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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3살 신규 남교사는 긴장하고 있었다. 불과 90일 전 발령받기까지만 해도 행복해 보이던 얼굴은 점점 흙빛이 되어갔다.

그는 '친구 같은 쌤' 콘셉트로 학급운영을 했다. 남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하여 당시 인기 온라인 게임이었던 '메이플 스토리' 궁수 캐릭터를 생성했다. 퇴근하면 서버에 접속하여 어린 동료들과 함께 버섯 몬스터를 사냥했다. 여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슈퍼주니어 '쏘리 쏘리' 가사를 외우고 파리 춤을 췄다. 카라 'Honey'는 도저히 꿀 찍어먹는 안무를 소화할 수 없어 짬이 날 때마다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꿈의 교실을 만들고 싶었다. 오래지 않아 그 꿈은 악몽이 되고 말았다.

함께 춤추고 오락하던 절친이 아침 조회에서 줄을 세우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던 띠동갑 동료가 수학 단원 평가를 보게 했다. 이러니 이상적이라 여겼던 우정은 쉽게 금 갔다.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러던 중 학부모 공개수업 소식을 들었다. 당장 4주 뒤였다. 급한 불이라도 꺼보자는 심정으로 나름 엄격한 규칙도 제정했다. 안 하던 짓을 하려니 뻣뻣한 나무 작대기처럼 어색해졌다. 학생들이 협조를 안 해주면 더 강압적으로 굴었다. 햇빛이 비쳐도 외투를 벗을까 말까 한 나그네에게 어설픈 바람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교사는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엄격하게 밀어붙였다. 힘만 들어갔다.

 아이들의 친구 노릇은 교육봉사 다니던 대학 시절까지만 유효했다.
 아이들의 친구 노릇은 교육봉사 다니던 대학 시절까지만 유효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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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날뛰지 마라.'

수업 전날 밤 빌고 또 빌었다. 두려웠다. 학부모들이 뒤에 앉아있다는 상상만으로 초조해졌다. 무능을 들키지 않으려 치밀하게 설계했다. 우선 학습자 움직임을 최소화하였다. 소란해지기 쉬운 토론, 액션러닝, 브레인스토밍 따위는 뺐다. 수업 진행 상황을 가정하여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행동하겠지 식으로 대본까지 작성했다. 또한 각 단계마다 다량의 쓰기 학습지를 첨부하였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40분 때우려는 심산이었다.

'그래 어차피 특별하고 멋지게 못 할 바에는 각본 짜서 얌전하게 가자.'

종이에 인쇄된 대로만 하면 되는데 뭔가 꺼림칙했다. 불안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다 당일 날 아침이 밝았다. 군대도 안 다녀온 경력 3개월의 담임이 심히 우려되었는지 학부모 참석률이 무려 80%를 기록했다. 워킹맘들이 절반이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었다. 신규교사의 장학 지도를 위하여 친절히 교감, 교장 선생님도 자리하셨다. 준비해둔 의자가 부족했다. 다섯 명이 서서 참관했다.

'두근두근...시작!'

예정된 동기유발 단계를 3분 초과했다. 활동 안내를 까먹고 건너뛰었다. 칠판에 시범 문장을 적었는데 끝으로 갈수록 글자가 올라갔다. 지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분필 쥔 손끝이 잠깐 떨렸다. 연이어 설명하다가 음이탈, 일명 '삑사리'가 났다.

"푸하하" 망가진 순간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 교장 옆에 앉아있던 교무부장 눈썹이 두 번 솟았다가 내려왔다. 식은땀이 흘렀다. 

 교수학습과정안의 일부. 점쟁이가 아닌 이상 학생의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교수학습과정안의 일부. 점쟁이가 아닌 이상 학생의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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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그럼 그렇지.'

자책할 틈도 없었다. 기주가 등장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남자. 누구보다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친구였다. 주의 깊게 관찰하고 칭찬해주면 선생님을 잘 따르지만 잠깐 내버려두면 소동을 감수해야 했다. 이날도 그랬다. 쓰기 활동을 하다가 모르는 게 생겼었나 보다. 좀 도와달라고 손을 들었는데 놓치고 말았다.

쿠당탕! 고개를 돌려 보니 기주가 짝꿍 상훈이와 뒹굴고 있었다. 모르는 내용을 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연을 나중에야 들었다. 달려갔다. 두 녀석 팔을 떼어 놓았다. 바짝 붙어서 작은 소리로 수업 끝나고 얘기하자고 했다. 서로의 입장을 비교하고 상담할 틈도 없었다. 여전히 씩씩거리는 꼬마들을 말리는데 울고 싶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무슨 선생질을 하겠다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쨌든 수업을 마쳐야 했다. 숨 크게 쉬고 진도를 나갔다. 이즈음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다른 수업을 보러 나가셨다. 마지막으로 활동3 차례가 되었다. 중심 문장과 뒷받침 문장을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게 핵심이었다. 예정된 과업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아 꼼꼼한 관리가 필요했다. 할당된 시간은 10분.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교과서를 봐주고 있었다. 기주가 손을 들었다. 늦게 가면 또다시 난장판이 벌어질까 봐 얼른 반응했다. 그 사이 다른 아이들도 SOS를 요청했다.

'어쩌지. 기주를 벗어나면 더 큰 사달이 날 텐데!'

위기상황이었다. 아까의 해프닝을 경험해서였을까? 아니면 이대로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걸까? 엄마들이 움직였다. 의재 어머님이 자녀의 국어책을 도와주자 조용히 계시던 다른 분들도 용기를 내셨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던 선생님들이 퇴장한 상태라 눈치 볼 사람도 없었다. 갑자기 팀티칭 수업이 되어버렸다.

공동육아방처럼 엄마들과 그사이에 낀 신규 선생이 꼬맹이들을 다 같이 지도했다. 이미 교수학습과정안 대로 하는 수업은 물건너갔다. 계획안에 형광펜까지 치며 외웠던 대본은 잊기로 했다. 학습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상황에 맞게 응대했다. 틀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버리니 속 편했다. 활동3과 최종 퀴즈까지 시끌벅적하고 유쾌하게 마무리되었다. 학부모들은 불편한 손님이 아니었다. 부족한 선생을 측은지심으로 도우신 손길이 고마웠다.

학부모 공개수업 이후 힘을 좀 뺐다. 아주 천천히 변화가 있었다. 너무 초조해 하지 않게 되었다. 그 후 매년 공개수업을 3차례 이상 가졌지만 완전히 망한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훌륭한 투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신참에게 필요한 건 힘 빼기다.

 되지도 않는 완벽함을 추구하려다 망가지기 일쑤다.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가자.
 되지도 않는 완벽함을 추구하려다 망가지기 일쑤다.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가자.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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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교육, 그림책, 육아, 일상 주제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