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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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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컷오프(공천배제) 되자 이에 항의하는 진보 성향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에 대해 더민주당은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 한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 안다. '싸가지 없는 진보'의 대명사로 알려진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 해 '더민주당은 싸가지 없는 진보가 아니다'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선거 전략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정치공학적 관점을 배제한 채 이와 같은 시각이 갖는 문제점을 비판하려한다. 사실 냉정한 시각에서 정치공학적 관점만을 놓고 보면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는 장단점이 모두 있다. 장점은 강경한 운동권 이미지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중도층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점은 적극적 참여 성향이 강한 진보적 시민들의 반발과 이탈 가능성이다. 이것의 총합이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정치공학적 진단과 해석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나, 이것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오게 된 정치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흐름과 맥락에 대한 고려도 없이 단지 지금 보이는 현상만을 놓고 계산기를 두들겨서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게 되면 후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싸가지 없는 진보 담론이 초기 제기되었을 때는 유의미한 가치를 지녔으나 지금은 오히려 진보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정청래의 컷오프가 갖는 문제점에 대해서 진보 야권에서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진보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

싸가지 없는 진보는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가 쓴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을 통해서 널리 회자된 담론이다. 진보 엘리트 세력의 독선적인 태도와 적극적 지지층만을 고려한 편협한 태도 등이 진보의 패배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진보 세력이 유연한 태도를 통해서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인식은 대중적으로도 확산되어 있다. 그래서 강준만의 이와 같은 설명과 지적은 지식인 차원의 논의를 넘어서 실제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독선과 편협함 같은 진보 세력의 태도만으로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은 아니다. 이것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논거를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진보 세력의 주된 지지층은 이렇다. 학력은 고학력, 계급적으로는 중산층, 문화적으로는 리버럴 성향이다. 고학력 도시 중산층이 한국 진보 세력의 가장 핵심 지지층인 것이다. 그런데 진보 세력은 중산층과 서민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는 1:99라는 이항대립적 선거구호를 내세워 99%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실제 선거 결과를 보면 경제적 빈곤층은 보수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고학력 도시 중산층에 기반한 진보 세력에 대한 빈곤층들의 정서적 거부감과 관련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싸가지 없는 진보의 대중적 확산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필자는 진보에서 보수로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를 보인 사람들을 심층인터뷰 하여 최근에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책을 냈는데, 여기서 빈곤층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진보 세력을 거부하는 원인을 분석했다.

이 연구로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경제적 빈곤층이 진보 엘리트 세력들에게 문화적 소외감과 정서적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문화적 코드가 맞지 않아 정치적 정체성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진보 세력의 독선과 편협함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싸가지 없는 진보론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결정적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사회운동을 할 때 이론과 역사에 대해서 식견이 높지만 대중성이 약한 운동가들을 보고 흔히 '먹물좌파'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빈곤층들은 진보 엘리트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정서적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의 언어와 태도에서 괴리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그래서 진보 세력이 빈곤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계급 전략을 동원하지만 그들은 이 전략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진보 세력을 '나와 다른 사람들'이자 '잘난 척 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반감을 갖는다. 그래서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청래를 컷오프 할 자격이 있는가

홍창선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왼쪽)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차 컷오프 결과를 발표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이날 홍 위원장은 정청래, 부좌현, 윤덕후, 강동원, 최규성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됐다고 발표했다.
▲ 홍창선, 2차 컷오프 발표 홍창선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왼쪽)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차 컷오프 결과를 발표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이날 홍 위원장은 정청래, 부좌현, 윤덕후, 강동원, 최규성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됐다고 발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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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듯 진보 세력은 진보 엘리트들에 대한 정서적·문화적 거부감을 주의 깊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인식이 정치적으로 확산되면서 원래 진보를 위한 담론이었던 싸가지 없는 진보가 오히려 진보를 약화시키는 역작용이 나타났다. 이 역작용은 2가지 차원이다.

첫 번째는 보수가 싸가지 없는 진보 담론을 이용하여 진보의 투쟁성을 약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한 점이다. 현재 보수 세력은 상당히 권위적인 방식으로 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 세력은 반발한다. 그 과정에서 야권은 소위 강경 투쟁 방식을 동원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번 필리버스터가 대표적인 사례다. 보수 세력은 이러한 적극적 투쟁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을 주로 '강경 운동권'으로 프레임화하는데, 이것은 싸가지 없는 진보의 연관된 개념이자 담론이다.

그러므로 진보 세력은 보수 세력의 이와 같은 공세의 성격을 섬세하게 구분해서 대처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필리버스터 이전 시기 야당의 태도를 보면 그와 같은 보수의 공세에 위축된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의식이 진보 진영에 내면화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무기력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선명성조차도 위험시하는 게 아니겠는가?

두 번째 문제점은 바로 범 진보 야권 세력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야권 무기력의 원인을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찾고 이와 관련된 소위 운동권 세력 전반(친노세력과 사실상 같이 쓰임)을 불신하고 비토하는 경우가 있다.

싸가지 문제 등 운동권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여러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지적하면 된다. 문제는 운동권보다 나은 것이 없고 실천도 하지 않는 무능 세력이 싸가지 없는 진보 담론으로 운동권을 비난하는 경우다.

야권의 정체성과 관련된 현안을 소홀히 하고 실천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운동권 정치인을 싸가지 없는 진보 담론으로 비판하는 것은 언어도단에 가까운 행위다. 이들 중에는 자신들은 마치 품격 있는 정치를 하는 것처럼 강변하는 야권 정치인이 많았다.

그러나 야권의 생명력을 약화시킨 것은 야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현안을 소홀히 한 정치인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런 정치인들이 야권의 정치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정치인들을 싸가지 없는 진보 류의 담론으로 공격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 역시 역작용인 것이다.

싸가지 없는 진보 담론이 위와 같이 확산된 것을 보면 종북 담론의 시작과 유포 및 확산과 비슷한 경로를 보인다. 종북 담론은 원래 진보 진영 내에서 일부 NL강경파들의 북한에 대한 편향된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 제기된 것이었는데, 나중에는 보수 세력이 진보 세력 전반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진보 세력 내부에서도 상호 공격을 할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재 상황이 종북 담론이 확산된 경로와 사실상 같다는 점을 충분히 고민해야만 한다.

'싸가지'가 전부는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정청래 의원의 공천배제를 결정한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 정 의원의 지지자와 당원들이 모여 공천배제 철회와 공천 재심사를 요구하고 있다.
▲ 정청래 지지자 "정청래를 제자리로 돌려놔라"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정청래 의원의 공천배제를 결정한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 정 의원의 지지자와 당원들이 모여 공천배제 철회와 공천 재심사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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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보수 우위의 정치사회구조를 표현할 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일반인들은 보수보다 진보 세력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진보 세력은 싸가지도 있어야 하고, 실력도 있어야 하고, 용기와 투쟁성도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원한다.

지금 정청래 의원에 대한 컷오프는 '싸가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정청래 의원 본인도 인정했듯이 여러 설화를 일으킨 것은 맞다. 문제는 거기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보신주의로 무장한 야당 정치인들만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여하간 지금 당장은 선거를 앞둔 시기이므로 정치공학적 사고가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더민주 지도부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청래 의원 컷오프는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서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신기 기자는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 사회 보수화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진보에서 보수로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를 보인 일반인 32명을 심층인터뷰하여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태그:#정청래, #진보, #무능,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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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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