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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은 모두 34개국이다. 회원국들의 인구수는 전세계의 18%지만 GNP는 전세계의 85%, 수출입액은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니 OECD는 잘 사는 국가들의 집합체다. 대한민국은 1996년 29번째 회원국이 됐다.

이십여 년 전 부자 나라 반열에 올라섰으니 그때 정부의 정책은 다같이 잘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어야 옳다. 대기업과 기득권층에는 세금은 더 걷고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시빈민들이 합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OECD평균 수준의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이 마련됐어야 한다.

신간, <진보를 복기하다>는 국민들 대부분이 놓치고 있는, 하지만 엄중한 서민을 위한 정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18대 국회의원이자 당시 통합진보당 대표였던 이정희다. 신간은 저자가 의원시절 동료들과 각고의 노력으로 입안을 준비한 진보정책들을 담고 있다.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11가지'가 부제다.

<진보를 복기하다> 표지.
 <진보를 복기하다> 표지.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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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진보정책 ①] 기업살인법

2007년 영국이 산업재해를 뿌리 뽑기 위해 제정한 법이다. 대한민국은 OECD가입국 중 산업재해사망률 1위이고, 산재사망자 수는 OECD전체 평균치의 세 배나 된다고 한다.

'산업재해는 현행 법 체계에서는 업무상 과실치사로 규율된다. '아차' 실수해서 죽음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지 죽이려고 했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돈 때문에 사람을 위험한 일에 몰아넣는 것이 과연 과실치사라는 말 뒤에 숨을 수 있는 것인가.'(11쪽)

기업살인법은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 위험한 업무에 노출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저자는 진보정치의 역할은, 노동자들이 권한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체 노동자들 중 838만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이 수치는 전체 노동자의 44.6%에 이른다. 그리고 OECD국가 중 근속연수 평균값이 5.5년으로 가장 짧은 '초단기 근속'의 나라가 대한민국'(40쪽)

국민들 중 성인의 대부분이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10%에 미치지 않고 민주노총 가입률은 또 그 절반, 하청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고작 1.9%밖에 되지 않는 대한민국 아닌가"(25쪽)라고 저자가 전해주는 낯설지 않은 정보와 탄식이 분노와 공포로 바뀐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하청에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최하위 계층들간 수평폭력이 난무한다. 노동자, 서민들이 신음하고 있다.

[아까운 진보정책 ②] 국민기초식량보장법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12년, 쌀값을 80kg당 17만 원에서 2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협상 한 번 새로이 시도해보지 않고 2015년부터 관세만 물면 누구나 쌀을 무한정 수입할 수 있게 전면 개방한 데다 이제 수입 의무도 사라진 밥쌀 수입까지 계속한 결과, 2015년 11월 쌀값은 15만 1644원, 1년 전보다도 9.1% 떨어졌다. 20년 전 쌀값이다. 20년 전 임금으로 일하라면 일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73쪽)

국가의 자립과 식량의 자급자족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국민들의 주된 식량공급원인 농업만큼은 국가간 교역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저자는 그 근거를 선진국들의 사례를 들어 제시한다. "다수의 선진국들은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어선다, 2010년 기준 호주의 식량자급률이 176%, 프랑스 164%, 미국 150% 등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축 사료를 포함한 식량자급률은 2011년 기준 22%까지 떨어졌다"(75쪽)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은 세계 2위의 유전자재조합(GMO)작물 수입 대국이라고 한다.

[아까운 진보정책 ③] OECD 최저 수준의 소득재분배를 위한 개혁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라며 복지공약들을 앞세웠다. 그러나 2014년부터 시작해 2017년에 전면 실시하겠다던 고교 무상교육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OECD34개국 가운데 고교 무상교육을 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반값등록금 공약은 파기되었다.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으로 인상해 지급하겠다던 공약은 실제로는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축소되어버렸다. 만 3~5세 누리과정 무상보육 공약 시행 예산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부담으로 떠넘겨졌다.'(101쪽)

대통령 후보시절 내놓은 공약들이 줄줄이 파기되어도 박근혜 정부는 당당하기만 하다. 언론이 자세히 보도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종편채널은 성실하게도 정부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진보정당들이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내놓은 배경이다.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언론자유국'에서 제외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2002년 처음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한 2002년에 우리나라는 39위였고 2006년 31위까지 올라갔지만, 이명박, 박근혜정부 들어 매년 추락해 2015년에는 60위까지 떨어졌다.'(133쪽)

송파구의 세 모녀 자살사건, 칠순의 농민이 시위도중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사건, 세월호 참사,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매년 600명이 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갇히는 사건 등의 일들은 절대로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

권력자들만을 위한 나라가 저지르는 중인 범죄행위들이다. 법과 정책이 공정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제대로 집행이 되지 않아서 생긴 일들이다. 통합진보당은 없어졌지만 그들이 갈고 다듬은 법안과 정책들은 재검토되어야만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해! 대한민국이 OECD회원국이라는 사실을 자랑하기 전에!

덧붙이는 글 | <진보를 복기하다> 이정희 지음, 2016년 2월, 들녘



진보를 복기하다 -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11가지

이정희 지음, 박홍규 그림, 들녘(2016)


태그:#OECD, #이정희, #노동자, #국정원개혁, #소득재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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