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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며 야당 의원들이 '릴레이 필리버스터'에 들어간 지 100시간이 넘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테러방지법이 국정원에게 무제한 감청을 허용하는 '국민감시법'이라고 지적하며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맞서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정의당과 국민의당 의원들도 동참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릴레이 필리버스터'(김대중 대통령 등이 법안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를 한 경우는 있지만, 야당 국회의원들이 '릴레이'로 필리버스터를 한 경우는 처음이다)에 국민들도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장 처음 시작한 김광진 더민주 의원이 발언할 때는 '김광진 힘내라'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고, 관련 검색어가 상위 5등을 차지하는 등 인기를 누렸다.

말로만 듣던 필리버스터, 눈으로 보다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91시간을 돌파한 가운데,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아래 의원석은 거의 비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필리버스터 91시간 돌파...방청석 '북적'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91시간을 돌파한 가운데,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아래 의원석은 거의 비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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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국민의 관심은 테러방지법보다는 필리버스터에 치중돼 있는 느낌이다. 국민들은 테러방지법이라는 생소한 법보다는, 부당한 방법으로 직권상정된 법을 야당이 합법적 절차로 저지하고 나섰다는 데 주목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국회에 방청을 하러 온 사람들의 이유도 주로 필리버스터를 직접 보고 싶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실 필자와 친구들이 국회 방청을 간 이유도 야당 의원에 대한 응원도 응원이지만, 말로만 듣던 필리버스터를 진짜로 볼 수 있다는 이유가 컸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권과 국민의 거리가 먼만큼, 방청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사실상 국회 방청을 위해서는 국회의원으로부터 방청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 기사에 나온 대로 지역구 국회의원인 심재권 더민주 의원실에 국회 방청권에 대한 문의를 했다. 다음날 연락이 왔는데, 방청 대기자가 많아 신청을 해도 언제 방청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적어도 주말은 안 된다고.

필리버스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 고민하던 중 절친한 친구 A에게 정의당 정책기획조정실에서 국회방청권을 나눠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즉석에서 방청하고 왔다"며 올린 방청권 인증과 함께. 그날(26일) <팩트TV> 방송에서 아침 10시부터 정의당에서 방청권을 나눠준다는 공고를 보고 친구들과 아침 일찍 국회로 가기로 했다. 왠지 낮에는 사람이 몰릴 것 같은, 온 우주로부터 그런 기운이 왔기 때문이다.

시민 필리버스터 발언대를 지나, 국회 정문으로 들어왔다. 경비가 무슨 목적으로 왔느냐고 물어 '국회 방청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필리버스터 들으러 왔느냐면서 국회 본청 후문으로 들어가면 된단다. 국회를 뺑 돌아 본청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본청 정문은 국회의원만 이용이 가능하며, 좌우 출입문은 국회 직원만 사용이 가능하다.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뒷문으로 들어가서 방문 기관에 무작정 '정의당 정책기획조정실'을 적어 안내데스크에 제출했다. 당시로서는 '정말 정의당에서 방청권을 줄까'라는 생각이 있었는지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허가받지 않고 몰래 잠입하는 것 같았달까.

곧이어 국회 직원이 218호로 가면 된다고 한다. 그전에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기기 등은 모두 사물함에 넣어야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잡으며 정책기획조정실을 찾아가니 당직자분께서 방청권을 나눠주며 "여기에 앉아서 쓰시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필리버스터를 들으려고 국회를 방문하는 국민들이 방청할 수 있게 정의당에서 지원하는 거라면서. 하마터면 못 들을 뻔해서 참 고마웠다. 친구 한 명이 정의당에 입당하는 것 어떻겠냐며 권유까지 했을 정도니.

정의당에서 발급해준 필리버스터 방청권.
 정의당에서 발급해준 필리버스터 방청권.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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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즉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이 90시간을 넘어선 27일 오후 3시 경, 본회의 방청권을 받기 위해 정의당 원내행정기획실을 방문한 방청객들이 가방을 맡기고 있다. 방청객 수가 많아 안내실의 사물함이 다 찼기 때문이다.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즉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이 90시간을 넘어선 27일 오후 3시 경, 본회의 방청권을 받기 위해 정의당 원내행정기획실을 방문한 방청객들이 가방을 맡기고 있다. 방청객 수가 많아 안내실의 사물함이 다 찼기 때문이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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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방청석은 4층에 있었다. 들어갈 때 소지품 검사를 했다. 핸드폰을 들고 왔으면 놓고 가야 한단다. <슬로우뉴스>의 보도에서 "방청석에 있던 기자 혹은 베테랑(?) 방청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 내용이 생각났다. 1층 사물함에 이미 휴대폰을 놓고 왔지만, 궁금해서 물었다.

"제가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니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가는 분들이 있다던데, 그건 어떤 경우인가요?"

"그 글은 저도 봤는데요(웃음). 그분들은 국회 공식 출입 기자분들이랑 국회 직원들입니다. 그분들은 예외로 하고 있고요. 여러분들은 일반 방청객들이니까…."

납득은 하겠는데, 일반 방청객은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반입할 수 없는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기자는 휴대폰 사용이 가능하고 일반 방청객들은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야말로 신분으로 인한 '문턱의 차이'다.

동행한 고등학교 3학년 B군이 직원에게 궁금한 부분이 있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봤다.

"중간에 잠시 방청석을 나갔다 들어가는 것도 가능한가요? 화장실이라던가…."

어렵게 얻은 방청 기회인데, 화장실 가는 것으로 놓칠 수는 없지 않겠나. 나도 직원의 대답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러자 직원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 아닌가.

"안 됩니다. 한 번 나가면 들어오실 수 없어요."

화장실을 다녀올 수 없다니? 아무래도 화장실부터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해서 직원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여쭸다. 그러더니 그 직원이 웃으면서 말한다.

"중간에 화장실 다녀오셔도 됩니다. 너무 진지하게 물어보셔서…. 국민이 필리버스터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중간에 나가서 화장실 갔다오시면 됩니다."

직원의 농담에 우리 모두 유쾌하게 웃었다. 물론 방청석에 물과 음식 등은 반입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자면 방청객들은 '무음 필리버스터'를 하는 게 아니겠냐며 친구에게 농담을 하고는 방청석에 들어갔다.

텅 빈 의석, 꽉 찬 방청석

지난 27일 오후 2시 현재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91시간을 돌파한 가운데,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아래 의원석은 거의 비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필리버스터 91시간 돌파...방청석 '북적' 지난 27일 오후 2시 현재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91시간을 돌파한 가운데,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아래 의원석은 거의 비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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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자마자 유의동 새누리당 의원이 필리버스터 중인 정청래 더민주 의원에게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청래 의원이 하고 있던 이야기가 의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었다. 필리버스터 사태의 주범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김영주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의장석에 앉아 있었다.

설전을 벌이던 정청래 의원이 "듣기 싫으면 나가셔도 돼요"라고 말하자, 유의동 의원은 책상을 탁 치고 일어서서 "아니 진짜! 의장님, 주의 주십시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정청래 의원도 "아니, 여러분들은 이의 제기해도 되고 저는 안 됩니까?"라고 맞받아쳤다. 사람들이 폭소했다. 이후에도 정청래 의원이 새누리당을 저격하는 발언을 하자 방청객 여기저기에서 키득대는 소리가 나왔다. 솔직히 나도 웃었다.

낮 12시 정각, 이석현 국회 부의장이 의사진행을 했다. 이 부의장이 정청래 의원에게 잠시 화장실에 가도 좋다고 제안했다. 필리버스터 중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는 역사적인 첫 전례(!)를 만들려 한 것이다. 문제는 정청래 의원이 사양함으로써 그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다음 필리버스터 의원을 위해 화장실에 다녀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청래 의원이 6월 항쟁 관련 발언을 하자, 박민식·배덕광 새누리당 의원이 정 의원의 발언이 테러방지법과 관계가 없다며 의제와 관계없는 발언은 제지해달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정 의원이 이렇게 맞받아쳤다.

"저 떠들고 있는 국회의원에게 '국회의원 조용히 하게 만드는 법'을 만듭시다. 그런 방지법을 만들면 방지가 되나, 자살방지법을 만든다고 자살이 방지되나, 테러방지법 만든다고 테러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대학 불합격 방지법'을 만들면 합격시켜 줍니까?"

또다시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오후 1시경, 새누리당 C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전화통화를 하다가 이석현 부의장에게 지적받는 일이 발생했다. 솔직히 본회의 중 큰 소리로 전화를 받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방청석에 앉은 사람은 말 한마디, 박수 한 번 못 하는 데 말이다.

본회의 중 새누리당 의원이 약 4~5명 정도 앉아 있었는데, 방청석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에는 방청객이 약 100여 명이었고, 오후 1시 30분에는 161명, 1시 50분에는 175명까지 늘어났다. 방청석에는 자리가 없을 지경인데, 본회의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즉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이 90시간을 넘어선 지난 27일 오후 2시 경, 본회의 방청을 위해 국회의사당 후면 안내실을 찾았다가 번호표를 받고 대기중이던 방청객들이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분증을 맡기는 절차를 위해 줄을 서 있다.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즉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이 90시간을 넘어선 지난 27일 오후 2시 경, 본회의 방청을 위해 국회의사당 후면 안내실을 찾았다가 번호표를 받고 대기중이던 방청객들이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분증을 맡기는 절차를 위해 줄을 서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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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집회 취재를 가기 위해 2시경 방청석을 나왔다. 1층에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약 3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청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필리버스터를 들으러 왔다는 한 20대 남성은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찍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미에서 올라온 고등학생 일행은 국회 방청을 하러 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필리버스터를 한 번 직접 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기번호는 114번. 필자가 막 1층에 도착했을 때, 91번 번호표를 받은 사람들이 본청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름의 취재 활동을 하는 도중, 멀리서 노란 넥타이를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이석현 국회 부의장이었다. 김춘진 보건복지위원장에게 의사진행을 맡기고 퇴장한 것이었다. 한 번에 이 부의장을 알아본 것이 신기했다. 나 같은 일반인이(?) 국회의장도 아니고,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는 부의장의 이름과 얼굴을 알아보는 게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방청하려고 대기하던 사람들도 긴가민가하며 이 부의장을 알아봤다. 평소에 존재감이 없던 국회 부의장이, '힐러 리'라고 불리며 국민들이 한 눈에 알아보는 '국회 스타'가 된 거다. 이게 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비정상적인 직권상정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필자는 나름 편하게 국회 방청을 한 편에 속한다. 이날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정의당 원내행정기획실은 오후 4시께 방청권이 50여 장 밖에 남지 않았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방청을 위해서는 기존의 방법처럼 지역구 국회의원실로 연락해 방청권 배부를 받아야 하는데, 필자의 경우처럼 언제 방청권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 지역구 의원실로부터 방청권을 신청해 받은 후 가급적 아침 일찍 가도록 하자. 늦게 가면 방청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어서 한참을 기다릴 수 있다.


태그:#필리버스터, #테러방지법, #국민감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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