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26일 오후 2시 10분]

 지난 2013년 11월 런던한국영화제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지난 2013년 11월 런던한국영화제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 에피소드 1 : 2013년 런던한국영화제

지난 2013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7회 런던한국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하려고 했던 영화는 <관상>이었다. 하지만 <관상>의 초청이 취소되면서 개막작은 <숨바꼭질>로 바뀌었다. 런던한국영화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지원하는 행사로, 당시 개막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와 관련해 한 영화제작자는 "<관상>과 <설국열차>를 개막작으로 하려고 했으나 청와대의 반대로 내가 만든 영화를 개막작으로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었다"며 "마치 다른 영화는 문제고 내 영화는 크게 문제없다는 식으로 들려서 (기분이 안좋아) 거절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영화계에서는 정부 측의 <관상>의 보이콧에 대해 여러가지 설왕설래가 오갔다. 권력을 비판하는 작품 내용 때문이라는 설도 있었고, <변호인> 출연배우 송강호 주연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영화계의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속사정을 밝혔다. 그가 말한 <관상>의 개막 좌절 이유는 이랬다.

"윗쪽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설립한) '아름다운재단'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런데 <관상> 제작사가 수익의 일부를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한다고 한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

제작사 주피터필름은 영화 개봉 전이었던 2012년에 수익이 날 경우 50%를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기로 약속했고, 흥행몰이가 진행되고 있던 2013년 9월 이를 공개한 바 있다.

# 에피소드 2 : 같은 해 한-스위스 수교 50주년 영화제

2013년 스위스에서 개최된 한-스위스 수교 50주년 영화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개막작으로 제주 4.3 항쟁을 소재로 한 오멸 감독의 <지슬>이 선정됐는데, 한국대사관 측에서 반대했다는 것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당시 행사 준비를 하고 계신 분들로부터 '대사관에서 <지슬>을 상영하지 말라고 한다'는 연락이 왔었다"면서 "결국 대사관 및 한국기업의 스폰서 지원이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이에 격분한 스위스 영화인들이 한국기업 스폰서를 다 빼고 자체적으로 돈을 모아 행사를 개최했다"고 전했다.

위 두 사례는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지만 매우 상징적이다. 박근혜 정권 3년, 영화계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표현의 자유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 시작된 소위 '영화계 좌파척결' 기조가 박근혜 정권으로까지 그대로 이어지며 더욱 옥죄는 형국이다.

3년간

 지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지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 재임 첫해였던 2013년 국내에서는 <천안함 프로젝트>가 개봉 3일 만에 대기업 상영관에서 내려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전례가 없는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한번 나쁜 전례가 세워지자 자꾸 반복됐다. 2015년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소수의견>도 비슷한 예다. 2년 만의 개봉, 평단의 호평과 관객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상영관들이 스크린 배정에 인색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대기업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과정에서 흥행을 인위적으로 막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을 중단하라는 서병수 부산시장의 요구를 부산영화제가 거부하면서 촉발된 논란은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압박-영진위의 지원금 축소-감사원의 감사-검찰 고발' 순으로 이어지며 햇수로 3년 째 영화계와 대치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부산시와 부산영화제의 대립이지만, 엄밀하게 말해 현 정권과 영화계 전체의 대치전선으로 영화인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13년 부산영화제를 방문했을 당시 이용관 집행위원장 등에게 "영화제를 잘 지켜달라"고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어려움을 암시했던 것일까? <다이빙벨> 상영을 막으려 했던 서병수 부산시장은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서 시장은 지난해 이용관 집행위원장 퇴진을 압박해 논란을 일으켰다가 이후 영화인들과 갈등을 봉합하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최근 같은 행동을 되풀이 하면서 영화계와 완전히 등진 상황이다. 영화계는 서 시장의 무리한 행동에 대해 윗선의 지침 또는 최소한 교감이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와 영상물등급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 등 영화 관련 기관장들에는 영화계에서 환영받지 못한 인사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내려앉았다. 한국영상자료원장은 사진기자 출신이 선임돼 일부 원로 영화인들로부터 이름을 '영화자료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영진위원으로 임명된 인사들 역시 다수가 영화계의 신뢰를 얻지 못한 인물들로 채워졌다. 영진위 사무국장을 영화와 관련 없는, 대선 때 기여했던 인사가 맡고 있는 것 역시 영화계를 대하는 박근혜 정권의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그쪽에서 정권 잡아서 지원하면 될 일"?... 문화에 편을 가르다

 지난해 11월 폐관한 독립예술영화관 씨네코드 선재

지난해 11월 폐관한 독립예술영화관 씨네코드 선재 ⓒ 성하훈


가장 극적인 변화는 독립예술영화관에서 일어났다. 정권이 불편해하는 영화들을 외면하고 있는 대기업 상영관들과는 달리 독립예술영화관들은 그동안 게의치 않고 활발히 상영해왔다. 그 결과는 돈 줄의 차단이다. 최근 2년 동안 거제아트시네마, 서울 북촌의 씨네코드 선재가 폐관했고,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휴관을 결정했다. 서울의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 역시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예측"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다이빙벨>을 독립예술영화관들에서 개봉하자 '정부가 지원을 해주는 극장인데, 왜 (개봉을) 못 막지 못하냐'는 인식이 생기면서 지원제도가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도 '정부 지원을 받는 극장들이 정부에 반대하는 영화를 상영하면 되는가'라는 생각이겠지만, 그건 정부의 돈이 아니라 공적기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기자와 만난 정부의 한 관계자는 영화계의 인식과 차이가 없는 답변을 내놨다. 그는 "그간 지원을 했더라도, 정부 비판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지원금을 계속 줄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공적기금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식이면 그쪽에서 정권을 잡아서 지원하면 될 일이다, 현 집권 세력이 진보 정권 당시에 영화를 상영해달라고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던 영화 관련 공약은 '독립예술영화전용관 확대'였다. 하지만 지난 3년간 벌어진 모습은 확대는 커녕 기존에 존재하던 표현의 자유까지 위협하는 모습이다. 한 원로감독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시절 한국영화가 검열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보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가만히 놔둬도 될 영화들을 괜히 건드려 표현과 상영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영화 박근혜 부산영화제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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