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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야당의원들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1주일째를 맞이한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 많은 시민, 학생들이 방문해 방청하고 있다.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야당의원들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1주일째를 맞이한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 많은 시민, 학생들이 방문해 방청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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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만큼, 비난으로 점철된 외딴 섬이 있을까. 여야 혹은 보수, 중도, 진보 등의 스펙트럼을 가리지 않고 욕한다. '빨갱이, 수구꼴통'부터 '일하지도 않고 세금을 축내는 사람들'이라고 국회의원을 정의하고 '대화할 생각은 안 하고 싸우기만 한다'고 비난한다.

같은 행동을 두고 언론의 엇갈린 해석이 이어지고 비판과 칭찬이 나뉜다. 출근할 때 내는 버스비부터 퇴근하고 켜는 형광등의 전기세까지, 정치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생활은 없지만 여의도 정치는 사람들의 관심 밖인 경우가 많다. 육지와 단절된 섬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그런데 이 섬에 사람들이 찾아가기 시작했다. 필리버스터를 듣기 위해서다.

날것의 정치기록, 필리버스터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즉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이 90시간을 넘어선 지난달 27일 오후 2시 경, 본회의 방청을 위해 국회의사당 후면 안내실을 찾았다가 번호표를 받고 대기중이던 방청객들이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분증을 맡기는 절차를 위해 줄을 서 있다.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즉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이 90시간을 넘어선 지난달 27일 오후 2시 경, 본회의 방청을 위해 국회의사당 후면 안내실을 찾았다가 번호표를 받고 대기중이던 방청객들이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분증을 맡기는 절차를 위해 줄을 서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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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검색대를 통과해 들어간 2월 29일의 국회 본회의장 2층 방청석은 3분의 2가 차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부터 돋보기안경을 끼고 수첩에 필기를 하며 듣는 할아버지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방청석 앞에 있는 갈색 울타리 너머로 방송국과 신문사들이 있었다. 2층의 모든 사람들은 보고,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기록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가 보는 정치는 미디어가 제공한 2차 기록물이다.
언론은 비판이나 논조라는 이름으로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제공하거나, 한정된 분량 때문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 이외의 것들은 삭제한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정치는 사안 그 자체가 아니라, 사안에 관한 여야의 말싸움을 요약했거나, 'A의원이 B사안에 대해 반대했다'라는 일부의 사실뿐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정치는 발췌된 기록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날것의 정치기록이었다. 국회의원은 정제된 언어로 무제한 시간 동안 온전한 정보를 전달했다. 언론을 통해 제한되거나 요약된 정보만을 전달받았던 사람들은, 온전한 정보의 수집가가 됐다. 언론에 'A 의원이 테러방지법 반대 연설을 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이 말들은 몇 시간 동안 날것의 형태로 흘러나왔다.

누군가는 수첩에 국회의원의 말을 적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리기도 했다. 작은 소리로 옆 사람과 이야기하기도 했다. 국회의원과 방청객들은 서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언어와 생각이 공기를 떠돌아 다녔다. 

필리버스터는 설득의 연단이기도 했다. 합법적인 의사방해라는 의미보다 설득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은 해당 의제에 관해서만 발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설득은 단순히 테러방지법 반대에 그치지 않았다. 근본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테러방지법 이전에 생각해야 할 문제들에 관해 말했다.

내가 방청했던 국민의당 최원식 의원은 '사익과 공익이 충돌할 때 어느 것을 먼저 더 생각해야 하는가', '국민과 국가의 관계는 어때야 하는가'를 물었다. 우리는 테러방지법과 관련된 이 문제에 관해 사회적으로 토론해본 적이 있었나. 아니, 생각해 볼 기회조차 있었던가.

최원식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달 29일 오전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26번째로 이어가고 있다.
 최원식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달 29일 오전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26번째로 이어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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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감시체제'를 뛰어넘은 박수들

한 가지 잊지 못했던 것은, 국회 본회의장의 구조였다. 2층 방청석과 기자석에서 회의장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의원의 앞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명패와 컴퓨터 화면은 2층 쪽을 향해 있었다. 의원들의 모든 행동은 기자들이 본회의장 2층에서 소위 대포 카메라로 찍고 비디오로 촬영했으며 모든 발언은 속기록으로 기록됐다. 의장단이 조금만 움직여도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고 정의화 국회의장과 어떤 의원이 대화를 하기 시작하자 기자들은 뛰기 시작했다. 달려가 그들이 대화를 끝낼 때까지 찍었다.  

감시체제였다. 국회의원은 언론과 국민의 당연한 감시 대상이지만 사생활까지 침범한다며 항의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신문에서 국회의원들이 카메라에 핸드폰 문자나 메신저 대화가 찍힐까봐 가리고 몰래 보는 경우가 신문에 수없이 보도된다. 기본권과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 테러방지법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것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최원식 의원의 발언이 끝나가자 방청 동안 사람들이 움직이기만 해도 쳐다보던 2층에 있던 방호과 직원들이 말했다. "찬성, 혹은 반대의 의견 표명이나 박수를 치는 등의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고. 공공장소이니 조용히 해야 한다는 그 흔한 이유조차 없었다.

그들은 방청내내 사람들이 천장을 쳐다보거나 두리번 거리기만 해도 근처에서 서성댔다. 방청석 계단에서 사람들을 계속 둘러봤다. 테러방지법이 '국민과 국가의 안보'를 위함이라는 명분처럼 그들도 '국회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함'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상 행동을 할 것 같은 사람'을 잡아내기 위함이었을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박수가 터져 나왔다는 거다.


태그:#필리버스터, #날것의 기록, #최원식 의원, #감시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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