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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와 네팔을 가르는 칼리 강줄기 따라 반밧사 가는 길
 인도와 네팔을 가르는 칼리 강줄기 따라 반밧사 가는 길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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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줄라에서 출발한 택시, 지프차는 인도의 동쪽 경계선, 네팔을 가르는 칼리 강을 따라 또 다른 인도 네팔 국경, 밧바사(Banbassa)를 향해 내달린다. 다르줄라를 빠져 나와 얼마쯤 달려가자 런지비라는 작은 마을이 나왔다.

마을의 강 건너편이 바로 네팔 땅이다. 강줄기 사이로 사람만 건너다닐 수 있는 작은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인도와 네팔을 오고 갈 수 있는 그 구름다리 주변에는 작은 초소는 물론이고 경찰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프차가 멈추면 구름다리를 통해 네팔로 건너가 볼까 싶었는데 그냥 지나친다.

한 시간쯤 달려왔을 무렵 강과 협곡이 어우러진 기가막힌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지프차를 멈춰 달라 부탁하고 싶어 백미러에 박혀 있는 운전기사 표정을 보았다. 인상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 괜히 핀잔만 들을 것 같아 말도 꺼내지 못하고 창문 사이로 사진기를 들이댔다.

출발한 지 두 시간째, 구불구불한 산비탈 길을 달려온 탓인지 중간 좌석에 앉아있던 두 사람이 창문을 열고 번갈아가며 헛구역질을 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독하다. 이런 험난한 지프차를 타고 주변 풍경을 이틀째 즐기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리게 생긴 사람이 웩웩거리며 속에 것을 토해 낸다.

때마침 오글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왔다. 지프차가 멈춰 섰다. 다들 산 쪽을 바라보며 노변에서 참았던 오줌 줄기를 흘려 내보내고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을 먹지 않는 나는 짜이 한 잔을 시켜 마시며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이라 할 것도 없다. 몇몇 작은 점포와 식당이 들어서 있어 작은 간이 휴게소나 다름없는 이곳에도 삼성 스마트폰 간판이 보인다.

술에 취한 채 비좁은 산악도로를 달리는 운전기사

 반밧사 가는 도중에 만난 작은 마을
 반밧사 가는 도중에 만난 작은 마을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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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 온 지 70여 일. 어디를 가든 삼성 모바일을 취급하는 점포가 따라 다닌다.
 인도에 온 지 70여 일. 어디를 가든 삼성 모바일을 취급하는 점포가 따라 다닌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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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온 지 70여 일. 어디를 가든 삼성 모바일을 취급하는 점포가 따라 다닌다. 인도 시골마을에서 처음 삼성을 만났을 때는 한국인으로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는 무섭다.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이 인도 산골마을 구석구석 침투해 들어가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공포감마저 든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운전기사는 9시 30분쯤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지프차가 출발할 무렵 코사니에서 40일 가까이 인연을 맺었던 인도 명상가 가텀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헤이 송! 다친 무릎은 어떻소?"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소?"
"다르줄라에는 출입국 사무소가 없어 반밧사로 이동 중입니다."

반밧사 국경으로 이동한다고 말하자 내가 '발길 닿는 곳이 목적지라는 식으로' 대책 없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소지품을 잘 간수하고 몸조심하라 당부한다.

"네팔에 무사히 잘 들어가면 내게 전화해줘요."
"네팔에서 어떻게 전화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심카드를 바꾸면 됩니다."

네팔에서 전화 통화를 하려면 인도에서 사용했던 심 카드를 네팔에 맞는 심 카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네팔에서 전화 통화할 수 있는 심 카드를 바꿀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네팔에 들어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어떤 확실한 계획조차 없었다. 다만 다르줄라에서 가장 가까운 출입국 사무소가 있다는 국경, 반밧사를 향해 가고 있을 뿐이었다.

함께 떠나는 여행자들이 '더치페이'로 소비를 정확히 분배하는 소비 공동체라면 지프차를 함께 탄 사람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지프차에 모든 것을 떠맡겨야 하는 운명공동체다. 반밧사로 향하는 지프차는 이전에 이용했던 지프차와 달랐다. 시골 버스처럼 내리고 타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목적지가 같다.

운전기사와 조수석에 타고 있는 매끈하게 생긴 인도 사내를 제외한 다섯 명 모두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네팔 사람들이라고 한다. 네팔 노동자들 모두가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른다. 영어는 자본의 첨병이다. 인도의 구멍가게나 간이식당에서조차 돈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다. 영어권에서 벗어난 사람들일수록 순박하다. 영어와 상관없이 이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친숙해 졌다. 바나나 한 개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서로 권했다.

 차창 사이로 험난한 산길 저 멀리 다랭이 밭들이 들어서 있다.
 차창 사이로 험난한 산길 저 멀리 다랭이 밭들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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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차는 울퉁불퉁한 산길을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 어느 지역은 한 시간 가까이 달렸는데도 길거리에 단 한 사람 보기 힘들 정도로 온통 산악지대다. 어떤 지역은 아슬아슬한 절벽 길로 이어져 있고 또 어느 지역은 산비탈이 다랭이 밭으로 주름지어 있다.

몸이 피곤해져 오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도 그리 즐겁지 않다. 졸음이 쏟아진다. 벌써 다섯 시간이나 달려왔다. 도로 양 옆으로 식당과 상가들이 몰려 있는 작은 도시에서 지프차를 멈춰세운 운전기사가 내게 처음으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고 갈 겁니다, 당신은 뭘 먹겠습니까?"
"나는 과일이면 됩니다."
"이 식당은 짜파티가 맛있습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서 짜파티를 권하는 운전기사의 미소가 순박해 보인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때가 많다. 그의 순박한 미소는 험상궂은 인상을 단박에 지워버렸다. 그는 내게 아무리 험상궂고 불친절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선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나는 생수와 바나나, 과자를 샀다. 네팔 노동자들 역시 나처럼 값싼 바나나와 과자를 사서 서로 나눠 먹는다. 운전기사와 네팔 노동자들의 인솔자로 보이는 사내와 함께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인도 사내는 한 시간쯤 지나서야 식당 뒤편에서 나온다. 중간 자리에 앉은 네팔 사람이 운전기사에게 뭐라 뭐라 힌디어로 따지고 들자 운전기사가 인상을 쓰며 한마디 쏘아 붙이자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한다.

술기운으로 빨라진 심장 박동수만큼 올라간 속도

 산악도로 주변 여기 저기에서 산불로 연기가 오르고 있다.
 산악도로 주변 여기 저기에서 산불로 연기가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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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차 안으로 들어서자 술 냄새가 풀풀 났다. 운전기사는 내게 술 한 잔 할 거냐며 술병을 들어 보인다. 나는 마시지 않겠노라 잘라 말했다. 지프차가 다시 출발했다. 작은 도시를 벗어나 얼마쯤 달리자 다시 비좁은 산악도로가 나왔다. 고불고불한 산길 아래로 까마득한 절벽이 아찔하게 다가온다. 산 주변 곳곳에서는 산불로 연기가 오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나온 세 사람의 말이 많아졌다. 서로 낄낄거리며 기관총 쏘아대듯 뭐라 뭐라 쉬지 않고 힌디어를 쏟아낸다. 술기운으로 빨라졌을 심장 박동수만큼이나 지프차의 속력도 빨라지고 있다. 핸들을 꺾는 폼도 다소 거칠어졌다. 눈꺼풀이 무거워 보이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운전기사 옆자리에 앉은 매끈한 인도 사내는 계속해서 전화 통화를 한다. 그것도 큰 소리로 주절주절 떠들어 대고 있다. 음악 소리보다 더 크다. 술에 약하거나 이들 중에 가장 많이 마신 것 같다. 급기야는 차안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합장까지 한다. 둘 다 낮술에 취한 것이 분명하다.

나는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운전기사가 맘에 들기 시작했는데 "아이구, 저눔 새끼들을 그냥 콱..." 한국말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운전기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한 손으로 손전화기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아찔한 절벽 곡선 길을 잘도 꺾어 나간다.

통화 상대와 몇 마디 주고받더니 손전화기 저편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내의 목소리 또한 점점 커진다. 큰 소리를 내지르며 싸운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인도 사내는 전화기를 통해 여자와 다투는 것을 지켜보며 낄낄거린다. 화 기운이 서린 목소리만큼이나 운전기자의 심장 박동수가 좀 더 빨라지고 있는 것이 불안정한 지프차를 통해 느껴진다. 하지만 어쩌랴, 차에서 내려 어느 지역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오지에서 혼자 걸어갈 수도 없잖은가.

갑자기 운전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커브 길에서 육중한 트럭과 정면으로 마주쳤던 것이다. 거의 일이십 센티미터 차이로 차가 멈췄다. 운전기사는 물론이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 운전기사가 한갓진 곳에 차를 세우고 잠시 심호흡하며 담배를 꺼내문다. 이제 정신 좀 차리겠군, 싶었는데 이건 또 뭘 일인가 가장 많이 취해 보이는 인도사내가 운전대를 잡는 게 아닌가.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려, 그려. 니미랄, 갈 데까지 가보자."

 수십개의 크고작은 종이 매달려 있는 도로가 힌두사원. 운전자들은 이 사원 앞에서 잠시 차를 세워 신에게 무사고를 빈다.
 수십개의 크고작은 종이 매달려 있는 도로가 힌두사원. 운전자들은 이 사원 앞에서 잠시 차를 세워 신에게 무사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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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길을 따라 얼마쯤 흥청망청 달려가던 지프차가 도로가에 있는 힌두사원 앞에 멈춰 선다.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사원 앞에는 크고 작은 종들이 수십 개 매달려 있다. 사원 앞에 서 있던 사내가 접시를 들고 지프차 옆으로 다가와 운전기사의 이마에 무사고를 기원하는 붉은 가루를 찍어 준다. 그 사내에게 운전기사가 지폐 한 장을 건네며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신이 당신을 보호해줄 것입니다."
"얼마를 내면 됩니까?"
"당신이 원하는대로요."

내가 접시를 든 사내에게 10루피를 건네자 운전기사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몇 푼의 루피로 신의 가호를 받은 운전자는 정신없는 인도 노래를 따라 부르며 또다시 사정없이 지프차를 몰아 내달린다.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참으로 낙천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저 아래로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이는 절벽을 아찔하게 바라보며 그 생각을 접는다. 최소 200미터쯤 되는 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 무지무지 아프게 죽을 것만 같다.

고행길이 따로없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는 죽음을 떠올려 본다.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죽음은 언제 어느때고 불쑥 다가오기 마련이다. 내가 이 지프차에서 내리지 않는 이상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낼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

저들이 죽고 싶어 환장해서 흥청망정 음주운전을 하겠는가. 저들에게는 일상이다. 인도의 또다른 얼굴이다. 저들의 일상을 받아들이자. 내가 죽음을 떠올리든 망각하든 지프차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굴러가게 돼 있다. 지프차에서 내리지 않는 이상 받아 들여야 할 현실이다.

절벽 아래로 칼리강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칼리강은 '분노와 용기의 신'인 힌두교의 여신. 마하칼리에서 따온 강이다. 네팔에서는 이 강을 마하칼리(Mahakali River) 혹은 칼리(Kali)강으로 부르고 있고 인도에서는 칼리강가(Kaliganga)혹은 샤르다(Sharda)강으로 부르고 있다. 피 묻은 얼굴로 혓바닥을 길게 내민, 네 개의 팔에 해골 목걸이를 한 기괴한 여신, 마하칼리의 그림이 떠올랐다. 내 안에 이 무시무시한 여신 마하칼리가 강림한 것일까. 운전기사에 대한 분노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용기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내 마음자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지프차 안의 운명공동체는 아무런 요동도 없다. 분노와 용기의 여신, 마하칼리를 껴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 험난한 길은 일상에 불과한 일이겠지만 난생처음 겪어 보는 나로서는 황당한 현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황당한 현실을 받아들여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다 잡아나갔다. 차장 밖으로 아슬아슬하게 펼쳐져 있는 풍경을 사진기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런데 천 가방 주변에 놓았던 사진기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프차가 비포장도로의 험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덜커덩거리는 사이에 좌석 아래로 굴러 떨어져 앞좌석 밑 어딘가에 박혀있을지 모른다. 좌석 밑을 살펴봤는데 사진기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가져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잠깐만 차를 멈춰주세요."
"무슨 일입니까?"

운전기사에게 사진기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더니 즉시 응답이 온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다. 넓은 도로가 나오면 거기서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지프차가 멈춰 서자 다들 좌석 밑을 들여다본다. 앞좌석에는 없다. 내가 탄 맨 마지막 좌석 틈 사이에 박혀 있는 사진기를 인상이 험상궂은 운전기사가 찾아냈다. '고맙다'고 했더니 '천만예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또 다시 사람이 달라 보인다. 음주운전을 하고 있지만 역시나 선한 구석이 많은 친구였다.

운전기사를 오락가락 판단하고 있는 내 간사한 마음이 뿌리째 드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반밧사까지 한 시간 정도 남겨 놓고 마지막 휴게소에서 차가 멈춰 섰다. 네팔 노동자들은 화장실을 다녀와 차안에 앉아 있고, 점심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셨던 세 사람은 휴게소에 앉자마자 술병을 꺼낸다. 휴게소 주인도 술판에 끼어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술에 콜라와 물을 타서 마시고 있다.

그는 내게도 술을 권했고, 나는 공범이 됐다

 휴게소에서 술을 마시는 운전기사와 그의 친구, 그리고 네팔 노동자들의 인솔자. 결국 나는 이들과 함께 음주운전의 공범이 되었다.
 휴게소에서 술을 마시는 운전기사와 그의 친구, 그리고 네팔 노동자들의 인솔자. 결국 나는 이들과 함께 음주운전의 공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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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끼리 마시는 게 미안한지 짜이를 마시고 있는 내게 자꾸만 술을 권한다. 거듭 사양할 수 없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운전기사가 권한 술잔을 단박에 들이켰다. 콜라와 물을 탔지만 독한 술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내가 마신 짜이와 술안주로 삼은 과자 값을 지불하려하자 운전기사가 한사코 막아선다. 결국 그가 돈을 지불했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음주운전의 공범이 되었다.

휴게소에서 술병을 다 비우고 다시 운전대를 잡은 기사는 앞자리에 앉아 있던 네팔 노동자들의 인솔자를 뒷좌석으로 보내며 내게 앞좌석으로 건너오라고 한다. 나는 다친 무릎을 쭉 펴고 갈 수 있어 뒷자리가 편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끝내 나를 앞자리에 앉힌다.

졸지에 나는 두 단계로 계급이 뛰어 올랐고 네팔 노동자 인솔자는 단 한마디 말도 못하고 중간 자리로 좌천됐다. 중간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내가 탔던 맨 뒷자리로 옮겨가려 하지 않는다. 인솔자가 힌디어로 뭐라 뭐라 말하니까 그제서 한 사람이 맨 뒷자리로 옮겨간다. 내가 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더니 다들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며 손짓을 보낸다.

결국 나는 이 차의 최고 권력자인 운전기사 옆자리에 앉아 팔자에도 없는 그의 영어 대화 상대가 되어야 했다. 매끈하게 생긴 인도 사내는 영어를 못했지만 험상궂게 생긴 운전기사는 나와 영어 수준이 비슷하다. 나는 그로부터 뜻밖에도 다르줄라에 한국 기업이 들어와 도로 공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은 이씨와 김씨. 그는 한국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다가 때로는 돈밖에 모른다며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부지게 생긴 그는 태국의 무에타이 영화 <옹박>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의외로 인도 영화 <마이네임 이즈 칸>을 감동 깊게 보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일 년 반 된 아들이 있는데 너무 좋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지프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과 운명공동체의 동료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반밧사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경찰에게 딱 걸렸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음주운전으로 걸린 것이 아니었다. 경찰은 음주운전과는 상관없는 뭔가 엉뚱한 것으로 시비를 걸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자신보다 더 덩치가 크고 험상궂게 생긴 경찰 앞에 다소 곳이 서 있다. 그가 차로 돌아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아마 택시회사 담당자인 모양이다. "카 넘버 체크" 어쩌구 영어가 뒤섞여 있는 힌디어 대화 내용을 분석하자면 '경찰한테 차번호를 적혔다, 벌금을 내야 한다' 대충 그런 내용 같았다.

"무엇 때문입니까?"
"노 프라블럼!"

별 문제 없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빛은 여전히 불안해 보인다. 어쩌면 오늘 일당을 다 날렸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애써 웃고 있었다.

 반밧사에서 하차한 네팔 노동자들. 이들과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반밧사에서 하차한 네팔 노동자들. 이들과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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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밧사 중심지로 들어서기 전에 묵직한 짐들과 함께 네팔 노동자들이 내렸다.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어디론가 버스를 갈아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을 내려준 지프차는 다시 반밧사 중심지를 향해 10여 분쯤 더 달렸다.

"여기서 국경으로 가는 릭샤를 탈 수 있습니다."
"오늘 국경을 넘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어려울 것입니다."
"왜요?"
"아마 오후 6시면 국경 문이 닫힐 것입니다."

손전화기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다르줄라에서 반밧사까지 10시간 걸린다는 것을 장장 11시간 넘게 달려온 것이었다. 운전기사가 중간에 술을 마시지 않았거나 오전 6시 출발 시간을 지켰다면 오늘 네팔 국경을 넘을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운전기사가 그리 원망스럽지 않았다. 비록 음주운전으로 험하게 운전대를 잡아 틀었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그는 10시간 동안 함께 해온 운명공동체의 책임자이면서 동료가 아니었던가. 그가 즉석에서 짜낸 사탕수수를 권하며 다시 말했다.

"여기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아침에 떠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서 하룻밤을 묵을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술 한 잔 하겠습니까?"
"당신들은 술을 참 좋아하는군요."
"한국 사람들도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좋아하지요. 고맙지만 피곤해서 푹 쉬어야 겠네요."

그가 내려준 곳에는 릭샤와 마차꾼들이 몰려 있었다. 이곳에서 국경까지 릭샤나 마차를 타고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 하게 했던 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시원섭섭했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게스트하우스를 향해 걸으며 문득 국경이 닫히는 시간을 미리 알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로 들어가는 국경 문이 닫히는 시간을 미리 알았다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전대를 잡은 기사를 내내 원망해가며 부질없는 시간에 쫓겨 속깨나 끓였을 것이었다. 거기다가 제 시간에 도착해 지프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국경으로 향했다면 낯설고 낯선 국경 도시, 반밧사가 어떤 곳인지 둘러볼 여유조차 생기지 않았을 것이었다.

 반밧사 국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운전기사와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반밧사 국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운전기사와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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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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