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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야당의원들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1주일째를 맞이한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 많은 시민, 학생들이 방문해 방청하고 있다. 한 학생이 필리버스터중인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을 노트에 메모하고 있다.
▲ 필리버스터 1주일째, 국회는 '민주주의 공부방'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야당의원들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1주일째를 맞이한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 많은 시민, 학생들이 방문해 방청하고 있다. 한 학생이 필리버스터중인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을 노트에 메모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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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기억의 단초고, 기억은 역사의 토대다. 꼼꼼한 기록은 기억을 되살리는 데 도움을 주고, 그렇게 떠올린 기억은 역사의 중요한 재료가 된다. 행여 지금 역사가 되지 못한 기록이라도, 기록은 언제든 역사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그 자체로 소중하다.

7일 째 계속되고 있는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은 말의 향연임과 동시에 기록의 향연이다.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지금 여론의 가슴을 불태우기 위해 기록되고 있다. 한편으론 언제까지 여론의 가슴을 뛰게 할 지 모르기에, 필리버스터는 기록돼야 한다.

기록은 기자 만의 몫일까. 필리버스터는 많은 것을 낳았고, 시민 스스로 기록자가 되는 장을 만들었다.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에서, 이른바 '마국텔(마이국회텔레비전, 누리꾼들이 국회방송을 지칭하며 만든 신조어)' 생중계 댓글 창에서 시민들은 누구나 기록자가 됐다.

뉴스 큐레이션 팀 '팀 스푼'이 만든 필리버스터 투데이 홈페이지(http://www.filibuster.today/).
 뉴스 큐레이션 팀 '팀 스푼'이 만든 필리버스터 투데이 홈페이지(http://www.filibuster.today/).
ⓒ 필리버스터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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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가 시작된 다음 날, 시민의 손에 의해 '필리버스터 투데이(바로가기)'라는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홈페이지에는 필리버스터 첫 주자 김광진 의원부터 현재 주자 최원식 의원(29일 오후 5시 현재)까지, 필리버스터에 나선 야당 의원들의 주요 발언들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홈페이지 운영자들은 발언 전문을 그대로 싣는 대신, 내용을 조목조목 요약해 개조식으로 게재하고 있다. 마치 베끼고 싶은 공부 잘하는 친구의 노트 필기처럼.

더민주 은수미 의원 [2월 24일 02:30 - 2월 24일 12:48, 총 10시간 18분]

▲ 도입: 우리나라 필리버스터의 역사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65년 무제한토론(김준연 의원 구속동의안 반대토론)을 언급.
- 박정희 대통령 때 한번 폐지되었던 필리버스터가 박근혜 대통령 때 또 폐지될까 우려.

▲직권상정 철회 요구. 직권상정 지정요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
-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아님(예를 들어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른 근무상 필요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음).
- 또한 북한은 법적으로 테러단체로 정의되어 있지 않음.

▲ 이후 의원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을 낭독함.

<오마이뉴스>는 26일 필리버스터 투데이 운영진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뉴스 큐레이션 팀 '팀 스푼'이 만든 필리버스터 투데이 홈페이지(http://www.filibuster.today/).
 뉴스 큐레이션 팀 '팀 스푼'이 만든 필리버스터 투데이 홈페이지(http://www.filibuster.today/).
ⓒ 필리버스터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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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동갑내기 친구들 "필리버스터, 너무 길어서..."

필리버스터 투데이는 '팀 스푼(Team Spoon)'이라는 뉴스 큐레이션 팀이 만든 홈페이지다. 팀 인원 세 명은 고등학교 때 만난 동창이다. 한 명은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고, 두 명은 보스턴과 위스콘신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올해 서른 살이 된 동갑내기 친구 셋은 "아무래도 필리버스터의 분량도 많고 시간도 길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게 안타까워" 필리버스터 투데이를 만들었다.

사실, 먼저 연락을 해온 쪽은 팀 스푼이다. 필리버스터 속기록 전문을 올린 <오마이뉴스> 기사(관련 기사 : 재미·감동 그리고 '사이다', 필리버스터 전문 공개)를 보고, 팀 스푼은 "필리버스터 투데이를 운영하는 데 속기록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속기록을 구할 방법을 알려달라"며 쪽지를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답변한 김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들은 올 초 "정치에 대해 본인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좋은 내용을 널리 공유하자는 취지"로 '하루 5분 스푼'이라는 어플(바로가기)을 만들기도 했다. "필리버스터 투데이를 만든 것도 그것의 연장선상"이다.

"필리버스터 투데이는 세 명이 번갈아가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셋 중 둘은 최대한 많은 시간 실시간으로 필리버스터를 보며, 직접 중계를 보기 힘든 국민들께 생생한 상황을 전하려 노력합니다. 나머지 한 명은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속기록을 보며 과거 발언을 요약합니다. 요약을 완벽하게 할 순 없지만 대신 사이트에 오시는 분들이 추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이퍼링크를 충실히 달아 더 깊은 정보도 쉽게 도달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필리버스터 투데이에서는 의원들의 발언뿐만 아니라 테러방지법, 국회의원 직권상정, 국회선진화법 등 쟁점이 되는 사안도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필리버스터에 나선 야당 의원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잠 부족하지만... 응원 덕분에 힘내"

필리버스터 투데이(http://www.filibuster.today/)를 만든 '팀 스푼'의 페이스북 페이지.
 필리버스터 투데이(http://www.filibuster.today/)를 만든 '팀 스푼'의 페이스북 페이지.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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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투데이는 SNS를 통해 입길에 오르며 네티즌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인터뷰를 진행한 26일 오후까지 약 20만 명이 홈페이지를 찾기도 했다. 그만큼 팀 스푼의 할 일은 많아지고 있다. 

"사실 인원이 세 명이다보니, 실시간으로 필리버스터를 보고, 동시에 과거 발언까지 요약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많은 요약 자료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잠을 많이 줄여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잠이 부족한 점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하지만 저희 페이스북 페이지(바로가기)에 방문하셔서 댓글과 메시지로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덕분에 힘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새누리당을 향해 "새누리당 의원들도 함께 토론에 참여해 테러방지법이 왜 옳은지, 직권상정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설명해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토론이 평화롭게 이뤄진다면, 온 국민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양측의 논거를 저울질해본 후 스스로의 주관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필리버스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팀 스푼과 나눈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 필리버스터 투데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든 까닭은?
"필리버스터가 막 시작됐을 때, 아무래도 내용의 분량도 많고 시간도 길어서 잘 전달되지 않는 게 안타까워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저희 팀의 결성 목적이 정치에 대해 본인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좋은 내용을 널리 공유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필리버스터 사이트를 만드는 것도 그것의 연장 선상이라 생각했습니다."

- 팀 스푼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팀스푼은 세 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모두 고등학교 시절 만난 친구들입니다. 남탕입니다. 셋 모두 우리 사회와 정치에 관심이 많아 졸업 이후에도 한국사회와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그러던 저희가 30세가 되어,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에 한 번 옮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고 '하루 5분 스푼'이라는 비영리 뉴스 큐레이팅 서비스입니다. 범람하는 정보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큐레이션 서비스를 컨셉으로, 중요한 이슈, 좋은 기사를 골라 전달하는 서비스입니다. 딱딱한 뉴스를 최대한 재밌게 만들기 위한 여러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현재 iOS버전만 서비스하고 있으며, 안드로이드 버전은 개발 중입니다. 참고로 저희가 현재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는 비영리 공익 목적입니다.

팀원 셋 중 두 명은 각각 미국 보스턴과 위스콘신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한 명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닙니다. 다들 떨어져 있기 때문에 사무실은 없고 각자의 일터에서 자기 일을 하면서 하루 5분 스푼과 필리버스터 투데이의 운영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필리버스터 투데이를 시작한 이후, 본업은 거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지만요."

"이석현 국회부의장, 기억에 남아"

지난달 27일 오후2시 현재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91시간을 돌파한 가운데,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아래 의원석은 거의 비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필리버스터 91시간 돌파...방청석 '북적' 지난달 27일 오후2시 현재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91시간을 돌파한 가운데,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아래 의원석은 거의 비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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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누리꾼들의 호응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느 정도인가?
"홈페이지 조회 수는 현재 20만 정도입니다. 많은 분들의 호응에 감사드리며, 의자도 없이 연단에 서서 고생하시는 의원님들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 지금 답변을 작성하고 있는 분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나머지 둘이 저희 팀의 브레인이라면, 저는 팀의 행동대장 같은 역할입니다. 똑똑한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떻게든 실현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 필리버스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서기호 정의당 의원 발언 도중 전북 정읍 배영고등학교에서 참관 온 학생들에게 환영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현장을 이렇게 직접 지켜보며 자라나는 '우리나라의 새싹들이 나중에 어떤 시민이 될까'라는 상상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저희가 요약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더 많은 국민들에게 비슷한 경험을 선물해드리고 있는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희는 솔직히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자료를 준비해 국민들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열변을 토하고 있는 의원들을 지켜보며 조금씩 그쪽에 마음이 향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희가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할 수 있도록, 새누리당 의원들도 함께 토론에 참여해 테러방지법이 왜 옳은지, 직권상정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설명해줬으면 합니다.

이 토론이 평화롭게 이뤄진다면, 그리고 온 국민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양측의 논거를 저울질해본 후 스스로의 주관을 확립하게 된다면, (필리버스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태그:#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무제한토론, #필리버스터 투데이, #팀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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