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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많은 시민이 '테러방지법'이라 쓰고 '국가걱정원법'이라 읽는, 법안의 통과를 막는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열광했다(관련 기사: 필리버스터 부른 테러방지법이 악법인 까닭). 이 열광에 대해서 이송희일 영화감독은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이 의견을 남겼다.

"일상의 틈새를 찢고 나온 축제가 되어버렸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국회 본회의장은 마치 시위 때문에 교통의 흐름이 멈춰버린 광화문 광장 같아졌고,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건 오롯이 누군가의 '말'뿐이다. … 우리가 어떤 정치인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행하는 모노드라마를 끊김없이 몇 시간 동안 지켜본 적이 있던가. … 그 발가벗겨진 말에 채색을 하고, 캐릭터와 인격을 부여하고, 서사를 구성하는 대중들의 행위는 정치의 2차 창작이기도 하다."

이 감독의 말처럼 '필리버스터'는 마치 깜짝 개봉에 성공한 영화 한 편과 같았다. 시민이라는 팬들의 눈길과 발걸음을, 국회라는 영화관으로 돌리게 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방송이 폭주했고, 영화는 직접 영화관에 가서 봐야 제맛이라는 관객들이 '필리버스터' 방청권을 얻으려고 국회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뿐이 아니다.

27일 오후2시 현재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91시간을 돌파한 가운데,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아래 의원석은 거의 비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필리버스터 91시간 돌파...방청석 '북적' 27일 오후2시 현재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91시간을 돌파한 가운데,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면 아래 의원석은 거의 비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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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필리버스터에 나온 의원들을 캐릭터화해서 즐기기 시작했다. 국회 마리텔, TV인문학, 현대사 강의, 한밤의 라디오. 웬만한 정치적 이슈에도 잘 움직이지 않는 덕후들이 각종 짤방을 연성하고, 트위터는 실시간으로 폭주하고, 각 정치인의 후원금도 쌀알처럼 쏟아지고 있다. '학생회장' 같은 김광진, '인생극장' 은수미, '똘똘이 스머프' 박원석, '죄 읽어주는 남자' 신경민, '한숨 요정' 강기정 등." (이송희일 영화감독)

결국 이 축제의 원동력, 즉 시민을 움직이는 감정 에너지는 테러방지법에 대한 '도덕적 분노'라기보다 '필리버스터' 등장인물들에 대한 '공감'에 가깝다. 다시 말해, 등장인물들의 정(情)과 한(恨)에 교감하는 것에 가깝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관객들의 인권이 침해당하지 않을까 걱정할 때 관객들도 정을 주고, 등장인물들이 권위주의에 억압을 당한 경험에 눈물지을 때 함께 찡한 마음을 느끼며 '답례'하는 셈이다.

국문학자나 사회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이런 인고의 정서들을 '예술'로 승화시켜 서로를 달래는 데 탁월하다. 상황 자체는 암울하지만, 이를 '숭고한 것' 혹은 '재미있는 것'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경험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공유하는 셈이다. '필리버스터'라는 모노드라마도 관객들에게 많은 공간을 내어주는 영화다.

그 공간을 채우는 건 시민의 몫이다. 필자는 '필리버스터' 열광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등장인물들이 시민들에게 정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많은 시민이 '정치'에 대해 성찰하는 게 이렇게 '흥미로운' 건지 몰랐다고 증언을 하기 때문이다. 헤겔이라는 철학자의 말처럼, 욕구가 새로운 관습이 흥하는 걸 돕기도 하지만 새로운 관습이 그동안 잠재됐던 또 다른 욕구를 성숙시킨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독자들도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아무리 길어도 3월 10일까지만 상영한다. "머잖아 축제는 끝나고, 마지막 무대의 커튼은 내려가고, 다시 검은 양복을 입은 정치인들이 본 회의장을 잠식하고, 천장에 매달린 현실의 조명이 밝혀질 것"(이송희일 감독)이다. 그리고 메가폰은 아래와 같은 분이 다시 잡게 될 것이다.

재상영될 '헬조선'이라는 '리얼리즘'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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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헬조선'이라는 영화는, 대기업이 지원하고 새누리당이 제작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감독을 맡은 '국가적 블록버스터'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창조 경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와 같은 카피들에서 직감할 수 있듯, '종교 영화적' 요소와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조금씩 등장하지만 무게중심은 리얼리즘(현실주의) 영화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영화의 주연부터가 우리 같은 하위 99%의 흙수저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이 나날이 피폐해지고 상위 1% 금수저들과 경제불평등이 자꾸 심화되는 것도, 현실과 똑 닮았다. 게다가 '박 감독'은 자꾸 흙수저가 기업을 믿고 뭔가를 양보해야 한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진행하고 싶어 한다. 일자리 쪼개기와 쉬운 해고가 그런 사례다.

그런데도 한국인 40% 남짓은 늘 '헬조선'에 몰입해 있고 박 감독을 좋아한다. 매주 '리얼미터'와 '한국 갤럽'에서 관객 반응을 조사하는데, 결과가 늘 그렇다(믿거나 말거나). 아직 '노력만 하면 뭐든 성공한다'(≒'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고 많이들 믿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노력보다 세습이 점점 더 삶을 결정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장면은 조중동과 방송 같은 '메이저 영화관'들에서는 자주 편집돼 상영된다.

사실 '필리버스터'도 '헬조선'에 질린 사람들이 만든 '반짝 영화'다. 필자도 '필리버스터'를 좋아한다. 그래서 최대 내달 10일까지만 <오마이뉴스>, <경향신문>, <한겨레> 등과 같은 '비주류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게 아쉬워, 총선을 연기하더라도 상영을 밀고 나가자고 글까지 썼다(관련 기사: 필리버스터, 총선 연기하고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필자가 계속 상영을 주장하는 건, 이 영화가 시민들의 삶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해서가 아니다.

필자는 이 영화가 붙인 불씨가 시민들에 의해서 들불로 지속될 계기가 있을지 좀 걱정스럽다. 3월 10일이 지나면, 바로 영화시장 대부분을 잠식한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을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킬 것이다.

'민중총궐기' 시리즈와, 유령처럼 사라지는 광장의 시민들

필자는 '필리버스터'를 '제작'한 더불어민주당에서, 지난 27일 제작 시기가 겹친 독립영화 '민중총궐기'에 카메오(특별 출연)를 파견하기를 내심 기대했다. '필리버스터'만 흥행할 게 아니라, 독립영화들이 조직될 수 있도록 시간을 끌고 '함께 사는' 그림이 나오길 기대했다. 가령 '헬조선'이 다시 영화판을 잠식하기 전, 은수미 의원 정도라도 '민중총궐기' 제작 현장에 보냈다면 시민들이 많이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 점과, 아직 토론과 풀뿌리 민주주의에 덜 익숙한 시민들이 주권을 행사할 길이 '투표'로만 제한되는 게 아닌지 아쉽다. 독자들도 아시다시피 '민중총궐기'는 지난해 11월 14일부터 최근까지 총 4편이 나온 민중영화이며, 1편부터 흥행을 발목 잡힌 흑역사가 있다. 메이저 영화관들의 '악마의 편집'이 문제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3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결사의 자유 침해에 항의하는 뜻으로 홀로그램을 활용한 유령집회를 열었다. 광화문앞에 설치된 가로 10미터, 세로 3미터 홀로그램 스크린에 등장한 참가자들은 집회 및 행진 대열을 하며 "평화시위 보장하라" "우리는 불법이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스크린에 등장한 김희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서 있는 이곳부터 청와대까지 집회를 할 수 없는 금지 구역이 되어 버렸다"며 "교통불편을 이유로 집회가 금지된 이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고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가 가능한 건 우리와 같은 유령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3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회결사의 자유 침해에 항의하는 뜻으로 홀로그램을 활용한 유령집회를 열었다. 광화문앞에 설치된 가로 10미터, 세로 3미터 홀로그램 스크린에 등장한 참가자들은 집회 및 행진 대열을 하며 "평화시위 보장하라" "우리는 불법이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스크린에 등장한 김희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서 있는 이곳부터 청와대까지 집회를 할 수 없는 금지 구역이 되어 버렸다"며 "교통불편을 이유로 집회가 금지된 이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고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가 가능한 건 우리와 같은 유령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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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영화관'(언론)들은 '민중총궐기'를 '폭력 대 평화'의 구도로 왜곡했고, 일부 액션적 요소를 과장해 상영했다. 그 결과 운동권들의 '도덕적 분노'와 다른 정서를 지닌 젊은층의(반면 '필리버스터' 관객층은 주로 10~40대다) 거부감을 조장했다(영화의 본질이 '폭력'이 아닌데도). 하지만 영화 제작 현장에 실제로 가보면, 일부 집회참가자와 경찰 '모두' 폭력을 사용한다. 오히려 단일한 명령체계와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경찰이 훨씬 강하다.

메이저 영화관들은 경찰의 폭력은 늘 '합법'이니 문제없고, 참가자들의 폭력은 늘 '불법'이고 '변질'이라는 식으로 상영한다. 그런데 잠깐, '합법'이라니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필리버스터'에 등장한 테러방지법도 '합법'이 되길 추구한다. 국정원이 '테러의심인물'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증거도 없이 시민의 통신 이용 내역 등을 '일단' 털어보겠다는 거다. 통과돼도 인권침해가 가능한 악법이다.

누군가는 '악법도 법'이라고 하겠지만, 이는 소크라테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그때는 한 도시국가가 내 사상과 맞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쉽게 떠날 수 있었다. 섬이나 다름없는 헬조선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가 '시민 불복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론의 십자포화를 많이 맞고 주눅이 든 탓인지 '민중총궐기' 2~4편은, 1편보다 민중들이 '분노'하는 장면과 '액션적 요소들'이 많이 약화되고 편집됐다.

'정권 심판'이란 말과 '정권 퇴진'이란 말 중 어떤 카피를 쓰느냐를 놓고도, 민중영화의 선명성을 따지는 운동권들은 크게 실망했다. 필자는 이 운동권 마니아층들이 민중의 보편적 이해(계급과 불평등 문제)를 대변하고 싶은 욕망과, 착취적 경제구조에 '도덕적 분노'를 느낀다는 걸 잘 안다. 한편 '필리버스터'에 열광하는 청년들이 따뜻한 정(情)과 가슴 깊은 한(恨)을 품고 있다는 걸 잘 안다.

또한 운동권들이 운동 조직 노하우를 지녔고, '덕후' 형제자매들이 패러디물을 연성해내는 능력자들이라는 점을 잘 안다. 단지 서로가 조금 다를 뿐이며, 양측 집단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건 '민중총궐기'와 '필리버스터' 사이에 균열이 보여주듯, 어느 정도 구분되긴 구분된다는 거다. 하지만 사회학자 뒤르켐에 따르면, 축제의 성숙은 참가자들의 실질적인 '교류'를 통한 연대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민중총궐기'와 '필리버스터'는 아직 분열적이라는 점에서, 현실로 승화되기에는 아쉬우며 들불이 아닌 불꽃으로 남는다. 아직 뉴스 댓글창에서조차 사람들은 서로를 물어뜯는다. 누군가는 설득도 없이 기호 2번에 투표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청년을 '투표날 놀러 가는' 사람들로 싸잡는다(자해적인 전략이다).

또 누군가는 자기 자식은 주입식 입시경쟁을 시킬 거면서 남의 자식들에게는 왜 '분노'할 줄 모르느냐고 다그친다. 한편 국민의당 대변인은 '필리버스터' 등장인물인 정청래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언제까지 민주화 운동 경력만 가지고 정치할 것인가"라고 말한다.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인 김공회 연구위원은 자신의 SNS에서 이 발언에 대해, "저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말에 동의하는 필자가 두자 덧붙이자면, '다들' 저런 식으로들 말해서는 안 되는 거다. 물론 정 의원의 "새정치를 주장하시던 분들, 1987년 6월 항쟁 때 어디서 무엇을 하셨나?"라는 발언이 요즘 청년들에게 던져졌다면 요즘 말로 '꼰대'스럽게 느껴지고 핀트에 어긋날 수 있다.

하지만 정 의원과 같은 발언이 왜 자꾸 나오고, 또 누구에게 향하는지 국민의당은 잘 생각해야 한다. '1987년 동시대'를 살았지만 별 기여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꼭 모두가 '투사'였을 필요는 없지만) '쉽게 쉽게' 운동권들의 경험을 평가절하하는 게 어이없어서 그러는 게 아닐지 생각해보라는 거다. 게다가 정 의원이 꼭 '운동권 경력만 가지고 정치'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필리버스터'에서 보여줬지 않는가.

결국 '상호 인정'이 기본이다. 투표, 투쟁, 패러디물 연성 그 무엇이든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카를 마르크스)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 구상할 필요가 있다. 영화보다 영화가 끝난 후, '현실'이 더 중요하다. 독자들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다. 영화 끝나면, 이제 뭐하고 놀아야 할까.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를 '함께 쓰는 리뷰'로 작성했습니다. 독자께서 '투표와 투쟁', '패러디 연성', '개드립' 등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태그:#민중총궐기, #헬조선, #필리버스터,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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