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A'라는 투수가 있다. A는 29경기를 출전해 완봉 2번 포함, 160이닝을 던져 2.59의 평균자책점(ERA)을 기록했다. 당해 시즌 최고의 선발 투수 중 한명이었고, 매경기 안정된 투구를 보였다. 이런 역투에 힘입어 국가대표 유니폼까지 입었다.

하지만 A는 이듬해부터 거짓말같이 추락했다. 특별한 부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추락이 시작된 이후 다시는 반등하지 못했고, 결국 A는 1군과 2군을 오가다가 본인 커리어 사상 최고의 역투를 펼친 해로부터 3시즌이 지나고 조용히 은퇴를 선언했다.

'B'라는 투수도 있다. 같은 시즌 최고의 역투를 펼친 A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163.2이닝, 4.52의 ERA는 팀의 4~5선발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고, 특히 직전 해에는 16승을 거두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할 정도의 좋은 투구 내용으로 몇 년간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B는 이듬해 극심한 부진과 함께 소속팀과 결별하고 말았다. 큰 폭의 연봉 삭감을 받아들이며 타 팀으로 이적했지만 결국 참담한 성적을 남긴 채 그 해 은퇴를 선언했다. 한 때 팀의 1선발을 맡았던 투수라고 생각되지 않는 쓸쓸한 마지막이었다. 팀의 1선발에서 은퇴까지 걸린 시간은 단 3년에 불과했다.

1년 사이 천당과 지옥을 겪은 이 둘은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알만한 선수들이다. 바로 A는 서재응, B는 김선우다. 베테랑으로서 노련미 넘치는 투구로 지난 3시즌 기복 없이 팀의 주축으로 활약한 그들은 단 한 시즌 만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추락했다.

 MLB에서 한국프로야구까지, 
다른듯 닮은 행보를 보인 동갑내기 서재응과 김선우

MLB에서 한국프로야구까지, 다른듯 닮은 행보를 보인 동갑내기 서재응과 김선우 ⓒ KIA 타이거즈/두산 베어스


그간의 투구내용만 놓고 본다면 그들이 이렇게 부진한 이유는 알기 힘들다. 그들은 하향세에 접어든 투수는 아니었고, 심지어 서재응은 국가대표로 선발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투구 내용만 놓고 본다면 이들이 단 1년 만에 몰락한 것은 송은범과 함께 KBO 최고의 미스터리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서재응(상세기록 보기)과 김선우의 부진을 설명하는 건 단 한 단어면 충분할 만큼 간단했다.

바로 나이가 36세였다는 점이다.

35세 시즌, 전성기 못지 않은 준수한 활약을 한 그들은 한 살을 더 먹자마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추락했다. 부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개인사에 발목 잡힌 것도 아니다. 단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을 뿐이다.

36세에 접어든 투수가 부진한 건 비단 서재응과 김선우 뿐만이 아니다. 각 팀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만큼, 전설로 불리어도 이상하지 않을 경이로운 성적을 낸 투수(김용수, 송진우, 정민철 등)들을 제외한다면 35세 시즌 이후 규정 이닝을 채운 토종 투수는 한용덕과 장명부 단 두 명이 전부일 정도다.

그마저도 이 둘 역시 각 구단의 영구결번이 아닐 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투수들이다. 한용덕은 늦은 나이에 프로에 들어와 통산 120승을 거둔 엄청난 투수고, 장명부는 앞으로 절대 나올 수도 없고 나와서도 안되는 대기록을 기록한 프로 초창기의 괴물투수다.

35세 시즌에 규정 이닝을 채운 토종투수가 모두 열 한명 이었던걸 생각하면 이런 결과는 놀랍다. 무난히 규정 이닝을 소화했던 여섯 명 이상의 투수들이 단 1년 만에 규정 이닝조차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추락한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 34년간의 통계는 선발투수로서 36세 시즌을 넘기기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가히 마의 36세라고 해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2016시즌에도 36세의 벽에 도전하는 투수가 있다. 바로 롯데의 송승준이다.

 FA 40억 계약을 맺은 송승준

FA 40억 계약을 맺은 송승준 ⓒ 롯데 자이언츠


롯데 송승준(상세기록 보기)은 지난해 말 4년 40억원의 거액계약을 맺고 올해 FA 계약 첫 시즌을 치룬다. 팀은 새로운 계약을 맺은 그에게 원투펀치인 린드블럼과 레일리의 뒤를 잇는 3선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송승준의 장점은 꾸준함이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7시즌 연속 규정 이닝을 소화했다. 기준을 110이닝으로 조정한다면 그는 입단 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110이닝 미만을 던진 적이 없다. 꾸준함만 따진다면 한화 시절 류현진 다음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다만 꾸준함에 비해 세부 성적이 따라오지 않아서 한창 좋을 때도 팀의 1선발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어느 팀에 가더라도 3~4선발 정도는 무리없이 맡아줄 수 있는 역량을 보였다.

송승준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롯데 구단이 40억원이라는 거액을 안긴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간 리그 탑클래스의 꾸준함을 보여줬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물론 예상보다 후한 FA 계약에는 그간의 헌신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있겠지만.

새로운 계약을 맺은 송승준의 나이는 공교롭게도 서른 여섯이다. 앞서 서재응이, 김선우가 무너진 바로 그 나이다. 송승준은 앞으로의 4년동안 어떤 투구를 할까? 서재응과 김선우의 절차를 밟을까, 아니면 송진우나 정민철의 길을 걸을까?

송승준의 희망 요소, 속구 구위와 포크볼

긍정적으로 본다면 지난 2년간 평균 이닝이 123이닝 정도에 그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예를 든 서재응과 김선우는 나이를 생각한다면 너무 많이 던졌다. 특히 35세의 서재응은 후반기 막판 완봉을 두 차례나 기록할 정도로 페이스가 좋았지만 바로 다음 시즌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직전 해 많은 투구 이닝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에 따른 시즌 준비 루틴이 어긋난 것이 연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한다면 송승준은 최근 2년간 많은 이닝을 던지지 않았고, 잔부상이 있지만 투구에 무리가 갈 정도로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또한 송승준은 서재응과 김선우와 차별되는 면이 있는데, 커리어 후반기 서재응과 김선우가 구위 대신 완급조절과 제구로 승부하는 투수였다면, 송승준은 여전히 평균 이상의 구위를 가지고 있는 투수라는 점이다.

그의 2015시즌 속구 평균 구속은 140Km 이상으로, 35세의 나이임에도 리그 평균보다 높은 수치다. 아직 타자의 배트를 이겨낼 힘은 있는 투수로서, 최근 2년간 심각한 모습을 보인 타고투저 현상이 완화된다면 성적은 더욱 좋아질 수 있다. 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조원우 감독의 부임도 그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만한 부분이다.

게다가 그의 주무기인 포크볼은 타자를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2015년 송승준의 포크볼의 피OPS(출루율+장타율)는 0.631에 불과한데, 이것은 아직 충분히 타자의 방망이를 끌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송승준은 포크로 41.9%의 스윙을 이끌어냈는데, 이것은 작년 최고의 포크볼러라고 평가받는 벤헤켄의 37.9%보다 오히려 높은 수치다.

이닝 수는 감소했지만 전성기 시기와 비교해도 세부 스탯은 별 차이가 없는 것도 송승준의 미래를 좋게 예상할 수 있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리그의 타고 여부를 보정하는 FIP(수비무관 평균자책점)+를 살펴본다면 2015년의 송승준은 좋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2014년에 갑작스럽게 부진한 것도 높은 BABIP(인플레이 타구의 안타율)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데, 송승준의 2014년 BABIP는 0.365으로 본인 커리어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 실제로 BABIP가 본인 커리어 평균 수준으로 떨어진 2015년 송승준(0.312)은 2014년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적어도 2014년의 부진은 노쇠화가 아닌 불운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송승준의 불안 요소, 현저히 떨어진 이닝 소화 능력

하지만 송승준의 향후 4년에 대해 마냥 긍정적인 전망만 하기에는 최근의 모습이 매우 아쉽다. 무엇보다도 최근 2년동안 120이닝에 그치면서 2년 연속으로 규정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비교 사례인 서재응, 김선우도 36세의 나이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매년 꾸준한 성적을 남겼음을 감안한다면, 송승준이 이닝이팅 능력에선 명백하게 하향세에 접어든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지난 2년간 많이 던지지 않았다고 앞으로 더 던질 수 있다고 보기 보다는 이미 노쇠화가 시작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전성기 송승준의 최대 장점이었던 꾸준함은 이미 그 가치를 잃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지난 2년간 잔부상에 시달려 규정 이닝을 채우지 못한 송승준이 FA 계약기간 동안 전성기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듯한 활약을 하며 전처럼 꼬박꼬박 규정 이닝을 소화해줄거라고 바라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만약 롯데가 정말 그런 기대를 하고 잡았다면, 40억원이라는 계약은 오히려 헐값이라 할 수 있다.)

송승준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치는 젊은 선발 유망주들인 박세웅(상세기록 보기), 고원준, 김원중 등이 확고히 자리잡기 전인 향후 1~2 시즌 정도 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다른 문제는 송승준의 급격하게 떨어진 후반기 구속을 들 수 있다. 지난 해 8월 5일 1군에 복귀한 이후 송승준의 평균 직구 구속은 단 한번도 140km이상을 넘기지 못했고, 그 기간 송승준은 8.22라는 끔찍한 ERA를 남겼다. 특히 이 기간동안 송승준은 23이닝을 던지면서 무려 4개의 피홈런을 허용하기도 했다. 그 기간 전까지 4.19에 불과했던 ERA는 이후 4.75까지 솟구쳤다.

이런 모습이 단기적인 부진인지, 장기적으로 송승준의 노쇠화를 나타내는 복선일지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휴식일도 길었고, 투구수가 많지 않았음에도 후반기 송승준이 매우 부진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니 말이다. 후반기 급격하게 부진한 모습을 보인 송승준이 과연 KBO 34년 역사에서 오로지 송진우, 정민철, 김용수, 한용덕, 장명부만이 해낸 36세 이후 토종투수 규정이닝을 해낼 수 있을까?

올해 송승준을 시작으로 마의 36세를 도전할 선발투수들은 장기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가까이 본다면 배영수(상세기록 보기), 장원삼, 임준혁, 류제국, 안영명의 나이가 36세에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고, 조금 기간의 차이가 있지만 윤석민, 양현종, 유희관(상세기록 보기), 우규민, 장원준 역시 30대에 진입했거나 몇 년 안에 진입한다. 그들이 36세가 되서 어떤 투구를 하고, 어떤 결과를 남길 지 지켜보는것도 긴시간 야구를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기록참조: KBReport.com/ 스탯티즈)

 송승준의 미래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송승준의 미래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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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KBReport.com (케이비리포트)에도 송고했습니다. (객원필진: 이윤학 /감수 및 자료제공: 프로야구 통계기록실 KBReport.com )

* 객원필진의 칼럼은 프로야구 통계미디어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의 공식적인 입장이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반론을 원하시는 경우 kbr@kbreport.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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