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인 더 트랩>의 한 장면.

<치즈 인 더 트랩>의 한 장면. 시청자의 기대를 배반한 채 종영하고 말았다. ⓒ tvN


원작을 영상화하는 작품은 태생적으로 이중고를 겪어야 할 숙명을 지닌다. '원작의 재창조'라는 자기 스스로와의 싸움과 원작 팬들의 기대와 간섭(?), 비판 말이다. 특히나 '고전'이 아닌 비교적 근작이거나 연재 중인 작품의 경우 후자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사전제작이 보편화하지 않은 드라마의 경우 이러한 후자의 목소리에 크게 영향을 받곤 한다. 어찌하겠는가. 원작의 팬들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잠재 시청자이자 소비자인 것을. 그래서 결국 요구되는 것이 작품의 자기 완결성이다. 원작의 재해석과 영상화의 장점을 취하는 동시에 각 장르적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하고 반영해야만 하는 것이다.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그 어려움은 물론 우리 한국의 창작자들만의 고민은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영상 텍스트가 웹툰을 포함해 활자로 된 문자 텍스트의 원작을 넘어설 수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소설이든, 만화든, 웹툰이든 관계없다. 캐릭터의 섬세한 속내를 묘사할 수 있고, 구구절절 서사를 풀어낼 수 있는 활자 텍스트의 방대함을 영상텍스트는 어쨌건 압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어머니'의 영향력? 원작 안 본 시청자는 만족시켰나

김고은, 치즈처럼 달콤하게!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웨딩홀에서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김고은이 미소를 짓고 있다. <치즈인더트랩>은 웹툰 작가 순끼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완벽 스펙남 유정(박해진 분)과 그의 본 모습을 유일하게 꿰뚫어본 여대생 홍설(김고은 분)이 그리는 로맨스릴러다. 2016년 1월 4일부터 매주 월, 화 저녁 11시 방송.

▲ 김고은, 치즈처럼 달콤하게!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웨딩홀에서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김고은이 미소를 짓고 있다. <치즈인더트랩>은 웹툰 작가 순끼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지만, 드라마가 진행될 수록 원작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버렸다. ⓒ 이정민


1일 종영한 tvN <치즈인더트랩>(아래 <치인트>)은 이러한 숙명을 결국 거스르지 못한 '나쁜 교본'으로 남을 전망이다. 비단,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원작자와 원작 팬들의 반발이나 주연배우의 분량 문제만이 아니다. 아니, 그 두 부분은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다. 연출자와 작가가 원작을 어떻게 해석하고 변용하느냐는 온전히 '창작'의 영역에 속한다.

<치즈 인 더 트랩>의 함정은 원작을 접하지 않은 시청자들을 만족하게 하는데 실패했다는 데 있다. 방송 전부터 애정이 넘쳤던 '치어머니'(치인트팬+시어머니)들의 바람과 이윤정 PD의 해석 간에 버그가 발생한 꼴이랄까. 원작의 팬이 아닌 이상 원작과의 차별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부차적인 문제다. 이야기나 캐릭터 모두 드라마만의 오리지널한 매력이 우선이다.

'로맨스릴러'로 명명된 <치인트>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기질을 내비치는 유정(박해진 분)과 연애를 이어가는 홍설(김고은 분)의 성장담으로 읽힐 수 있다. 여기에서 '읽힐 수 있다'가 중요하다. 유정의 성격과 행동, 그리고 연애가 홍설에게 끼치는 영향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이 알지 모를지 사람은 자꾸 나와 얽히는가"로 출발한 부자연스러운 관계가 로맨스로 발전하는 과정을 동시대 대학과 대학생들의 현실적인 모습과 연결시킬 가능성을 <치인트>는 스스로 날려버렸다. 유정이란 인물은 이기적이거나 소통에 어려움을 현대인의 은유로 발전시킬 수 있는 독창적인 캐릭터였다.

하지만 유정의 성격묘사나 배경에 대한 묘사를 거칠고 불분명하게 가져가면서 이런 가능성은 그저 모호함과 불친절한 캐릭터 묘사와 이야기 구조로 전락해 버렸다. 이와 관련, 백인호(서강준 분)란 캐릭터의 부각과 삼각멜로로의 함몰이 유정의 분량을 잡아먹었다는 비판도 거셌다. 한데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이윤정 PD의 오판은 바로 홍설 캐릭터의 설정 자체에 기인한다.

안일한 연출, 안일한 해석... '청춘+로맨스릴러'의 가능성을 날리다

조회수 11억뷰 웹툰 '치즈인더트랩', 드라마로 재탄생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웨딩홀에서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남주혁, 박민지, 이성경, 서강준, 김고은, 박해진과 이윤정 PD(가운데)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치즈인더트랩>은 웹툰 작가 순끼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완벽 스펙남 유정(박해진 분)과 그의 본 모습을 유일하게 꿰뚫어본 여대생 홍설(김고은 분)이 그리는 로맨스릴러다. 2016년 1월 4일부터 매주 월, 화 저녁 11시 방송.

▲ 조회수 11억뷰 웹툰 '치즈인더트랩', 드라마로 재탄생 지난 2015년 12월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웨딩홀에서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남주혁, 박민지, 이성경, 서강준, 김고은, 박해진과 이윤정 PD(가운데)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tvN 드라마 역사에서 <치인트>는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 이정민


<치인트>는 전반부를 유정과 홍설과의 관계 설정에, 중후반을 인호와의 삼각 멜로 묘사에 주력했다. 그 사이사이를 엮어 주는 갈등 요소는 과제 발표나 족보 사건과 같은 대학 생활과 관련한 에피소드와 유정과 인호(와 누나인 인하)와의 갈등 구조였다. 그 세계는 물론 홍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원작 팬들이 수없이 지적했듯이) 드라마 <치인트>는 기본적으로 홍설의 캐릭터를 평면적인 로맨스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묘사했다. 홍설의 평범함과 보편성을 부각하기 위한 소극적인 태도나 남성 캐릭터에 대한 의존성은 오히려 독이 됐다.

<마녀사냥>이 젊은층과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얻는 시대에 (이윤정 PD의 출세작인) <커피프린스 1호점>에 등장해도 의아할 법한 홍설의 소극성은 진부함과 동의어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런 캐릭터 설정이 인호와의 설렘이란 삼각멜로를 위한 방편이었다는 점은 분명 치명적이다.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여주인공 홍설. <치인트>는 이 대중적인 설정을 위해 더욱 깊어져야 할 재벌가 2세이자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유정의 캐릭터 묘사를 등한시했다. 4회부터 시작된 홍설과의 연애가 달달한 듯 비현실적이었던 이유다.

대신 <치인트>는 후반부, 유정에 비하면 좀 더 평범한 일반인에 가까운 인호의 홍설에 대한 감정 묘사에 주력했다. 절대 쉽지 않은 유정의 심리묘사 대신 훨씬 더 손쉽고 1차원적인 홍설과 인호와의 로맨스를 택한 것이다. 이러한 인물 구도는 결국 <치인트>의 설정 자체가 지닌 가능성과 매력을 희석하는 1등 공신이 됐다.

또 하나, 그 삼각멜로에 치중하면서 <치인트>는 '로맨스릴러'를 넘어서는 현실적인 청춘드라마로서의 가능성까지 희석해 버렸다. 홍설의 친구인 은택과 보라를 제외하고, 유정과 홍설, 홍설과 인호의 관계를 부각하기 위해 등장하는 홍설 주변의 대학생들은 전형적이거나 자극적인, 평면적이고 기능적인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치인트>가 그린 대학이란 공간은 유정과 조금씩은 닮아 있는 이기적인 인간들로 득시글거린다. 그것이 현재 대학이란 공간의 직유이자 은유였다면 좀 더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가 필요했다.

이윤정 PD는 결국 마지막회, 홍설의 교통사고와 어정쩡한 열린 결말을 택했다. 이조차도 그간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던 전개를 수습하려는 급작스러운 결말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태릉선수촌>으로부터 11년, 청춘들의 빛나는 심리묘사로 주목을 받으며 데뷔했던 이윤정 PD.

그는 이렇게 <치인트>라는 원작을 만나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져 버렸다. 원작의 매력과 대중성, 그리고 전형성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예나 지금이나, 유명 원작의 영상화는 그렇게 피해가기 힘든 함정으로 가득 차 있다.

 <치즈 인 더 트랩>의 홍설 김고은.

치인트는 스스로 설치한 트랩에 그만 빠져버리고 말았다. ⓒ tvN



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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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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