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큰아이 학교에는 복도마다 작은 북카페가 여러 곳 있다. 아이를 기다리다 만난 그림책 <까마귀 소년>. 큰아이 말마따나 막 그린 못난 그림이다. 그림 선이 날카롭고 색은 어두운, '누가 이런 그림책을 볼까?' 싶은 표지. 한눈에 봐도 어딘가 외롭고 상처입은 아이 같은 느낌. 게다가 까마귀라니. 무슨 사연일까. 괜히 궁금한 마음에 책을 폈다.

<까마귀 소년> 겉표지.
 <까마귀 소년> 겉표지.
ⓒ 비룡소

관련사진보기

학교 마룻바닥에 숨어 지내는 아이. 선생님을 무서워 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는 아이. 친구들은 그 아이를 땅꼬마라고 불렀어. 혼자 놀기 지친 땅꼬마는 시간을 보낼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지. 뚫어지게 천장만 쳐다보거나 책상 나뭇결만 살펴보거나. 또 창밖으로 많은 것들을 보았어.

운동장에서도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온갖 소리가 다 들렸어. 친구들은 그런 땅꼬마를 바보라고 놀렸지. 그러거나 말거나 땅꼬마는 늘 걸어서 학교에 왔어. 채소잎으로 싼 주먹밥을 점심으로 싸들고. 비가 오는 날에도 도롱이를 몸에 두르고. 그렇게 다섯 해가 흘러 땅꼬마는 6학년이 되었어.

그때 이소베 선생님이 새로 오셨지. 얼굴에 웃음 기가 가시지 않는 다정한 분이셨어. 선생님은 머루와 돼지감자가 어디에서 자라는지 알고, 꽃이란 꽃은 모두 꿰고 있는 땅꼬마를 무척 좋아했어. 땅꼬마가 그린 그림도, 삐뚤빼뚤한 글씨도 선생님은 좋아하고 자주 칭찬하셨지. 이야기도 자주 나누고.

그해 학예회 시간. 무대 위에 땅꼬마가 나타나자 아이들은 모두 놀랐어. 이소베 선생님은 땅꼬마가 까마귀 울음소리를 흉내낼 거라고 알려주셨지. 교실은 웅성거렸어. 땅꼬마는 알에서 갓 나온 새끼 까마귀 소리부터 엄마 까마귀 소리, 아빠 까마귀 소리, 아침에 우는 까마귀 소리 또 까마귀가 즐겁고 행복할 때 내는 소리도 흉내냈어.

관심을 먹고 사는 아이들

땅꼬마는 어떻게 이런 소리를 흉내낼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이소베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어. 동틀 무렵 학교에 와 해질 무렵 집으로 타박타박. 그렇게 6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타박타박 걸어 학교에 왔노라고.

아이들은 모두 울었어. 길고 긴 6년 동안 땅꼬마를 못살게 굴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그해 그 반에서 6년 개근상을 받은 아이는 땅꼬마 혼자뿐이었어. 졸업 후 그 애를 땅꼬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대신 까마동이라고 불렀지. 까마동이가 집으로 타박타박 걸어갈 때면 즐겁게 우는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고 해.   

까마동이가 이소베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학예회에 나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일은 없었겠지. 까마귀 소리를 기가 막히게 흉내낸다는 걸 몰랐을 테니까. 관심이 없었다면 알 수 없는 일.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였을까. 자칫 놓칠 뻔한 이 책이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다. 아이에게 엄마의 학창 시절, 잊지 못할 선생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엄마도 초등학교 때 이소베 같은 선생님이 있었어."
"정말? 언제?"
"응, 6학년 때. 엄마도 몰랐던 재능을 먼저 알아봐 주셨거든. 그 선생님도 엄마가 쓴 글을 좋아하셨어.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 그때 상도 여러 번 탔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뭔가 쓰는 것을 좋아했던 게. 너는 어때? 입학해서 지금까지 어떤 선생님이 제일 좋았어?"
"음... 그냥 다 좋았는데?"
"(마음이 털썩) 그랬구나... 칭찬도 많이 하시고?"
"응. 근데 잘 기억은 안 나."
"지금 선생님은? 너 이름은 아셔?"
"아니 모르실 걸? 아직 아이들 성이랑 이름 연결이 잘 안 되신대."
"(마음이 또 털썩) 그치, 아직 새학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아이들을 관심을 먹고 산다. 새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몇 반인지, 담임이 누구인지 묻는 엄마들의 마음에는 그런 간절함이 있을 거다. 내 아이가 사랑 받기를 바라는 마음. 물론 나도 그렇다. 그러다 잠시 샛길.

"너 근데 도롱이가 뭔지 아니?"
"응! 비옷 같은 거잖아. 도라에몽에서 봤어."
"응? 그런 게 도라에몽에 나와?"
"응! 도라에몽이 미래에 있는 골동품 가게에 전화를 해서 "옛날 라디오를 갖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진짜 옛날 라디오로 바뀌었거든. 그걸 친구들에게 자랑하니까 노진구가 자기도 골동품 가게에 전화해서 옛날 물건으로 바꿔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집도 바뀌고 옷도 바뀌고... 아빠가 퇴근 길에 우산을 들고 갔는데, 갑자기 우산이 사라지고 도롱이가 나타났었어. 그래서 알게 됐지."
"만날 텔레비전만 본다고 뭐라 했는데, 좋은 점도 있구나."
"그럼~."

[저자 야시마 타로는요]
일본 가고시마에서 1903년에 태어났다. 이 책과 <빨간 우산> <바닷가 이야기>로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 데콧 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덧붙이는 글 | ㅡ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글.그림, 윤구병 옮김, 비룡소(1996)


태그:#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