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토피아>의 포스터

영화 <주토피아>의 포스터 ⓒ 디즈니


<주토피아>는 <주먹왕 랄프>(2012), <겨울왕국>(2013)과 함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흐름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꼼꼼하게 잘 구축된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자립적인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 캐릭터가 자신의 세계관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어떤 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희생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입니다.

<주먹왕 랄프>의 게임 속에서 맡은 악역에 지친 랄프는 영웅이 되는 걸 꿈꾸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위기의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집니다. <겨울왕국>의 안나도 진정한 사랑의 상대라고 생각했던 한스의 실체를 알게 된 다음, 언니 엘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죠. 이 영화 <주토피아>의 주디 역시 유사한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디즈니가 변했다

 영화 <주먹왕 랄프>의 포스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다.

영화 <주먹왕 랄프>의 포스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다. ⓒ 디즈니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등을 막론하고 모든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주 관객층은 여전히 어린이와 그를 동반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늘 올바르고 선한 의도를 지닌 것으로 묘사돼 왔지요. 한때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숨겨진 장점을 깨닫고 과제를 해결합니다. 그들의 세계관 역시 남다른 통찰력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며 흔들림 없이 유지되죠.

이런 구성은 예전의 디즈니 식으로 봉합된 동화 세상에서는 그냥 심심하기만 할 뿐이지만, 최근의 픽사 애니메이션들처럼 지속적으로 현실 세계와 교류하고 논평을 시도하는 판타지에서는 문제가 됩니다. 현실 세계는 한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는 복잡한 곳이니까요.

예를 들면 <업>(2009), <토이스토리3>(2010), <인사이드아웃>(2015) 같은 영화에서 어린 시절을 이상화하는 단순 논리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거나 오히려 전체주의적 폭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묘사는 어디까지나 미국 백인 중산층 남성의 관점을 반영한 것일 뿐이니까요.

이에 비해 최근 등장한 디즈니 작품들은 주인공이 지닌 관점의 허점을 처음부터 설정한 다음, 주인공이 스스로 문제의 본질을 깨닫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요 사건과 드라마틱하게 엮어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지요. 사실 이것이 유달리 특별한 설정은 아닙니다. 2000년대 이후 할리우드 극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지향한 방향이니까요. 애니메이션 쪽에서도 그런 변화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주제의식과 이야기 구조 외에도 <주토피아>를 빛내는 것들은 많습니다. 모든 종의 동물들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주토피아의 설정과 구역별 디자인은 극 초반부터 시각적 흥미와 쾌감을 한껏 끌어올립니다. 또한 동물들의 습관과 특징을 꼼꼼하게 고증하여 만든 사실적인 디자인도 사랑스럽지요.

각본이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데, 짧은 러닝타임 안에 고전적인 탐정물과 스크루볼 코미디의 장르 규칙을 준수하면서도 캐릭터의 성장 플롯을 오롯이 잘 담아내었습니다. 촘촘하게 잘 깔아 놓은 복선과 박장대소를 끌어내는 눈부신 유머 감각이 돋보이고요.

진정한 성장

 영화 <주토피아>의 한 장면. 주인공 주디와 닉이 나무늘보 플래시를 만나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큰 웃음을 선사하는 장면.

영화 <주토피아>의 한 장면. 주인공 주디와 닉이 나무늘보 플래시를 만나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큰 웃음을 선사하는 장면. ⓒ 디즈니


영화 속 주인공들이 연루되는 사건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실제 세계에서도 객관을 가장한 자의적 편 가르기와 상대에 대한 적대 감정이 각종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으니까요. 지역, 성별,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따라 편을 나눠 극단으로 치닫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특히 더 그렇지요. 우리가 옳고 선한 일을 한다고 생각할 때에도 혹시 소외되거나 일률적인 편견에 희생되는 사람들은 없는지 언제나 살펴볼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핵심은 주인공 토끼 주디의 진정한 성장입니다. 자의식 강하면서 톡톡 튀는 그녀는 자신도 편견의 희생양이었으면서 다른 이들을 선입견으로 배제하는 오류에 빠졌다는 걸 인정할 만큼 용기 있는 인물입니다. 나중에 가서는 이때껏 자신을 버티게 해 준 꿈에 대한 절대적 확신마저 희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게 되죠.

예쁘게 반짝거리는 색감, 단순 명료하고 빠른 해결, 작품의 메시지가 주인공들의 대사나 팝스타 샤키라가 부른 삽입곡으로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것 등은 조금 아쉬운 점이지만 어린이 관객을 배려한 것이라고 볼 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북미 개봉을 2주 앞두고 있지만 박스오피스를 석권할 것이 확실시 되는 이 영화 <주토피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경향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보편적 경험과 내면의 풍경을 반영함으로써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이 흐름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갈지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주토피아 애니메이션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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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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