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연은 배우이지만 여배우로 불린다.

이미연은 배우이지만 여배우로 불린다. ⓒ JTBC


손석희(앵커) "여배우분들은 남자배우들보다도 사실 배우를 떠나서 인간으로서도 나이가 점점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겠죠."
이미연(배우) "물론이요."

... (중략) ...

손석희 "그러니까 제가 나이를 밝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미연 "말씀하셔도 돼요. 저는 어차피 뭐…. 71년생 돼지띠 마흔여섯 됐습니다."
손석희 "4년 뒤면 지천명이신데. 어떤 고민이 있습니까, 여배우로서는?"
이미연 "사실 왜 저는 가끔 그런 의문은 들어요. 왜 남자배우한테는 남자배우라는 얘기를 쓰지 않고 여자배우한테는 여배우라는 말을 쓰는지. 어찌 보면 그걸 잘 이용하면 되게 편안하게 배우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별로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지는 않고요. 글쎄요. 아직까지도 연기도 잘하면서 늙지도 않고 이러기를 바라시는 것 같아요. 많은 대중분들이나 관계자분들이. 그런데 그거를 적절한 수위에서 맞춰가면서 내 나이듦이 부끄럽지 않게 나이를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 2월 18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이미연과 손석희의 대화 내용 중 일부

난센스 퀴즈 하나 : 낚시를 하는 의사와 소년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난센스 퀴즈를 소개한다. 의사와 소년이 낚시를 하고 있다. 소년은 의사의 아들인데 의사는 소년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럼 이 의사는 누굴까? 답은 여자 의사다. 의사가 남자라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에 기반한 퀴즈다.

언어에는 기준이 존재한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 올 때 '올라간다'는 표현을 쓴다. 서울이 기준이다. 지방이 기준이었다면 '서울로 내려간다'는 표현을 썼을 거다. 국립국어원은 사랑의 정의 중 하나로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말한다. 동성애는 사랑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행동인가.

"왜 남자배우한테는 남자배우라는 얘기를 쓰지 않고 여자배우한테는 여배우라는 말을 쓰는지"라는 이미연의 말은 언어의 기준이 남성이 되는 현실을 꼬집는다.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을 통칭 한다. 하지만 여성이 배우일 때는 '여(자)'라는 말이 첨가된다. 남자가 배우의 기준이라는 의미다. 다른 단어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아닌 여의사, 고등학생이 아닌 여고생, 신이 아니라 여신이다. 남의사, 남고생, 남신이라는 단어는 잘 쓰이지 않는다. 남자가 기준값이기 때문이다.

이미연과 손석희의 대화에서 '언어의 기준' 이외에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는 '나이듦'이 여성에게 의미하는 바다.

난센스 퀴즈 둘 : 크리스마스 케이크

 여자가 신이면 여신이 된다

여자가 신이면 여신이 된다 ⓒ JTBC


여자에게 나이듦은 손석희 말대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는"일이다. 외모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이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24까지는 잘 팔리지만 25일이 지나면 잘 안 팔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여성에게 나이듦이란 (특정 시기가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라는 인식을 내포한다.

나이가 들면 피부가 쳐지고 주름이 늘어나며 살이 찌고 완경에 가까워진다. 20~30대의 모습에서 멀어지고 '아줌마'의 모습을 닮아간다. '남들 앞에서 당당하고 경제적'인 단어로 묘사될 수 있는 아줌마의 모습은 '기가 세고, 뻔뻔하고, 시장에서 100원이라도 더 깎는' 부정적인 언어로 대체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아줌마스럽게 생겼다'는 말이 욕이 되는 현실은 여성의 나이듦이 극복돼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보톡스 시술이 인기를 끌고 안티 에이징 제품의 소비층은 대다수가 여성이다. "많은 대중분들이나 관계자들이 연기도 잘하면서 늙지도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이미연의 말은 여성이 특정 상태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세간의 인식을 보여준다.

특정 시기가 지나면 여자의 나이는 숨겨야 할 것이 된다. "나이를 밝혀드리지 않겠습니다"라는 손석희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나이로 서열을 정하는 남자에게 나이 많음은 권력이 되지만, 여자는 아니다. 권력과 멀어진다. 여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예쁘고 아름다운 20~30대'를 지났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예쁘다'는 말보다 '동안이다'는 말이 여자에게 더 칭찬이 되는 이유다. 예쁨의 척도가 20~30대이기에 그 나잇대를 훨씬 벗어난 여성은 자신이 그 기준에서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안다. 대신 자신의 연령대를 조금이라도 벗어난 '그 나이로 안 보이세요'라는 이야기를 '예쁘다'는 말보다 더 좋아하게 된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동안이다'는 말은 칭찬이고 목표가 된다.

유난

이미연과 손석희의 대화는 '단어'와 '나이듦'이 여성에게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미연의 지적처럼 "여배우가 아닌 배우"이고 손석희의 말처럼 "나이듦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스트레스다"라고 말하게 하는 성차별적인 언어와 메커니즘은 일상을 지배한다.

체계는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피해자로 유지된다. 문제제기를 하면 '유난을 떤다'는 말로 침묵시킨다. 유난을 떠는 일이 아니라 유난을 떨어서 바꾸어야 하는 문제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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