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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핵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일까? 1차적 배경은 1991년까지 존재한 주한미군 전술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의 안보우산이었던 북-중-러 북방삼각동맹이 사실상 붕괴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남한이 러시아(1990년)-중국(1992년)과 수교함에 따라 냉전시기의 북방삼각동맹이 깨진 반면, 북한은 자국이 추진했던 북-일, 북-미 수교협상이 실패함에 따라 독자 생존을 위해 핵무기 보유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배경은 동구권의 몰락과 외교적 고립으로 인한 경제난, 중-러 안보우산의 상실 같은 복합적 요인들이 중첩돼 있지만, 결국 핵심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이 시기에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적대적인 안보환경을 변화시키고자 외교적 노력을 병행했다. 북한은 북미 대화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폐기를 통한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와 북미 수교를 요구했으며, 그 결과로 '북미 공동성명'(1993)과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문'(1994), '국제테러에 관한 북미 공동성명'(2000), '북미 공동코뮤니케'(2000) 등에 잇달아 합의했다.

북한은 특히 '국제테러 공동성명'에서 모든 국가와 개인에 대한 테러행위에 대해 반대할 것임을 공식 표명하고 테러 관련한 유엔협약 등의 가입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등장으로 북미관계는 수교 문턱에서 멈춰 섰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클린턴을 계승한 엘 고어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섰으면 북미 수교까지 갔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MAD(상호확증파괴)에서 NPR(핵태세검토)로

2001년 9.11테러 이후 부시 정부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 선제공격 독트린'을 담은 '핵태세보고서 2001'(NPR 2001)을 발표했다. 이에 북한은 반발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서둘렀다. 4년의 허송 세월 끝에 부시 2기 행정부는 2005년 9월 4차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북미 수교, 동북아 다자안보체제의 구축을 교환하는 내용의 '9.19공동성명'을 체결했다. 그러나 미국은 공동성명과는 별도로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관련계좌 동결조치를 병행했고, 북한은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은 미국과 BDA 문제를 줄다리기한 끝에 2007년 2.13합의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나왔으나, 2008년 8월 김정일의 건강악화 이후 핵개발을 협상-보유 양면카드에서 보유 쪽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노선 변화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2009년 1월 김정은 3대 세습체제를 내부적으로 결정한 뒤, 핵무기 개발과 이를 운반할 장거리로켓의 개발에 한층 박차를 가해왔다는 것이 조성렬 박사(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등 많은 전문가의 시각이다.

인류가 첫 핵실험을 한 해는 1945년이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현재 전세계 추정 핵무기는 15,800여 기로 미국-러시아가 전체의 93%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작전 배치된 핵무기는 4,500여 기로 추정된다. 그보다 더 많은 핵무기들이 그동안 감축되거나 해체되었다. 결과적으로 인류가 만든 수만 개의 핵무기 중에서 실전에 사용된 것은 '리틀 보이'와 '팻 맨', 두 개뿐이었다. 전자는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우라늄탄이고, 후자는 사흘 뒤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플루토늄탄이다.

 냉전 시기 핵억지력으로 작동해온 상호확증파괴 (MAD)는 너 죽고 나 죽자?
 냉전 시기 핵억지력으로 작동해온 상호확증파괴 (MAD)는 너 죽고 나 죽자?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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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의 가공(可恐)할 위협을 감안하면 '뿐'이라는 조사는 부적절하다. 하지만 지난 70년 동안 생산-배치된 수만 기의 핵무기 중에서 실전에 사용된 것이 2기뿐인 까닭은 'MAD' 덕분이었다. 미-소 양극체제 하에서 상대방에게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너 죽고 나 죽자"는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냉전 시기에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유지하는 억지력으로 작동되어온 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상호확증파괴)는 UAD(Unilateral Assured Destruction, 일방적확증파괴)로 바뀌었다. 계기는 2001년 9.11테러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NPR(Nuclear Posture Review, 핵태세검토)이다.

냉전 시기 미국과 구소련은 전략폭격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핵잠수함으로 구성된 '핵 3원체제(Nuclear Triad)'로 핵억지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9.11테러는 상호확증파괴에 의한 보복 억지전략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죽으려고 달려드는 놈한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자살을 무릅쓴 핵테러리즘으로부터 본토를 방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핵전략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기존의 Triad를 대체하는 New Triad(핵무기와 비핵무기 및 방어무기체계의 '새로운 조합')로 공격적 타격시스템을 구축하고 선제적 핵공격 의지를 명문화한 미 국방부의 NPR 보고서가 나온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선제 핵공격 대상국

2002년 1월 미 국방부가 의회에 보고했다가 언론에 공개된 NPR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방부는 유사시 핵무기 사용대상국으로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중국 외에도 당시 부시 대통령이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이라며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 5개국을 지목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잠재적 핵공격 대상국을 늘렸을 뿐 아니라, ▲ 지하군사시설에 대한 공격 ▲ 상대방의 핵-생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보복 ▲ 돌발적인 군사사태 등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상황을 종전보다 훨씬 더 폭넓게 상정했다.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 쓰기 위해 적합한 소형 특수핵무기를 새로 개발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미국은 이 5인의 악당 국가 가운데 이라크에 이어 리비아, 시리아를 무력으로 침공했고, 이란과는 강온 양면으로 핵협상을 타결지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2010년 4월에 발표한 '핵태세보고서 2010'(NPR 2010)에 따르면, 북한은 여전히 핵무기 선제공격 대상국이다.

오바마는 NPT 탈퇴국가 및 위반국가에 대해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제외한다는 '제한적 핵선제공격 독트린'을 유지했다.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하면, 현재 미국의 핵선제공격 대상국은 북한뿐이라는 얘기다. 이에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각종 핵무기를 필요한 만큼 늘리고 현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핵보유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표] 세계 핵무기 보유 현황
 [표] 세계 핵무기 보유 현황(2016년 기준)

그러나 <CIA팩트북> 등을 참조해 작성한 CNN의 '세계 핵보유 현황'([표] 참조)에서 보듯, 북한의 추정 보유핵무기는 10기 미만이고, 작전 배치된 핵무기는 없다. 아직은 탄두의 경량화-소형화에 이르지 못했고 핵폭탄의 폭발력 조절 능력도 없는 원시적 핵무기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선제 타격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만, 그것은 곧 미국의 일방적확증파괴에 의한 북한의 '절멸'을 의미한다. 김정은이 아무리 무모하고 천지 분간을 못해도 미국과 핵무기로 싸우면 절멸뿐이라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북한은 "미제를 위시한 제국주의자들은 이 나라들(이라크, 리비아)에 대량파괴무기가 없음을 확인하자 마음 놓고 침략하였다"면서 자위권 차원의 핵무기 보유노선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 핵문제는 94년 6월 1차 북핵 위기 이후 이미 20년이 넘게 반복된 일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한과의 전면전을 각오하고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surgical strike)을 계획했다. 당시 미 국무부 수석통역 김동현(미국명 Tong Kim)의 <신동아> 기고문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대사는 가족까지 피신시킬 만큼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 대사는 워싱턴의 승인을 받기 전에 한국에 와 있던 군인 가족들과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하고, 서울을 방문 중이던 딸과 손자들을 서둘러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전쟁 시나리오에서 미군은 5만 명 이상, 한국군은 수십만 명, 일반 시민은 100여만 명이 희생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일단 전쟁이 나면 김정일 정권을 제거한다는 것이 최종목표로 설정됐다. 이 목표는 현재의 작전계획에도 반영돼 있다. 필자는 이러한 작전계획 목표가 전투력 못지않게 억제효과를 갖는다고 생각한다."(한미정상회담 통역 27년, 김동현씨가 본 '굴곡의 한미동맹', 신동아, 2005년 9월호)

클린턴 "한반도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운전대 잡아달라"

 1998년 6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1998년 6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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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북핵 위기는 카터의 중재와 뜻하지 않은 김일성의 남북정상회담 제의로 봄눈 녹듯 해소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정상회담은 무산되었다. 대북정책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며 클린턴의 갈피를 못잡게 했던 김영삼이 물러나고 오랫동안 분단문제를 고심해온 전략가 김대중이 등장했다.

김대중은 98년 6월 미국을 처음으로 국빈 방문했다. 클린턴은 김대중을 남아공의 만델라, 체코의 하벨 등과 함께 이 시대의 '자유의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예우하면서 대북정책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김대중은 신명난 어조로 30분간 자신이 평생 갈고 닦은 '햇볕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조율한 임동원 외교안보수석에 따르면, 클린턴은 진지하게 경청하며 적극적인 찬동을 표시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김 대통령의 비중과 경륜을 볼 때 이제 한반도 문제는 김 대통령이 주도해주기 바란다. 김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로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다."(임동원, <피스메이커 :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 2008)

한국 대통령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더불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시각도 붕괴론에서 변화론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98년 11월 18일 밤 축포가 쏟아지는 가운데 정주영 명예회장을 포함해 826명의 관광객을 태운 금강산관광선이 동해항을 출발했다.

한국을 답방한 클린턴은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두번째 관광선이 출항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는 이튿날 한미 정상회담 공동회견에서 "어젯밤 축제 분위기 속에서 관광객을 가득 태우고 출항하는 평화스런 장면을 보고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며 "매우 신기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남북 화해협력의 현장을 목격한 미국 대통령의 이 발언은 한반도 위기를 외치는 강경파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코리아 리스크'로 투자를 꺼리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클린턴이 김대중에게 '핸들'을 맡긴 결과였다. 2년 뒤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도 김대중이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잡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박근혜의 애국가, 4절까지 부른다고 애국자는 아니다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취임 초기부터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함으로써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또한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 탓에 불가피한 측면은 있었지만, 이라크전 파병과 한미 FTA 같은 중대 사안에서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모습을 보여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허송 세월 끝에 성사시킨 2차 남북정상회담은 멈춰선 남북관계를 추진할 동력을 확보하기에는 너무 늦게 개최되었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은 되지도 않을 '비핵개방3000'을 내세워 5년을 허송 세월로 보냈다. 이명박도 첫 미국 방문 때 부시와 함께 차를 타면서 운전대를 잡기는 했다. 그런데 부시가 내어준 것은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는 차가 아니라 쇠고기 수입을 약속한 대가로 태워준 '골프카' 운전대였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던 그가 한 것은 금강산관광 중단에 이어,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경협을 중단시킨 5.24 제재조치뿐이었다.

 내가 운전하겠다. I drive
    (캠프 데이비드=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미 대통령 공식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 조지 부시 대통령을 옆자리에 태운 채 골프 카트를 운전해 이동하고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f6464
    scoop@yna.co.kr
(끝)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4월 18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미 대통령 공식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 조지 부시 대통령을 옆자리에 태운 채 골프 카트를 운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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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표방하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만에 '통일대박론'으로 국민을 들뜨게 하더니 집권 3년만에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켜, 정부를 믿고 투자한 기업인들을 하루아침에 '쪽박신세'로 만들었다. 운전에 비유하면 깜박이도 켜지 않고 차를 모는 난폭하기 짝이 없는 '후진' 운전이다. 전임 대통령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전략적 인내'로 깔아놓은 남북관계의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범법운전이다.

청와대는 최근 박 대통령의 취임 3년을 기념해 3년 동안의 연설문과 회의속기록 등 공개발언 1,342건을 바탕으로 빅데이터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국민'(5029회), '경제'(4203회), '대한민국'(4012회)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는 특히 "국민과 대한민국이 주로 관용적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 관련어 사용이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친절한 해설을 덧붙였다.

그러나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고 해서 애국자인 것 아니다. 그렇게 경제를 외쳤지만, 집권 1년차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위기관리의 무능으로 경제도 실패했다. 집권 2년차는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가방역관리의 무능함으로 역시 경제도 실패했다. 그리고 집권 3년 차는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분단관리의 무능함으로 경제 실패를 예고했다. 세월호나 메르스와 달리 분단관리의 실패는 전쟁으로 발발하기 십상이다.

'막장 드라마' 박근혜, 불복종과 탄핵밖에 답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16.2.24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16.2.2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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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통과 노래를 불러온 황교안 총리가 정작 자신이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인줄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 김광진 의원의 송곳질의에서 밝혀진 것도 애국가와 애국자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필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를 줄 알아야 애국자'라고 믿는 매우 단순한 사람인 것 같다. 요즘 박근혜의 얼굴을 보면, 30여년 전에 '전라도 출신 대학 재학생=데모 학생'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신병들을 구타한 고참의 얼굴과 중첩된다.

박근혜는 최근 국무회의에서 '코리아 리스크' 언급하며 국회를 윽박질렀다. '코리아 리스크'는 자신이 개성공단을 중단시킨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사회가 불안하고 어디서 테러가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제가 또 발전할 수 있겠나"라고 국회를 겁박하고, 야당이 국회법에 보장된 필리버스터를 활용한 것에 대해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대중과 샌더스도 했고, 새누리당도 공약한 필리버스터를 '기가 막힌 현상'이라니 이쯤 되면 국정이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이다.

'배신'은 막장 드라마 핵심 코드 중의 하나이다. 연인의 배신, 가족의 배신, 친구의 배신 등등. 박근혜는 지금 한반도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북한과 중국, 그리고 국회(야당)의 '배신'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서 '김정은 참수작전'과 사드(THAAD), 그리고 국민의 응징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냐"고 국회에 호통을 친다. 박 대통령이야말로 도대체 전쟁이 터져 얼마나 않은 국민이 죽어야 퇴로 없는 강경몰이를 그만둘 것인지 되묻고 싶다.

남은 2년간 더는 나라가 거덜나지 않고, 이 땅의 청년들이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게 하려면 지금이라도 국민이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수밖에 없다. 임기도 반환점을 지난 지 오래다. 그동안 박정희 성역화와 새마을운동 국제화,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까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운전대를 놓아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국민의 불복종과 탄핵밖에는 답이 없다는 얘기다. 탄핵할 사유는 차고 넘친다.

우선 비상사태나 긴급한 사유가 없음에도 명백하게 사유재산을 침해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한 헌법을 위반했다. 대통령의 중요한 책무인 분단 관리에 실패해 '코리아 리스크'를 조장하고 국민을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3~4월에는 한미 키 리졸브-독수리훈련이 예정되어 있어 안보위기와 군사적 긴장 속에서 총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이 또한 민주적 헌정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탄핵 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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