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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행복하니?" 거울 앞에서 물었다. 이 질문의 답은 '사표'였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 기자 말

[이야기 1] 가만히 죽음을 생각하다

그만 기가 죽었다. 따오청에서 60원을 내고 리탕행 '빵차'에 올랐다. 기사는 장족이었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덩치 때문에 위축이 될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는데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갔다.

게다가 장족들은 허리춤에 칼을 차고 다니는 풍습을 갖고 있다. 싸움이 나면 장식용 칼이 흉기로 돌변한다. 장족들은 정치적 이유로 한족을 싫어한다. 한국 사람은 한족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장족 앞에서는 각별히 조심하라는 당부를 듣기도 했다.

이런 우려와 달리 버스 기사는 "안녕하세요?"란 한국말 인사로 첫 만남을 시작했다. 역시나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었지만 푸근한 인상이었고, 무엇보다 날 한국 사람으로 알고 있어 안심이 됐다. 장족 기사와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빵차는 쉽게 출발하지 못했다. 사람이 차야 떠나는 방식이었다. 1시간 넘는 기다림 끝에 4명의 동행이 생겼다.

따오청을 빠져나오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산에 꼭 숲이 있어야 할까? 지금까지는 숲이 있어야 산인 줄 알았다. 하염없이 펼쳐져 있는 광야의 모습은 이런 고정관념을 한순 간에 바꿔놓았다. 동티베트의 이국적인 풍경은 야딩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중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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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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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귀를 닮았다는 '투얼산(4696m)'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 기사는 고갯마루에 차를 세웠다. 거친 바람에 몸을 맡겼다. 티베트의 건조한 바람이었다. 바람 너머로 두 개의 토끼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걷고 싶어지는 풍경이었다. 리탕까지 가는 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풍경을 감상했다.

그러다 순조로웠던 여행에 제동이 걸렸다. 두 대의 마주 선 트럭이 길 한가운데 멈춰서 있었다. 순간, 더는 이런 일에 조급해하지도 신기해하지도 않는 날 발견했다. 잠시 차에서 내려 여유롭게 셔터를 누르면 그만이었다. 그럼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따오청을 출발한 차는 3시간 30분 만에 리탕에 도착했다. 빵차는 리탕에서 여행자 숙소로 유명한 포탈라 게스트하우스 앞에 멈춰 섰다. 그다지 좋은 시설과 착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어서 믿음이 갔다. 무엇보다 숙소 내에서 영어가 통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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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의 도시' 리탕의 해발고도는 4000m가 넘는다. 이런 고산지대에 5만 명이 넘게 살고 있다고 한다. 고산도시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와 있는 셈이었다.

리탕의 하늘은 유독 파랬다. 하늘과 땅은 경계를 넘나들면서 애초에 하나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하늘 위 도시를 티베트 전통가옥이 꽉 채우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우주의 다섯 개 원소(파란색은 하늘, 노란색은 땅, 빨간색은 불, 흰색은 구름, 초록색은 바다를 상징)를 뜻하는 타르초가 바람에 흩날리며 티베트인들의 염원을 담아냈다.

리탕을 찾은 이유는 '천장(티엔장)'을 보기 위해서다. 천장은 티베트의 독특한 장례문화 중 하나로 사체를 독수리의 먹이로 주는 것을 말한다. 운 좋게도 도착한 다음날 천장이 있었다. 천장은 매주 월, 수, 금 거행된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쯤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기사는 "티엔장"이란 내 어눌한 중국어 발음을 고맙게도 잘 알아들어 주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장지가 있었다. 택시기사는 멀찌감치 차를 세웠다.

유난스럽게 파란 하늘 아래 독수리 무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좀 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맹수의 본성에 충실한 독수리들이 날카로운 부리로 망자의 몸을 쪼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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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멎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발 한발 독수리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인정도 슬픔도 없었다. '생존경쟁'이란 자연의 순리만이 망자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삼베옷을 입혀 입관하고 땅속에 묻거나 화장을 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장례문화와는 근본부터 다른 풍경이었다.

상주로 보이는 사람들은 독수리들이 뜯어 먹고 있는 사체 주변에서 여유롭게 이 모습을 지켜봤다. 중간 중간 웃음소리도 새어나왔다. 검은 정장에 흰 봉투를 준비한 조문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삶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윤회'의 광경만 펼쳐질 뿐이었다. 빈손으로 떠나는 것도 모자라, 왔던 모습 그대로 온전히 자연에 돌려주는 것, 티베트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다.

독수리 몇 마리가 허공을 갈랐다. 배를 채울 만큼 채운 모양이었다. 잠시 뒤 천장을 주관하는 장의사는 독수리들을 물렸다. 그는 남은 뼈와 살점을 추려 잘게 토막을 냈다. 둔탁한 파열음이 허공을 울렸다. 뼈를 내리치는 소리였다. 거북한 울림은 오랫동안 계속됐다. 장의사는 연장으로 계속 사체를 내리찍었다. 그리곤 남은 사체를 추렸다. 독수리들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망자는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갔다.

천장은 분명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자리를 뜨면서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평온하고 고요했다. 그리고 차분했다. 리탕은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순리와 이치를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내 죽음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여행 정보

'거울처럼 평탄한 초원'이란 뜻의 리탕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천장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4014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을 중 하나다. 5만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리탕은 티베트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손꼽히며, 7대(칼장 가쵸), 10대(출트림 가쵸) 달라이라마를 배출한 곳이다.

리탕에는 캉난 제일 봉우리 거니에성산과 끝없이 넓은 마오야 대초원, 마오허산 온천 등이 있다.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얼사와 렁구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한편 1950년대 리탕 주변은 중국 점령군에 저항하는 티베트인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1956년에는 리탕의 수도원이 중국인민해방군에 의해 폭파되기도 했다.


[이야기 2] 스님도 마음이 급할 때가 있다

천장의 충격을 잊을 새도 없이 또 한 번의 지옥 버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여행이었다.

오전 6시 30분 리탕 버스터미널은 시장바닥을 방불케 했다. 두 대의 버스가 동시에 캉딩으로 출발하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어느 차에 타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버스 트렁크는 이미 군인들의 군장으로 만원이었다. 배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버스는 '천장남로'를 따라 동쪽으로 달렸다. 물론 흙먼지 날리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였다. 뒷좌석 승객들의 머리가 천장까지 치솟았다 곤두박질쳤다. 발군의 체공시간이었다. 마치 정지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승객들의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아이야!"란 비명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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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멈춰 섰고 버스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살폈다. 비명이 워낙 컸던지라 다친 사람이 없는지 살피려는 것 같았다. 헉! 그런데... 기사는 비명을 내지른 뒷좌석 승객들을 보며 따발총 같은 중국어를 쏟아냈다. 죄 없는 나까지 움찔 놀랄 정도였다. 그는 도깨비 같은 표정과 성난 몸짓으로 버스 바닥과 창문 밖을 번갈아 가리켰다. 상황을 보니 '도로 사정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 계속 불평할 거면 여기서 내려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버스 기사는 쉬는 법이 없었다. 이 험한 길을 혼자 운전하면서 힘든 기색조차 없었다. 중간에 2번 정도 버스가 정차했는데, 공사 차량에 막혀 더는 진행할 수 없는 경우였다. 승객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버스 밖으로 빠져나갔다. 화장실이 급한 사람은 기웃거릴 사이도 없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이것저것 다 귀찮은 승객들은 그냥 차 안에서 담뱃불을 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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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 승객들이 더 타고 통로는 좌석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렇게 버스는 천장남로를 달려 9시간 만에 휴게소에 도착했다.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휴게소에서 밥을 주문했다. 난 밥알을 넘길 힘조차 없었다. 그대로 텅 빈 버스 안에서 평평해진 엉덩이를 살피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배낭도 중상을 입었다. 사람들이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는 통에 레인커버 끈 하나가 떨어져 나가버렸다. 트렁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군인들의 군장이 원망스러웠다.

카리스마와 체력까지 겸비한 버스 기사는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출발을 재촉했다. 그나마 포장도로가 시작돼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매번 그렇듯 이번 이동도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캉딩을 눈앞에 두고 함께 출발한 버스의 타이어가 펑크가 나고 말았다. 우리 차는 그대로 갈 줄 알았는데 버스 기사는 당연하다는 듯 차를 세우고 펑크 난 타이어를 살피기 시작했다. 난 반사적으로 버스에서 내려 관절의 이상 유무를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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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무슨 그림이란 말인가. 펑크 난 버스의 기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고, 대신 라마승이 타이어 볼트를 풀고 있었다. 버스 기사는 이 모습을 멀뚱히 지켜볼 뿐이었다. 이 광경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혼자 빵 터진 허파를 부여잡았다. 스님도 장시간 버스여행에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나 보다.

자동차 정비기술까지 갖춘 라마승의 작업이 다 끝날 때까지 모든 승객이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즐겼다. 혼연일체가 된 승객들의 도움으로 우리 버스는 12시간 만에 캉딩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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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딩에서 버스로 5시간 정도 달리면 '단빠'에 이른다. 다시 단빠에서 30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면 사파촌이란 마을을 만난다. 사파촌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곳이다. 단빠 지역에는 여인국으로 잘 알려진 동녀국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지금도 이곳 여성들은 한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동녀국과 관련된 기록은 구당서라는 당나라 역사책이 마지막인데 그게 벌써 1500여 년 전이다. 이후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현지인들에 따르면 1950년대까지 여족장이 군림하고 있었다고 한다. 중국군의 티베트 점령 이후 여족장은 권력을 빼앗겼으며 이들의 독특한 혼인제도였던 주혼제를 비롯해 모계사회의 관습들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증언이다. 주혼제란 따로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여자가 여러 남자와 자유연애를 하면서 자식을 낳는 혼인 풍습을 말한다. 구당서에서는 동녀국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동녀국은 당과 티베트 사이에 있는 여인의 왕국으로 여왕이 통치한다. 단빠 일대를 도읍지로 정하고 있는데 걸어서 동서로 9일, 남북으로 20일에 달하는 영토를 갖고 있으며 이곳에 80여 개의 크고 작은 성이 있다. 여왕에게는 1만여 명의 군사와 수백 명의 시녀가 따르고 있으며 여귀족과 함께 동녀국을 다스렸다. 남자는 아이를 돌보고 집과 망루를 짓거나 고치고 전투에 참전했다. 대신 여자들은 농사를 짓고, 가장의 역할도 맡았다….'




태그:#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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