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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개성공단상회 개업을 축하하며 홍용표 통일부장관이쓴 글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으로 존폐 위기를 맞은 개성공단상회 1호점 벽에 투사된 모습.
 지난해 6월 개성공단상회 개업을 축하하며 홍용표 통일부장관이쓴 글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으로 존폐 위기를 맞은 개성공단상회 1호점 벽에 투사된 모습.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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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를 보면 특단의 조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면 그 조치 때문에 피해 본 상인을 끝까지 배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치만 하고) 수수방관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지 않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 이후 쏟아진 기사들을 보고 개성공단상회를 찾았다는 이윤정(43)씨의 말이다. 아들과 딸을 데리고 상회를 찾은 이씨의 손엔 '개성공단'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흰색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들기름과 아들의 청바지를 샀다고 했다.

비구름이 잔뜩 낀 13일 토요일 오후,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에 있는 개성공단상회 1호점(안국점)은 궂은 날씨에도 이씨처럼 개성공단 폐쇄 뉴스를 보고 찾은 손님들과 취재진으로 가게 안은 평소보다 붐볐다. 이날 오후 3시까지 찾은 손님만 50~60명에 이른다고 한다.

오는 15일로 꼬박 개업 9개월 차를 맞은 상회 입구엔 알록달록한 깃발들이 3층 건물 꼭대기부터 맞은편 담벼락까지 펄럭이고 있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12곳이 협동조합 방식으로 출자한 개성공단상회는 각 조합사가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의류, 식품 등의 생산품을 공급 받아 판매하는 가게다. 대전 둔산점 등 대리점 5곳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일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 이후 개성공단상회와 관련 대리점은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마찬가지로 가게 운영은 물론 예비 대리점 개업 계획까지 불투명해졌다(관련기사 : 가게 문 열기도 전에 빼앗긴 개성공단상회의 꿈).

"폐쇄 잘했다" vs."국가가 책임져야" 손님 의견 엇갈려 

개성공단상회 1호점 입구 앞에서 가게 안을 구경하는 행인들.
 개성공단상회 1호점 입구 앞에서 가게 안을 구경하는 행인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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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물건 싸고 좋았는데."
"이제 뭐 물건 다 빼와야지 뭐. 싸울 땐 싸워야 돼."
"북한이든 남한이든 국민만 피해 보는 거야."

오후 1시, 서울의 대표 관광지인 인사동 거리 맞은편에 있는 개성공단상회 앞 길. 외국인 관광객부터 데이트를 나온 연인과 부부,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상회 앞을 무수히 지나갔다. 상회 안 프로젝터 빔 스크린엔 홍영표 통일부 장관이 개업을 축하하며 '개성공단 상회 화이팅'이라 쓴 글귀가 비쳤다.

행인들은 상회 간판의 '개성공단' 글씨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고 가게 안을 들여다 보며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에 대한 각기 생각들을 짤막하게 나누기도 했다. 상회를 찾은 손님들의 의견은 조금씩 엇갈렸다.

개성공단상회에서 속옷을 구매했다는 50대 중년 부부는 "속상한 마음에 찾아왔다"면서 "소비를 빨리 해줘야 해결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뭐, 팔아주는 거 밖에 더 있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로 피해를 본 기업들은 안타깝지만, 필요한 조치였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포에서 "뉴스를 보고 물어 물어 왔다"는 한 60대 남성은 "입주한 회사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정부로 봐선 잘한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더는 북한과 대화로 풀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대결을 해야 한다면 해야 한다"면서도 "기업들은 참 안 됐다"라고 거듭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가게를 찾은 70대 남성은 "뉴스에서 물건도 다 가져 오지 못하고 철수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개성공단이 있으면 좋긴 한데... 지금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곁에 선 동갑내기 아내도 "본때를 보여줘야한다. 개인적으로 (개성공단을) 잘 뺐다고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개성공단상회 1호점 내부 모습.
 개성공단상회 1호점 내부 모습.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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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인터뷰에 응한 이윤정씨는 개성공단 중단 조치 이후 기업들의 피해 상황에 국가가 최선을 다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개성공단 뿐만 아니라 정부 조치 때문에 피해를 본 상인들이 많지 않나, 나라에 항소해도 배상 못 받은 사례들을 기사로 봤다"면서 "세월호도 그렇고, 그간 국민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너무 없었다. 한 당이, 대통령 혼자서 잘 못했다고 몰아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국민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들과 함께 개성공단상회를 찾은 오매래(55)씨는 "뉴스를 보고 한 번 와 봤다"면서 "청바지를 샀는데, 생각보다 물건이 싸고 질이 좋아 만족하며 구매했다"고 전했다. 오씨는 개성공단 중단 조치에 대해 "정부가 내린 결정이니 어쩔 수 없지만, 피해를 보는 기업들이 안타깝다"며 "업자나 우리나라 손해가 많지 않나. 개성공단이 다시 가동해서 쭉 잘됐으면 좋겠다. (개성공단이) 잘 돌아가야 경제도 살아날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 필요한 기업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상회 "개성공단 존폐 여부에 생계 달려"

"일부 색안경 낀 분들이 개성공단 폐쇄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좌파 같은 생각을 해서가 아니다. 기업은 정부 정책 지원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 잘못은 국가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따른 것 밖에 없다. 그 결과가 이렇게 돌아오니까... 책임은 고스란히 진출한 기업과 관련 생업 종사자들이 떠안아야 하지 않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김진조 개성공단상회 운영부장은 이따금 말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개성공단 물품으로 상회를 운영하는 개성공단상회의 판매 공급 루트가 끊어진 상황을 언급할 땐 길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는 "개성공단이 끊어지면서 (상회도) 존폐 위기를 맞았다, 개성공단 자체가 이곳 (생업 종사자들의) 삶이라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김진조 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13일 오후 개성공단상회를 찾은 취재진들.
 13일 오후 개성공단상회를 찾은 취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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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상회는 어떤 곳인가?
"12개의 (개성공단) 조합사가 운영하고 있다. 실제 상품을 판매하는 조합사는 9곳이다. 이곳에서 물품을 판매할 자격을 얻으려면 개성공단에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이어야 한다. 12곳 모두 개성공단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

- 오늘 오후 꽤 손님이 붐비더라.
"개성공단 가동 중단 발표 이후 매스컴 보도를 보고 찾아온 분들도 있고, 단골 분들이 특히 많이 찾아주셨다. 격려와 우려의 말을 해주시더라. 그간 이용해왔던 개성공단 상품을 못 만날까 걱정도 하고, 북한과 대화 창구가 개성공단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창구가 막힌 상황을 우려하기도 했다."

- 북한이 개성공단 내 입주 기업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직원들을 추방 조치하는 등 상황이 급박하게 흘렀다. 상회 분위기는 어땠나.
"생각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연속으로 직격탄. 다들 망연자실했다. 별다른 대안이나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국가가 펼친 정책 방향에 그 국가에 예속된 국민은 따를 수밖에 없다. 안 따르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 정책 시행 전 자국민이 겪을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을 했어야 한다. 그 고민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자산을 회수할 시간을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3일 시간 준다고 했는데. 1사 1인이 들어가 얼마나 빼오겠냐마는, 그 시간마저도 못 벌었다. 이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 총 직원은 몇 명 정도 되나?
"이곳 상회 직원은 5명이다. 조합사를 제외한다 치더라도 상회와 관련된 대리점주도 5분이다. 곧 대리점을 열기로 한 예비 점주도 2분이고. 그분들과 관련한 직원들도 따지다보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 중단 조치 이전 영업 상황은 어땠는지.
"상회를 연 이후 차츰 정상 궤도에 올라왔다. 본점에서만 월 매출 4천~5천만 원씩은 냈다. 한 발 더 도약하기 위해서 직영점으로 군자역점도 추진 중이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직영점은 이제 추진할 수도 없고. 개업 예정이었던 대리점도 마찬가지다. 당장 기존에 운영되고 있던 본점과 대리점의 운영도 방향을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 새 사업을 위한 투자 자본이 다 들어간 상황일 텐데.
"그렇다. (투자 자본이) 회수가 안 되는 상황이다. 그 비용 보상에 대해선 (정부 차원의) 논의 사항이 없다. 현재는 경협 보험(남북경제협력사업보험), 대출 지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대출 지원이라는 게 어차피 빚 아닌가. 돈을 빌리더라도 일정 기간이 되면 다시 갚아야 하는 건데. (이 상황에선) 빚에 빚을 더하는 것이다."

"대출 지원 대신 자산에 대한 보상 이뤄져야"

개성공단상회 1호점 입구
 개성공단상회 1호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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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회 내부에서 의논하고 있는 대응이 있다면.
"지금 당장은 운영비 마련조차 어렵다. 조합사도 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이라 힘들고. 자생 방안을 1차적으로 조합사들과 논의했지만 딱히 돌파구는 없다. 개성공단 재가동 없이는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니까. 조합사들은 이미 자산이 동결되고 공장 가동이 중단돼 상회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이런 부분을 국가가 신경써줄 것 같지도 않고."

- 정부가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까지 (개성공단 중단 사태에 대한) 정부 대책은 '지원'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지원이 아니다. 모든 자산이 동결된 상황에서, 자산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진출한 기업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2차, 3차 피해를 겪은 상회나 협력 업체에 대한 보상도 진행돼야 한다. 개성공단 제품을 판매하는 상회다. 물품 수급이 안 되면 운영 유지가 불가능하다. 이건 생계권 문제다. 상회에 딸린 대리점과 그 분들의 생계는 어떻게 할건가. 누가 책임지나.

단순히 예를 들어 내 집에서 살고 있다가 잠깐 외출했는데 어느날 공권력이 투입돼 내 집에 못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자. 내 집에 돈도 있고 재산도 있고 다 있는데 못 들어가게 막는다면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다. 그래도 무작정 밖에 나와 있는 집주인은 어떻게 하나."

- 가장 답답한 건 무엇인가.
"2013년에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상황이 있었다. 그때도 상당히 어려웠다. 그래도 그땐 사전 조치를 할 수 있게끔 그나마 시간이라도 줬다. 재가동 합의 내용에도 어떠한 여타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을 지속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이 믿는 건 국가 정책이다. 개성공단은 정치, 외교적인 현안이 아니다. 경제적인 공간으로 봐야 한다. 내 자산이 아니라 국가의 자산이다. 그런 의미로 봐주셔야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개성공단도 하나의 공단, 생산 기지다. 그렇게 보면 이 상황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알 수 있다."

- 정부 차원에서 개성공단상회 자체에 대한 대책을 전해온 게 있는지.
"상회는 1차적으로 개성공단에 진출한 곳은 아니지 않나.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논의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상회와는 전혀 이야기된 게 없다."

- 조합사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 모두 중소기업이고 대부분 OEM(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업체다. (이런 기업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바이어(거래처)와 신뢰 관계가 유일하다. 문이 닫히면 기존의 주문 상품을 생산할 수 없고, 곧 신뢰가 무너진다. 그에 따른 배상도 해줘야 하고. 차후 사업이라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거래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신뢰가 무너지니 거래 자체가 안 되는 거다."


태그:#개성공단, #입주기업, #개성공단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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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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