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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피라이터 정철
 카피라이터 정철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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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

지난 1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표의 인재영입 기자회견장에 걸린 슬로건이다. 카피라이터 정철(55)의 작품이다. 정철은 이 슬로건과 함께 표창원 등 10명의 영입인사 카피를 쓰고 '더불어 콘퍼런스'를 도왔다. '노무현-문재인 카피라이터'로 불리는 정철, 그는 '대통령 노무현'과 '대선 후보·야당 대표 문재인'보다 '사람 노무현'과 '사람 문재인'을 좋아해서 따랐다고 한다. 꿈꾸는 세상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이다.

정철의 카피를 빛내준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2008년 봄, 광우병 파동으로 촛불 행진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오늘의 촛불' 시리즈를 5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연재하면서 '촛불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해 여름엔 촛불 시민과 예스24 블로거 63명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줘서 <경향신문>에 '촛불 응원 돌출' 광고를 했다.

첫 번째 광고는 면봉 이미지와 함께 '청와대 주소를 알려 주시면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는 문구를 담은 카피였다. 국민의 소리를 외면한 청와대에 대한 일침이었다.

2009년 1월에는 용산참사 추모와 애도의 카피를 썼다. '나는 죽었습니다'는 제목의 카피가 용산 참사 현장에 붙으면서 유족과 시민들을 울렸다. 그해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그 날 봉하로 내려가면서 '나는 개새끼입니다'라는 글을 썼다.

"당신이 생을 놓아버릴 아픈 결심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새벽까지 술에 취해 낄낄대고 있었습니다./ 나는 개새끼입니다./ (중략) 당신이 검찰에게 치욕적인 수모를 당하고 있을 때/ 나는 검찰 욕 몇 마디 하는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나는 개새끼입니다./ (중략) 미안합니다."

이 카피에 많은 이들이 가슴을 쳤다.

 정철의 작품 '세월호 시력표'
 정철의 작품 '세월호 시력표'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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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에는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슬로건을 썼다. '5월은 노무현입니다', 매년 5월이면 우리 곁을 찾아오는 카피다.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투쟁이 본격화되던 2011년 5월엔 '반값습니다'란 카피를 만들어주었다. 2012년에 문재인 카피라이터로 활약했다. 짐을 싸 들고 부산에 내려간 정철은 '바람이 다르다'라는 카피로 시작해 꼬박 1년을 문재인과 함께하면서 대선 포스터 '사람이 먼저다' 등의 카피를 썼다.

2015년 4월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세월호 시력표'라는 제목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 포스터는 빌딩 벽에 부착돼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겨울,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정국이 뜨거워지자 '21세기 분서갱유' 카피 시리즈를 만들었다. 진실이 침몰한 시대와 퇴행하는 역사 앞에서 카피라이터의 펜은 비루한 세상을 촌철 살인했다. 양심도 상식도 도리도 녹슬어버린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정철의 카피는 첫 술잔처럼 짜릿하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분서갱유'로 빗댄 정철 카피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분서갱유'로 빗댄 정철 카피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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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지기로서 정철이 행한 지난 몇 년을 되짚어 봤다. '돈과 권력' 대신 '사람과 정의'를 선택한 그의 길이 새삼 귀하다. 그는 30년 카피라이터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썼다는 카피라이팅 책을 최근에 출간했다. <카피책>(허밍버드)이란 제목의 책이다. 이를 구실 삼아 정철의 카피 인생에 대해 이메일과 카톡, 대화로 주고받았다.

"<카피책>은 카피라이터로 살아온 30년의 압축"

 정철 <카피책> 표지사진
 정철 <카피책> 표지사진
ⓒ 허밍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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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의 카피는 어떤 색인가.
"카피라이터는 카피 색깔이 있어선 안 된다. 의뢰받은 제품과 타깃에 맞는 카피를 찾아내야 한다. 하루에도 색깔을 수십 번 바꾸는 직업인이 카피라이터다. 다만 나는 제품보다 사람에 초점을 더 맞추는 카피라이터라고 할 수는 있겠다. 제품과 시장이 허락한다면 '사람 냄새' 나는 카피를 쓰려고 애쓴다. 그런 카피를 자주 써서 그런지 따뜻한 카피에 상대적으로 자신이 있다. 가장 힘 있는, 가장 재미있는, 가장 울림이 큰 카피는 늘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람이 먼저다."

- <카피책>이란 책을 냈다.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카피라이터로 살아온 30년의 압축이다. 카피라이터로 살 만큼 살았으니 카피를 바라보는 개똥철학도 생겼을 것이고 카피 쓰는 요령도 조금은 쌓였을 것이다. 별 대단할 것도 없는 것들이겠지만 이제 그것들을 풀어놓는다. 창피해서 나 혼자 감춰두고 보던 것을 '에라, 모르겠다' 하고 후배 카피라이터들과 나누는 것이다.

나는 평생 카피 써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책도 살 수 있었다. 카피는 내 인생 가장 고마운 두 글자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바치는 책 한 권은 꼭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했다. 그런데 게을러서 못 썼고 자신이 없어 못 썼다. 그 숙제를 이제 한다. 더 늦으면 영영 못할 것 같아 이제라도 한다. 그래서 기분이 가볍다.

물론 이 책은 광고장이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카피든 에세이든 연애편지든 사람 마음을 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모든 글은 같다고 생각한다. 카피라이터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은 짧은 글로 사람 마음을 얻는 방법이라는 관점 하나만 붙들고 읽어주시면 된다."

- 카피는 접었나? 작가로도 활동하는데, 정철은 카피라이터인가, 작가인가? 어떤 사람인가.
"30년 차 카피라이터. 책 몇 권을 쓴 작가. 광고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선생. 발상 전환에 목마른 사람들 앞에 서는 강사.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내 한 표를 행사하는 시민. '드르륵 드르륵' 연필 깎는 소리를 좋아하고 '쓱쓱 싹싹' 연필과 종이가 만나는 소리를 좋아하는 아날로그 사람.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MBC애드컴 카피라이터, 단국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겸임교수, 서울카피라이터즈클럽 부회장을 지냈다. 지금은 '정철 카피' 대표. 그리고 <내 머리 사용법>, <한 글자>, <불법사전>, <머리를 9하라>, <인생의 목적어> 등의 책을 썼다.

이번 <카피책> 날개에 붙은 내 소개다. 지난 6~7년간 꽤 많은 에세이를 썼다.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로 산다. 카피라이터는 남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사람이다. 내 이야기가 마려워 작가 활동을 시작했는데 운이 좋아 지금도 책을 낸다."

"문재인은 원칙을 지키는 가슴 따뜻한 사람"

 문재인의 추천사를 검사하는 정철 카피.
 문재인의 추천사를 검사하는 정철 카피.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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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당시 후보 선거대책본부 홍보기획본부장을 맡았다. 총선에선 '문재인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다. 가까이서 본 인간 문재인은 어떤 사람인가.
"문재인 이야기 하나만 하겠다. 2012년 2월 문재인 후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나이였다. 총선 출마 선언을 하고 하루 스물네 시간을 잘게 쪼개며 그 많은 일정을 다 소화하고 있었다. 초짜 정치인이라 쉽지 않았을 텐데 이를 이겨내는 것을 보면서 특전사 출신이 맞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문재인 후보를 도우려고 부산에 내려가 있었다. 새 책 출간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에게 추천사를 부탁드리자는 얘기가 있었다. 나는 '도저히 부탁을 드릴 수 없다'고 했다. 그가 허접한 책이나 읽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자 출판사에서 문 후보에게 간곡한 메일을 보냈고 그는 이를 선뜻 수락해 버렸다.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쯤 주시려나? 내일쯤 주시려나?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독촉할 수도 없어서 무작정 기다렸다. 그러던 중 설 연휴를 맞았고 나는 설을 쇠러 서울 집에 갔다 왔다. 연휴 다음날, 문 후보가 어색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을 가만히 내밀었다. 구식 편지지에 육필로 쓴 추천사였다.

설 연휴 동안 짬을 내서 추천사를 쓴 것이다. 그리고 그 추천사가 과연 제 마음에 들지 자신 없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장면을 누군가 포착해 찍은 사진이 제공한 사진이다. 사진을 다시 보니 문 후보가 쓴 추천사를 내가 검사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는 숙제 검사받는 학생의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 그 원고 다 읽었어요."

깜짝 놀랐다. 설 연휴 동안 원고를 다 읽은 것이다. 나도 추천사를 쓴 적이 있지만 원고를 완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충 훑어보고 전체 내용을 감으로 때려잡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원고를 다 읽지도 않고 어떻게 추천사를 쓰느냐'고 반문했다. 내 얼굴은 빨개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가슴은 따뜻하지만 원칙은 정확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그때 받은 육필 추천사를 지갑 속에 잘 보관하고 있다.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를 지갑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노무현 카피라이터의 '5월은 노무현입니다'
 노무현 카피라이터의 '5월은 노무현입니다'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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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카피를 쓴 계기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가 지지하는 정치와 정치인을 응원하고 싶었다. 시작은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내 인생을 간섭했다. '당신 지금처럼 계속 살 겁니까?'라고 물었다. 대답해야 했다. 내 대답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카피로, 광고로 그를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재인으로 이어졌다. 사람 중심의 카피는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가치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금도 선택해야 할 두 갈래 길을 만나면 '노무현이라면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안개가 걷히듯 내가 선택해야 할 길이 보인다."

- 국민을 기만하는 플래카드가 난무한다. 국민의 환심을 사는 카피에선 새누리당이 더불어민주당을 앞서는 것 같다.
"'새누리스러운' 캠페인이 반복된다면 얼마 후엔 믿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카피로 잠깐 눈속임을 할 순 있지만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 이번 총선에서 어떤 카피가 먹혀들까?
"경제다. 무조건 경제다. '더불어 경제'도 좋은 슬로건이다.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간다면 좋은 캠페인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 지갑을 채워주는' 같은."

- 술과 사람을 참 좋아한다. 어떻게 살 계획인가.
"술과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특별할 것 없이 남들 좋아하는 만큼 좋아한다. 향후 계획은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막 산다. 끌리는 대로 산다. 앞으로도 그렇게 막 살 것이다. 다만 욕심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1년에 한 권씩 책을 쓰고 싶다."

술잔 권하는 카피라이터의 무사 귀환

 지난 1월 27일 정철, 이지상, 김진석, 조호진의 4인 4색 북콘서트 '작당' 포스터.
 지난 1월 27일 정철, 이지상, 김진석, 조호진의 4인 4색 북콘서트 '작당' 포스터.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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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은 문재인 카피라이터로 정치 일선에서 활약했다. 문재인 후보 총선 기간에는 부산에서 여관생활을 하며 살았다. 유랑극단 단원처럼 가족을 떨어져 살면서 헌신한 것이다.

정치 참여 동기가 무엇이든 대부분 속내는 잇속이다. 돈이든, 자리든, 명예든…. 그런데 정철은 '맹탕'이다. 자리든 돈이든 무엇이든 건질 줄 알았는데 덥수룩한 수염으로 나타나 돈과 자리가 아닌 술잔만 권했다. 바보 같은 정철에게 실망했지만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날고 기는 정치 고수들도 걸려 넘어지는 욕망의 덫. 자신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망상, 자신이 아니면 대통령할 사람이 없다는 중병. 이 덫과 병에 걸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정철은 정치 욕망의 덫에도, 중병에도 걸리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정철은 무림의 최고수인가? 아니면 맹탕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정철의 30년 지기로서 보증할 수 있는 것은 구김살 없이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카피라이터 정철, 가수 이지상, 사진작가 김진석 등과 함께 지난달 27일 대학로 벙커 1에서 '4인 4색 북 콘서트'를 진행했다. 100명가량 참석한 조촐한 북 콘서트였다. 관객의 반응이 뜨겁진 않았지만 제법 좋았다. 좋았다는 건 뒤풀이에서 증명됐다. 정철, 이지상, 김진석의 여성팬들은 새벽 술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하지만 여성팬도 없는 데다 술도 약한 나는 슬그머니 도망쳤다. 그들과의 작당으로 심한 내상을 입고 일주일을 앓았다. <카피책>이 많이 팔리면 술 대신 밥 사시오, 정철 카피!


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정철 지음, 손영삼 이미지, 허밍버드(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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