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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월이 되면 반복되는 말이 있다. 'OT 안 가면 아싸(아웃사이더) 되나요?', '술 강제로 먹어야 하나요?', '장기자랑 꼭 시키나요? 뭐 해야 하나요? 안 하면 어떻게 되나요?' 등의 질문들.

대학교 OT(Orientation의 줄임말, 신입생을 적응시키기 위한 교육지도), 새터를 앞두고 신입생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이다. 나 역시도 첫 OT를 앞두고 선배들이 장기자랑을 시킨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를 두고 친구들과 한참을 토론하곤 했었고, 술을 못 마시는 친구들은 '선배에게 찍히더라도 거절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면서 한숨을 내쉬곤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학가는 OT, 새터와 같은 신입생 행사에서 시끄럽다. 경희대는 OT 비용을 38만 원이나 걷은 학과로 물의를 빚었다. 건국대의 한 학과는 '성희롱'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프로그램을 짜서 대중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한양대에서도 선배들이 술을 강권했다는 문제가 지적되었다.

또한 공론화가 되지 않았더라도 많은 대학 커뮤니티에서 OT문화를 두고 '대학이 원래 이런 곳이냐'는 물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지적됐지만 여전히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신입생은 담배 피우지 마', 위계질서로 물든 대학

성희롱 문제가 제기된 OT 프로그램 관련, 건국대학교 '대나무 숲' 페이지 게시글.
 성희롱 문제가 제기된 OT 프로그램 관련, 건국대학교 '대나무 숲' 페이지 게시글.
ⓒ 건국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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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의 첫 행사만 가지고 시끄러운 것은 아니다. '학번제'를 철저히 지키는 학과들의 경우 선배가 자신보다 어려도 깍듯이 존대해야 하고, 작년에도 몇 차례 언급된 사례처럼 학생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신입생은 담배를 피우지 말 것', '머리나 복장을 OO하지 말 것'과 같은 것들이다. 이처럼 선배가 행하는 신입생에 대하는 수많은 행동과 언어를 두고도 대학가는 매년 진통을 앓았고 많은 학생이 '넌덜머리'를 내곤 했다.

이러한 일들은 결국 선후배 사이의 '위계질서' 때문에 발생한다. '선배는 후배보다 윗사람이고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배는 후배에게 술을 강권하고, 장기자랑을 시키고, 무조건 존대를 받고, 후배의 생활권을 침해할 수 있는 존재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그 위계질서 앞에서 신입생들은 '대항'할 힘조차 꺾여버린다. 선·후배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되어 '아싸(왕따)'가 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과거 화제가 되었던 어느 학과의 군기와 금지행동들. SNS에 공개된 카카오톡 대화창 갈무리.
 과거 화제가 되었던 어느 학과의 군기와 금지행동들. SNS에 공개된 카카오톡 대화창 갈무리.
ⓒ 카카오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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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모든 대학생을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대학가의 위계질서 문화는 학교나 과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만큼 뿌리 깊은 위계질서 문화로 돌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위계질서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사를 비롯해 많은 기업도 강압적인 조직 문화의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이런 문화는 일상생활에도 자리를 잡은 상태고, 학생들이 겪고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더 지독한 '갑과 을' 관계와 강압, 강권으로 가득하다.

또한 대부분의 대학생은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대학에만 가면 된다'라거나 '좋은 대학에만 들어간다면 네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녀도 좋다'라는 속삭임을 들으며 10대를 보내왔다. 갓 20살이 되고 21살이 된 대학생들은 어느 것이 옳은지를 고민할 시간이 없었으며, 그것을 고민하는 10대에게 사회는 수능 문제만을 권해온 셈이다.

그렇게 사회는 그들에게 늘 대학을 '일탈이든 무엇이든 가능한 자유의 세계'라는 환상을 씌워왔다. 동시에 대학생이 된 사람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고민하고 판단하는 것을 금지해왔다.

대학이 더는 사회의 악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오롯이 학문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현재 우리의 대학은 사회의 논리와 악습, 문화들을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대신 토익과 스펙쌓기만을 권하고 있다.

즉 대학은 사회의 악습과 분리될 정도로 순수하지도 않고, 학생들의 인성을 교육하고 사고력과 판단력을 기르게 할만큼 교육적이지도 않다. 오늘날 대학은 취직 전 단계에 해당하는 '사회의 한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병든 대학 문화'로 치부하고 끝낼 일 아니다

지난해 취직 못한 학생을 '재고품'에 비유한 한양대 총학 페이스북의 총장 발언 패러디 사진. 창고에서 재고를 확인하는 직원의 사진에 "교수님이 출석을 체크하고 있다"라고 설명을 넣었다.
 지난해 취직 못한 학생을 '재고품'에 비유한 한양대 총학 페이스북의 총장 발언 패러디 사진. 창고에서 재고를 확인하는 직원의 사진에 "교수님이 출석을 체크하고 있다"라고 설명을 넣었다.
ⓒ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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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OT나 새터, 이후 학교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원인은 대학생들이 무지하고 '무개념'해서, 혹은 유별나기 때문이 아니다. 철저한 위계질서 문화와 악습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와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만드는 우리의 교육이 원인이다. 또한 대학이 악습을 걸러내고 옳은 것을 권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대학생들과 대학에서 지속적으로 자구책을 마련해 나가면서 악습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어른이나 언론에서 '병든 대학가 문화'라는 식으로 단순히 치부해 버리는 것은 자신의 문제들을 회피하는 일이다.

매년 2~3월이 돌아오면 터지는 대학가의 사건·사고가 문제라고 여긴다면, 동시에 우리 사회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극심한 '군대식' 위계질서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의 교육이 학생의 생각을 죽이는 교육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매년 유사한 사건들과 신입생의 걱정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고함20(www.goham20.com)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최효훈, #OT, #새터, #강권, #대학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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