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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아들은 3년째 다니는 어린이집의 '최고령 원아'가 됐다. 그동안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보낸 시간은 얼마쯤 될까? 3000시간쯤? 그렇게 어린이집은 눈 뜨고 활동하는 시간만 따진다면 제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익숙한 공간이 됐다. 이쯤 되면 그간의 역사도 있으니 이제는 수월하게 등원할 만도 한데…. 아침 등원은 언제나 어려운 숙제다. 매일 크고 작은 소동을 일으키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아들은 일단 깨면 울고 본다. 울음을 아끼지 않는 아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엄마가 없어서 더 서럽게 운다. 구석으로 치워진 이불과 뱀허물처럼 또르르 말린 잠옷을 남기고 아내는 일찍 출근을 했다. 아들은 사라진 엄마를 찾으면서 운다. 내가 아무리 팔을 활짝 벌리고 품을 내어 주어도 꿈쩍 않는다. 마냥 운다. 그러다 제풀에 쓰러져 다시 잔다. 그런 식으로 자다 깨다를 두어 번 해야 온전히 잠을 깬다.

그사이 나는 어린이집 등원과 내 출근을 준비한다. 자영업자라 출근 시각을 늦출 수는 있지만 정해진 시각은 있다. 그리고 종종 오전 약속이 잡힌 경우도 있어서 늘 마음은 급한데 손은 더디다. 내 물건이야 잡히는 대로 챙기면 그만인데 아이 물건은 어린이집 가방에 집어 넣기 전에 한 번 더 살핀다. 도시락 식판에 밥풀은 묻어 있지 않은지 도시락 식판 뚜껑 틈에 낀 때는 또 생기지 않았는지 알림장은 제대로 빠짐없이 적었는지 확인한다. 아들은 감기를 달고 살기에 오후에 먹을 약도 용량에 맞게 담아 빠트리지 않고 넣는다.

그 뒤로 내가 아침을 먹고 씻고 준비를 다 마칠 때까지 아들은 혼자서 일어나는 법이 없다. 가끔 울면서 화장실 문을 열어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를 빼면 말이다. 깨우는 일도 쉽지는 않지만 기다리면 된다. 이름 불러주면서 기저귀 갈고 있으면 깬다. 옷 입히는 것도 이제는 힘들지 않다. 가끔 저항을 하기는 하지만 좀 기다려주면 포기하고 얌전해진다. 이제 저도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는 그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저 작은 신발을 신기만 하면 90% 성공한 거다. 신발만 신으면 등원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데 그게 어렵다.
▲ 신발 두 켤레 저 작은 신발을 신기만 하면 90% 성공한 거다. 신발만 신으면 등원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데 그게 어렵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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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옷까지 다 입고서는 말한다.

"어린이집에 안 갈래."

누가 물어봤냐? 자동 반사다. 어차피 가기로 했고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 옷을 갈아 입었지만 막상 가자고 하면 버틴다. 어린이집 초기에는 오해도 많이 했다. 혹시 어린이집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저러나 싶어서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늘 저러니까.

이때 윽박지르면 일이 커진다. 윽박지르기라고 해봐야 내 목청을 높이는 거지만 그것만 해도 아이는 재빨리 철통 방어시스템을 작동한다. 방구석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농성을 시작한다. 그리고 선언한다.

"절대, 절대, 절대 안 갈 거야!"

이건 막아야 한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린이집은 지각이고 내 하루 일정은 모두 틀어진다. 힘으로 밀어붙여 보내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럴 거였으면 차라리 잠이 깨기 전에 했어야 했다. 이 시점에서는 작전이 제격이다. 계략이 필요하다.

'어린이집에 등원시켜라'... 계략 세 가지

가장 효과가 좋은 계략은 '뇌물'이다. 녀석이 언제나 '야호!'를 외치는 '십십이'를 찾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소아과에 들락거리는 집에서는 다들 아시시라. 이 '십십이'의 정체를. 어린이용 비타민인데 아들은 이걸 무척 좋아한다. 이거면 프리패스, 만사형통이다. 이것만 있으면 어린이집 등원은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십십이'는 매일 쓸 수 없는 카드다. 캐러멜 형태라 치아에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하루는 걸러 쓰고 있다. 어린이집 무사히 보내자고 치과에 들락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쓰는 방법은 '기만술'이다. 즉, 아이가 좋아하는 게 집 밖에 있다고 미끼를 던지는 건다. 미끼의 종류는 정해져 있다. 공룡편지, 눈(雪), 포클레인이 주를 이룬다. 눈은 눈 내리는 날에만 쓰는 거고 포클레인은 워낙 굴삭기 장난감을 좋아해서 일부러 길을 돌아돌아 가면서 굴삭기를 찾으러 다녔던 데서 기원한다. 타요 버스 대신 굴삭기랄까?

공룡편지는 좀 복잡하다. 사전 작업을 해둬야 한다. 먼저 공룡을 인쇄한 종이를 봉투에 담아 우리집 우체통에 미리 넣어 두고 아들에게 몇 번 보여줘야 한다. 이때 중요한 건 아내와 나의 호흡이다. 아들에게 자작극임을 들키지 않게 손발을 맞춰야 한다. 이렇게 몇 번 작업을 해두고 공룡편지가 왔는지 확인해보자고 아이 옆구리를 찌르면 열에 서너 번은 넘어온다.

다음 방법은 '기다림'이다. 아이가 상처 받지 않고 울지 않고 화내지 않고 제 마음이 움직여서 밖에 나가자고 할 때까지 시간을 주는 거다. 지각은 감수해야 하지만 효과는 좋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럴 만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안 가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뭐 대단한 이유가 아니다. 집에서 아빠랑 엄마랑 놀고 싶어서다. 그 당연하고 작은 소망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어린 아이도 알지만 떼라도 한 번 부려 보는 거다. 아쉬우니까.

그러니 가만히 두면 20~30분도 안 돼 아들은 고개를 떨구고 신발장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이 방법을 자주 쓰지 못하는 이유는 나 때문이다. 내가 초조해서 그 잠시를 기다리지 못해서다. 밥벌이의 무게를 제대로 이기지 못하니 늘 마음이 조급해서 아이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거다.

시끌벅적 시트콤? 사실은 비극

아주 적은 양의 밥인데도 저거 먹여 보내기가 어렵다. 붙들고 떠 먹이며 애걸복걸해야 세 숟갈? 어렵다 어려워.
▲ 아들의 아침상 아주 적은 양의 밥인데도 저거 먹여 보내기가 어렵다. 붙들고 떠 먹이며 애걸복걸해야 세 숟갈? 어렵다 어려워.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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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겪는 이 분란은 시끌벅적한 시트콤이기도 하지만 사실 내 속은 비극이다. 내가 충분히 돈을 벌어온다면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감기를 달고 살지 않아도 될 것이며, 자식이 엄마를 찾아 서럽게 우는 걸 안 봐도 될 것이라는 부질없는 공상을 번번이 한다. 그리고 그 공상의 끝에는 자격지심이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유난히 따뜻한 우리 아들 손을 붙잡고 현관문을 나서면 부질없는 상념은 사라진다. 정말 무섭도록 빨리 자라 금방이라도 독립할 것 같은 아들의 존재는 내 고민을 지워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없게 만든다는 게 맞겠다. 앞으로 이 녀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작은 일에 힘을 빼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내 비극은 햄릿의 장엄한 비극은 못되고 아침 드라마의 우스꽝스러운 비장함으로 마감된다. 그렇게 우리 부자는 매일 아침 '웃픈' 콩트 한 편을 찍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http://cirang.tistory.com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등원, #어린이집, #부자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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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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