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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4년 10월, ‘인권친화적 학교+너머운동본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014 전국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단체 활동가들이 학생인권 후진 시도교육청의 교육감 가면을 쓰고 기념촬영을 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 2014년 10월, ‘인권친화적 학교+너머운동본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014 전국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단체 활동가들이 학생인권 후진 시도교육청의 교육감 가면을 쓰고 기념촬영을 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자료사진)
ⓒ 이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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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상정을 5월로 연기했다.

애초 이달 조례안을 발의하기로 했던 박병철 대전시의원이 오는 5월로 상정을 미뤘다. '좀 더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의 반대가 조례안 상정을 미루는 데 주효하게 작용했다.

'대전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아래 공교육연합)은 "조례가 오히려 학교에 혼란을 키울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공교육연합'은 "학생 자율성을 지나치게 부여하면, 학생을 정당하게 교육하기 힘들어진다, 교사와 학생 간 갈등이 커지고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전교총도 "현재 대다수 학교가 학생회의 민주적 의견수렴을 통해 교칙을 정하고, 대전교총도 자율적으로 생활지도를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 "조례안이 만들어질 때 교육공동체 간 갈등을 유발하고 교사들이 생활지도를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등의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5년 12월, '대전청소년인권네트워크'와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가 대전인권사무소에서 '대전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자료사진))
 2015년 12월, '대전청소년인권네트워크'와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가 대전인권사무소에서 '대전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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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총 "인권조례 만들면 교사들, 생활지도 포기할 것"

대전시교육청도 사실상 반대 입장이다. 시 교육청은 오래전부터 학생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고, 지금까지 많이 신장돼 굳이 학생인권 조례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학생·학부모·교사가 참여해 학교 규칙을 정할 수 있도록 보장돼 있다"라고도 했다.

조례의 핵심은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느냐 마느냐에 있다. 조례안을 굳이 만들자는 건 학생에게 자율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강제학습과 체벌, 두발·복장과 관련해 학생들이 권리를 뺏기지 않도록 하자는 의도다. 조례제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학교 교육과정에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자는 얘기다.

대전은 이미 '학생인권 불모지'로 낙인 찍혀 있다. 체벌(폭력), 두발·복장규제, 강제 야자·보충, 상벌점제가 만연해 있다.

학생 인권을 위한 전국 연합단체인 '인권 친화적 학교+너머운동본부'(인권친화학교)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발표한 '2014 전국 학생인권 실태 조사'에서도 대전시교육청은 학생인권 후진지역으로 선정됐다.

대전지역 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대전청소년인권네트워크와 대전인권사무소가 지난해 학생, 교사, 학부모 1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서도 고등학생 54.3%가 현재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말에는 대전에서 중3 학생이 두발 자유화를 옹호하는 유인물을 동료 학생들에게 나눠줬다가 '선동죄'로 교내봉사 징계를 받았다.

"이미 자율적으로 학교운영을 하고 있고 학생 인권이 많이 신장됐다"라는 시 교육청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2015년 12월, '대전청소년인권네트워크'와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가 발표한  '대전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 사진은 '강제학습'에 관한 설문조사결과 내용.
 2015년 12월, '대전청소년인권네트워크'와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가 발표한 '대전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 사진은 '강제학습'에 관한 설문조사결과 내용.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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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교사·학부모 대다수 "조례 제정 필요하다"

'교사와 학생 간 갈등이 커진다'는 시 교육청의 우려도 여론과 상이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진해된 설문조사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여부에 대해 학생(74.5%)은 물론 중·고등학교 교사 대부분(68.9%)이 찬성했다. 학부모도 86.1%가 조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게다가 대전시의회가 입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대전학생인권조례안은 서울, 경기, 전북 등에서 이미 공포된 조례에 비해 후진적이라는 평이다. 교육감의 책임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학생인권센터도 독립적 위상을 갖고 있지 않다.

이마저도 하지 말자는 것은 결국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주지 말자는 얘기다. 이전처럼 학생들을 체벌하고 강압적으로 시켜 통제하기 쉬운 학생들을 길러내자는 얘기로 들린다. 이런 인식 속에서 인성교육을 하고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시 교육청의 강조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교육부는 설동호 대전교육감과 김지철 충남교육감, 최교진 세종교육감을 비롯해 전국 14명의 시·도 교육감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에 참가자들을 징계하라는 교육부의 직무이행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13년과 2014년,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 유보로 고발됐던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과 김승환 전 전북교육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설동호대전 교육감, 지금이 공약 지킬 때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징계 여부(교원 인사권)는 교육감의 고유권한이다. 설 교육감이 교육부로부터 자율권을 침해당했을 때 느꼈을 낭패감을 학생들에게까지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설 교육감이 나서 '학생들이 자기 권리를 알고 지키려 하는 일은 우려스럽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야 한다.

설 교육감은 교육감 후보 시절 '학생 인권조례 제정에 나서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 공약을 지킬 때가 지금이다.


태그:#대전시교육감, #설동호, #학생인권조례, #대전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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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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