 '조선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그 날에 맞춰 밀양의 시립박물관에서 의미 있는 개막식을 연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사)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가 후원했다. 작가인 권순왕 교수는 "시대의 아픔을 승화시키기 위해, 조선의 독립 투쟁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했다.

개막식에는 밀양 시민들 대표해 박일호 밀양시장과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구소 여러 지부 등 역사 정의와 항일 독립투쟁을 기념하는 단체와 문화 예술 관계자들이 모였다.

조선의열단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과 그의 부인 박차정 여사, 약산의 평생 친구이자 옆집 동생이었던 석정 윤세주, 그리고 항일 무장 투쟁의 핵심인 조선의용대(군)와 독립투쟁의 훈장(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공훈(포장, 표창) 등 수훈을 받은 밀양의 항일 독립 투쟁가 69명의 이름도 작가의 손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이번 전시회에 등장한 독립 투쟁가들은 밀양 경찰서와 경북의 폭탄 투쟁, 부산경찰서, 조선총독부, 상해 황포탄, 동척 등 폭탄 투쟁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조선의 의열단원 13명이다. 또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을 장악하기 위해 팔로군과 조선의용대의 거점인 타이항산을 점령하기 위해 진행된 참빗작전(일본의 소탕전에 맞서 싸웠다 하여 반소탕전이라고 부르기도 함)에서 싸웠던 투사들이 사진 속에 갇혀 있다가 작가의 손을 거쳐 우리의 가슴 속으로 따뜻하게 들어왔다.

1938년 중국 화북성 무한시에서 창립한 조선의용대의 기념 사진
▲ 권순왕, <가려진 지속-조선의용대>, 2016 1938년 중국 화북성 무한시에서 창립한 조선의용대의 기념 사진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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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장악을 통해 중국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던 반소탕전에서 팔로군과 조선인들의 퇴로를 뚫기 위해 일본군을 유인하는 작전을 진행하다 십자령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조선의 독립 투사인 윤세주와 진광화 선생이 환생한 것 같은 '십자령의 나팔꽃'은 조선의용대가 춥고 배고픔을 극복하며 함께 훈련에 임하던 훈련 나팔소리가 되어 내 가슴속으로 파고 들었다.

윤세주와 진광화가 전사한 타이항산 십자령에 파어난 나팔꽃은 이름없이 산화해간 조선의용대원들의 환생인가!
▲ 권순왕, <십자령에 피어난 나팔꽃>, 2016 윤세주와 진광화가 전사한 타이항산 십자령에 파어난 나팔꽃은 이름없이 산화해간 조선의용대원들의 환생인가!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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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독립을 위해 항일 투쟁한 동지이자 부부였던 김원봉과 박차정의 모습은 힘든 독립 투쟁 속에서도 작가의 손을 거쳐 우리에게 '가려짐'의 안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박차정 선생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과 민족혁명당 부녀부 주임 등 치열한 삶을 살았고, 항일 투쟁 속에서의 14년의 결혼 생활은 자식도 허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투쟁속에서 얻은 병으로 독립도 보지 못하고 충칭에서 병사하여 약산의 손에 의해 귀국을 하게 되었다. 이들 부부의 사진은 작가의 창작을 통해 그 애잔함을 보여주고 있다,

항일 무장 투쟁의 최선봉에 서서 치열하게 싸웠던 박차정, 김원봉 부부
▲ 권순왕, <가려진 지속-박차정과 약산>, 2016 항일 무장 투쟁의 최선봉에 서서 치열하게 싸웠던 박차정, 김원봉 부부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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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투쟁을 하다 옥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적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했고,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조선의용대를 지휘하던 항일투쟁가인 윤세주가 추운 엄동설한에도 조선의 독립에 대한 열정으로의 투사의 이면에 공개되지 않았던 철학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항일 투쟁 옥살이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책벌레이자 철학자인 윤세주
▲ 권순왕, <가려진 지속-석정 윤세주>, 2016 항일 투쟁 옥살이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책벌레이자 철학자인 윤세주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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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왕 교수는 최근 몇 년째 시대의 아픔인 역사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1947년부터 1953년까지 제주도에서 있었던 해방전후의 엄청난 아픔인 '제주4․3'을 주제로 한 바 있으며, 최근 몇 년째 역사를 중심으로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임시정부 마지막 국무위원으로 해방 후 귀국하였으나 친일경찰에게 모욕을 당한 뒤 귀가해 사흘 동안 울었다는 이야기와 자료를 보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약산의 그 눈물은 조선의열단과 조선의용대 등 항일투쟁가들이 흘린 피눈물이었을 것이고,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 작가의 말처럼 작품 중 일부는 캔버스에 칼자국을 내고 뒤편에서 물감을 밀어 넣는 기법으로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당시 항일 투쟁가들의 해방 후 친일파들에 대한 고통과 함께 역사의 미완인 친일청산의 뜻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번 전시의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 백다은 선생은  "권순왕은 역사 이미지를 통해서 작품에 접근하고 있다. 예술은 이미지에 의해서 구성이 된다고 하지만, 권순왕의 작품에서 특이한 점은 그간의 상징적 이미지의 접근에서 역사적 사진 이미지를 프린트한 후 그 위에 재 작업을 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지점에 있다. 그는 이미지를 찢고 다시 물감으로 채우며 이미지 자체를 드러내며 그 위에 감정 혹은 그들의 감정을 대변하듯 조금 더 강한 회화적 투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예술가로서의 삶에서 일어나는 시간의 지속에서의 발견과 더불어 역사 속에서 잊혀진 약산과 의열단을 비롯해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해석하였다.

분단된 나라에서 꺼내기가 너무나 힘든 시대의 이야기인데다, 그래서 가르치지 않는, 그리고 기억하기를 회피하는, 망각하는 역사 이야기를 작가인 권순왕 교수는 굳이 "가려짐"이라는 단어로 역사를 상기시켰고,  "지속"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들이 꿈꾸었던 사람사는 세상, 통일된 한반도, 그리고 분단된 나라에서의 명예 회복의 날을 기약하고 있는 듯하다.

해방 70주년을 의미하는 영화 '암살', 올해 많은 시민들의 눈물과 함께 한 '귀향' 등 가려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으로서의 이번 전시 또한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작품은 경남 밀양시 교동 밀양시립박물관의 특별 전시관에서 오는 26일까지 만날 수 있다.


태그:#권순왕, #가려진 지속-약산 아리랑, #조선의열단, #조선의용대,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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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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