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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에 자리잡고 있는 '딜쿠샤' 건물. 70년만에 원형이 복원된다.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에 자리잡고 있는 '딜쿠샤' 건물. 70년만에 원형이 복원된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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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의 초기 모습. 권율 장군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옆에 서있다.
 딜쿠샤의 초기 모습. 권율 장군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옆에 서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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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거리에서는 모든 게 난리였다. 간혹 비명소리와 총소리 그리고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끝없이 반복되는 커다란 외침도 있었는데, '만세, 만세' 소리였다.

앨버트가 침대 옆으로 다가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방은 거의 어두침침한 상태였다. 그는 내게 허리를 구부려 키스한 뒤 익숙치 않은 솜씨로 아기를 안아 올리려 했는데, 그러다 내 침대보 밑에 감취져 있던 종이들이 드러났다. 그는 재빨리 아기를 내려놓더니 글을 읽을 만한 빛이 남아있던 창가로 달려갔다.

그는 '대한제국 독립선언서잖아!'라고 외치며 놀라워했다. 단언컨대 풋내기 통신원으로서, 그는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을 본 것보다 그 문서들을 발견한 데 더 기뻐했다. 바로 그날 밤, 동생 빌이 신발 뒤축에 선언서 복사본과 앨버트가 쓴 기사를 숨겨 서울을 떠나 도쿄로 향했다. 선언서 발행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전에 미국으로 전송하기 위해서였다." (권기봉, 2012, <다시, 서울을 걷다>에서 발췌)

위 글을 쓴 사람은 지난 1919년 당시 미국의 통신사 서울통신원으로 있던 앨버트 테일러의 부인 메리 린리 테일러이다.

그는 마침 3.1운동 바로 전날인 2월 28일 서울역 앞에 있던 세브란스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하던 중이었다. 의식이 몽롱한 가운데 방을 들락날락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간호사가 한 뭉치의 종이뭉치를 들고 있었고, 이내 그것을 자신의 침대보 밑에 밀어넣는 것을 보았다.

이를 발견한 남편 앨버트는 기사로 썼고 그의 동생은 기사를 숨겨 일본으로 건너가 본사에 전송했다. 일제의 강압통치에 짓눌렸던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천명한 3.1독립선언서가 해외로 알려지는 긴박한 순간이다.

앨버트 테일러는 또한 일본군이 3.1운동 가담자 수십 명을 교회에 몰아넣고 죽인 '수원 제암리학살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테일러 부부가 20년 거주... '이상향' '희망의 궁전' 의미

딜쿠샤를 지은 앨버트 테일러.
 딜쿠샤를 지은 앨버트 테일러.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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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독립문사거리에 사직터널 방향으로 가다 터널 위쪽으로 올라가면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이 나무를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 장군이 직접 심었다고 해서 이곳 지명은 지금도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이다.

그 옆에 붉은 벽돌로 지은 서양식 2층 건물이 있다. 이곳이 바로 3.1운동을 해외로 알린 주역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부인 메리 린리 테일러가 거주하던 곳 '딜쿠샤'이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AP통신 통신원을 같이 하던 그와 그의 부인은 1923년 이 터를 사들여 집을 짓고 1942년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딜쿠샤'라는 이름은 부인 메리가 인도여행을 하던 중 발견한 북동부 러크나우의 딜쿠샤궁을 본따서 지은 것으로, '이상향'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의 힌두어다.

이 집의 정체는 최근까지도 오리무중이었다가, 지난 2006년 이들의 아들 부르스가 한국을 방문해서 비로소 앨버트의 집이었던 사실과 '딜쿠샤'의 의미가 확인됐다.

지난 2006년 브루스 테일러가 방문해 기증한 1919년 고종 인산 행렬 사진. 그의 아버지 앨버트 테일러가 찍은 것이다.
 지난 2006년 브루스 테일러가 방문해 기증한 1919년 고종 인산 행렬 사진. 그의 아버지 앨버트 테일러가 찍은 것이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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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 방한 계획... 할아버지 유품 3백여점 기증

이런 유서 깊은 집이 지금은 무단 거주자들이 사는 낡은 건물로 전락했다. 건물이 오래 됐기도 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 판정을 받았다.

서울시는 26일 지어진 지 70년 만에 딜쿠샤를 원형 복원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오는 2019년 시민에게 전면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이 건물의 현재 관리관청인 기획재정부와 문화재청, 종로구와는 이날 '딜쿠샤의 보존·관리·활용을 위한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에 따르면, 딜쿠샤는 국가 등록문화재로 등록돼 영구 보존된다. 역사적, 건축사적 보존가치가 커 지난 2001년부터 국가 등록문화재 등록이 검토돼왔지만 그간 무단점유 문제 해결이 안 돼 난항을 겪어왔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한편 오는 3월 1일을 전후해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인 제니퍼 테일러가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는 조부모와 부친가 살던 딜쿠샤를 둘러보고, 증조부와 조부(앨버트)가 잠들어있는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회국인묘역'을 방문한다.

앨버트는 일제에 의해 추방된 뒤 1948년 6월 미국에서 사망했으나, 생전에 "내가 한국이 아닌 곳에서 죽게 되면 재라도 꼭 가져다 묻어달라"고 말해, 그의 부인이 남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군 군함에 유골을 싣고 돌아와 양화진에 묻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오는 2일은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아 의복, 문서, 편지류 등 테일러 부부의 유품과 부부가 서울에서 생활하던 당시 수집했던 소장품 일체(349점)를 기증할 계획이다.

부부의 아들 부르스도 지난 2006년 방한 때 고종 인산일 사진과 1920년대 서울 파노라마 사진 등 앨버트가 소장하던 일제 강점기 당시 서울의 중요한 사진자료를 기증했다.

이번 기증 유물 중에는 테일러 부부가 딜쿠샤에 거주할 당시 건물 내외부를 촬영한 사진들이 포함돼있어 딜쿠샤 복원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시는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곳에 현재 12세대 23명이 무단거주하고 있으나 다수가 장애인 등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인 만큼 법과 제도가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배려한다는 기본방향 아래 향후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통해 문제를 조기 해결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수정 서울시 문화재연구팀장은 "당신 AP통신 기사를 받아 게재했던 <뉴욕타임스> 기사들을 보면 앨버트 테일러가 일본편에 서서 보도하던 다른 기자들에 맞서 한국의 사정을 알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태그:#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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