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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2015년,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구호.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SNS에서 이 구호를 활용한 해시태그 운동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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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는 채식을 지향한다. 비록 그의 식단이 언제나 완벽한 채식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독신주의자는 독신을 지향한다. 언젠가 누군가로 인해 관계에 대한 지향의 변화가 일어나 그가 혼인을 하게 되더라도, 이 사건이 소급하여 그의 정체성을 해치지 못한다.

아나키스트는 권력의 해체를 지향한다. 비록 현실의 그가 소속 국가에 의해 부여된 의무를 수행하며 살고 있다는 현실적 제약을 가지더라도 그렇다. 여성주의자는 성평등을 지향한다. 식불식간에 그의 언행이 성평등적 사회 구현에 일익을 담당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렇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지금 당장 이론적·실천적으로 완전한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떠한 자/호칭은 결함 없이 완벽한 누군가에게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자/호칭은 완전한 이론으로 무장하고 거기에 합치되는 삶을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부여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오히려 어떠한 자기 명명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 그리고 세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방향성을 최대한 잊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즉, 자기 책임의 부여다.

개인과 정체성 사이의 완전무결한 일치를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어떤 사람들은 특정 성별이 아니면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만 그러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넘어서 타인마저 모두 이러한 기준으로 재단하려고 든다. 그것은 마치 어떤 계급에 속한 사람은 온전한 막시스트가 될 수 없다는 생각과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역사상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뛰어넘어 개인으로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체제의 도래를 지향하고 투신하는 혁명적인 삶을 살았고, 나는 여성주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성별이 여성이 아닌 사람들도 성평등적 사회의 도래를 지향하며 그에 기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주의자라는 자기 명명으로 세운 정체성은 이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장치다.

'덜' 비겁한 인간이 되겠다는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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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남성과 여성의 능력이 차이가 없음을 의미하는 페미니즘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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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떤 주의자로 자기 정체화를 한 사람이 해당 분야에서의 지적/실천적 태만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를 다른 의미로 말하면, 어떤 주의자로서의 자기 명명은 그런 경우에 들어오는 다른 동료들과 외부의 비판을 감수하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페미니스트로서 자기 명명하고 호칭을 부여받는 것은 앞으로 자기 자신의 삶과 언행에 대하여 더 무겁게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완벽한 인간이 되겠다는 의미가 아니고, 덜 비겁한 인간이 되겠다는 의미다.

아무데도 속하지 않을 때 뱉은 말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다. 제3자의 훈수는 참으로 가볍다. 그러나 어딘가에 속하게 되면 내 말의 무게가 나를 누르게 된다. 나는 인간이 그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기로 할 때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기점으로 내 주변에서 망설이던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부담을 감수하고도 용기 있게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에게 이렇게 물어 보고 싶은 것이다.

오늘부터는 당신도 페미니스트로 살아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