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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에는 하이패스가 없다. 지금은 오토매틱으로 바꿨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94년식 수동변속 방식의 엘란트라를 몰았고, 그때에도 하이패스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고민 하나가 '편안함'에 대한 유혹을 가로막고 있는데, 오늘은 그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

비슷한 고민을 해 보셨던 분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하이패스'라는 이름을 지니고 차 안을 지키고 있는 그 장치와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수납하는 인간의 노동이 등가교환 될 수 있는가?

물론 하이패스는 차량 운행에 대한 정보를 매우 정확하게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실수를 하지 않는다. 인간 노동의 효율성과 실수를 포함한 부정확성을 고려하면 하이패스를 이용하여 모든 톨게이트를 교체하는 것이 '효과적'인 선택일 수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비교하는 것이 옳은가?

<인간은 필요없다> 겉표지.
 <인간은 필요없다> 겉표지.
ⓒ 한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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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에 도움을 얻고자 손에 잡은 것이 <인간은 필요없다>(Humans need not apply)'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다.

스탠퍼드대학 법정보학센터의 교수이며 인공지능학자인 저자 제리 카플란은 정보처리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며, 전통적인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필요없어지는 미래를 얘기한다. 실제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에서 지겨워하던 '볼트 조이기'와 같은 단순 반복 작업은 이미 자동화 된 기계 장비로 대체되어 있다.

일례로, 산업혁명 초기의 방직 공장을 가득 채웠던 노동자들은 자동 방직기가 들어선 이후 생산라인의 관리자인 '작업반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지지 않았는가? 이런 추세라면 기존의 산업 현장에서 인간의 노동은 분명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다보니, 얼마 전 SNS를 달궜던 우스개가 떠오른다.

"미래의 공장에는 개 한마리와 인간 한 명만 필요하대."
"왜?"
"개는 공장을 지켜야 할테고, 사람은 개에게 먹이를 줘야 하니까!"

제리 카플란에 따르면, 정보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노동시장을 위협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위에서 예를 든 공장 자동화로 인한 노동력의 감소는 일차적인 위협이며, 이는 직접적으로 현실에서 느껴지는 변화이다. 그러나 은밀하게 시장을 위협하는 두 번째 위협은 직업 자체가 지니고 있던 고유성을 변화시킴으로써 전통적인 일자리의 가치가 소실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노동 방식에서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직업인 의사나 약사를 생각해보자. 만약 충분한 처방 관련 정보를 지니고 스스로의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인공 지능은 쌓인 정보의 양에 비례하여 가장 정확한 결론을 낼 수 있으며, 거의 실수하지 않는다) 최고의 처방을 할 수 있다면, 의사나 약사의 역할이 지금처럼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아마, 미래의 의사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자동 수술장비가 대신하게 될 것이며, 미래의 변호사는 인공지능 시스템에서 출력되는 변론문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미래에 유망한 직업'과 같은 전문가 리포트에 의존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나의 조카들은 20년 후에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인지, 도무지 그려지지 않아 답답하다.

책을 통해, 저자는 인간의 노동이 기계의 노동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금기시하고 있다. 아무리, 인간이 '인간보다 더 똑똑한 기계'의 노예로 살아가는 세상이 더 쉽게 그려지더라도 말이다(<터미네이터>나 <블레이드 러너>에서 그리는 음울한 미래를 상상하면 쉽다). 그렇기에, 우리도 미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준비해야 한다.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는 것에 대해 얼마의 속도로, 어떠한 가치 판단을 포함하여,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약속과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만약, 사회가 더 이상의 고전적인 노동에 가치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하였다면, 불필요해진 노동력을 쓸모없는 것으로 제거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지니는 인간 노동의 미래에 대해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교육은 20년, 30년 후의 청년세대에게 제대로 된 미래를, 좋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30년 전의 대한민국은 열 살의 내게 '과학입국'의 꿈을 꾸게 하였고, 대한민국은 그 꿈에 책임이라도 지려는 것처럼 비약적인 산업의 성장을 이뤄냄으로써, 나에게 지금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30년 후의 미래 세대에게 어떤 꿈을 꾸게 하고, 어떻게 부응하는 것이 옳은가?

전통적인 가치의 노동이, 우리가 지금껏 배워왔던 직업이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성공담을 베껴서 모범답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면, 지금부터는 아무도 답을 내지 못한 세상에 대한 고민이므로 매우 어려운 시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자, 이제 나의 고민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책은 읽어냈지만, 나는 아직도 톨게이트에서 차를 세운 채 외쳐대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포기하지 못하겠다. 만약, 그들의 일자리를 '하이패스'로 대체해야 한다면, 그들에게 더 나은 일자리가 약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오지랖일까? 하지만, 이런 식의 가치 교환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이 미치면, 고민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추신: 저자가 마지막으로 주장했던 것은 사회 경제 시스템의 개혁을 통한 부의 재분배였다. 극단적으로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부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너무도 먼 이야기인 것 같아서, 더는 언급하지 못하겠다.

- <인간은 필요 없다>(Humans Need Not Apply) : 인공지능 시대의 부와 노동의 미래, 제리 카플란 지음/신동숙 옮김(한스미디어).


인간은 필요 없다 - 인공지능 시대의 부와 노동의 미래

제리 카플란 지음, 신동숙 옮김,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2016)


태그:#독서일기, #미래의 노동, #인간은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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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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