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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튀르크 공항 입구 IS 테러로 깐깐한 입국심사 통과.
▲ 아타튀르크 공항 입구 IS 테러로 깐깐한 입국심사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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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적도 부근 기아나에 수감된 빠삐용은 탈출과 독방생활을 반복하다 결국 초췌한 몸으로 악마의 섬으로 보내진다. 그 섬은 망망대해에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연감옥이지만 기아나의 형무소보다 규율이 엄하진 않았다.

빠삐용은 그곳에서 극적으로 해후한 절친 드가와 작별을 고하고 자유를 찾아 상어 떼가 득실거리는 해안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그리고 코코넛 뗏목 위에 누워 세상을 향해 외치며 영화는 끝난다. "Hey, you Bastards, I'm still here.(야 이놈들아, 난 아직 살아있다)" 비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장시간 이동할 때 잠시 비우고 채우기에 영화만한 것이 없다.

2015년 가을 어느 토요일 저녁, 꼬박 10시간을 넘게 날아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터키에 가면 고등어 케밥과 에페맥주는 꼭 먹어보라는 후배의 말을 떠올리며 아타튀르크 공항을 나왔다. 계속되는 IS 테러 때문인지 입국심사가 무척 깐깐했다. 경쟁구도에 갇혀 지독히 치열한 일상을 잠시 덮고 여기까지 왔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내일이면 느낄 수 없는 감정, 그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을 찾아 먼 길을 왔다.

모든 시계가 9시 5분에 멈춰있는 톱카프 궁전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 뒤로 보이는 대형 크루즈.
▲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 뒤로 보이는 대형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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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루스 해협 선착장에서 뒤로 보이는 보스포루스 대교.
▲ 보스포루스 해협 선착장에서 뒤로 보이는 보스포루스 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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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보스포루스 해협 선착장을 찾았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있지만 실제 면적의 97%는 아시아이고 3%만이 유럽에 속하는 터키는 그 경계에 마르마라 해(海)와 보스포루스 해협이 있다.

이스탄불을 품고 있는 마르마라 해의 물결이 잔잔히 일렁였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루스 대교 난간에 낚시꾼들이 촘촘히 늘어서서 한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터키인의 여유 있는 생활 문화가 엿보였다.

로마 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의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 이스탄불. 그중에도 6세기 동로마 시대에 건립된 아야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뽑혔다. 허름한 겉모습과 달리 최고급 대리석과 황금 모자이크 장식으로 치장한 성당 내부는 화려함의 극치 그 자체였다.

이 성당은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정복당한 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됐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반면 아야 소피아 성당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제국 때 세워진 이슬람 문화의 진수로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술탄과 중신들이 국정을 논했다는 궁전 내부의 시계들은 모두 오전 9시 5분에 멈춰있었다.

아야 소피아 성당 전경 비잔틴 예술의 최고 걸작품으로 꼽힌다.
▲ 아야 소피아 성당 전경 비잔틴 예술의 최고 걸작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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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소피아 성당 내부 성당 내부는 화려함의 극치 그 자체다.
▲ 아야 소피아 성당 내부 성당 내부는 화려함의 극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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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도로에 넘쳐나는 차량들로 이스탄불은 서울의 강남만큼이나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았다. 오후 6시 25분,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이자 스머프 만화의 배경인 파샤바(버섯바위 골짜기)를 만나기 위해 터키 중부 카파도키아행 비행기에 간신히 몸을 실었다.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들은 화산 분화로 쌓인 화산재가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을 겪어 탄생한 대자연의 걸작품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1세기부터 로마와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온 기독교인들이 바위를 파고 들어가 365개의 교회와 수도원을 만들며 형성한 괴뢰메 야외 박물관과 비슷한 시기에 생긴 지하도시였다.

박해를 피해 땅속 지하 21층까지 파고 들어가 최대 4만 명까지 생활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의 지하도시 데린구유(Derinkuyu)를 만들었고, 데린구유는 척박한 이 지역의 관광 수입원으로 후세를 먹여 살렸다.

괴뢰메 야외 박물관 박해 피해 들어온 기독교인들의 은신처.
▲ 괴뢰메 야외 박물관 박해 피해 들어온 기독교인들의 은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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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샤파로 불리는 버섯바위 골짜기 모습이 낙타와 너무 습사하다.
▲ 파샤파로 불리는 버섯바위 골짜기 모습이 낙타와 너무 습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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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 4일째 아침, 일정에 떼밀려 터키 남부의 지중해 해양도시 안탈랴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터키 중부와 남부를 가로막고 있는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서자 척박한 대지가 점차 녹음으로 변해갔다. 산야는 온통 올리브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8시간 넘게 이동하면서 지난해 12월 김홍신 원장이 직접 사인해주신 에세이 <그게 뭐 어쨌다고>를 꺼내 펼쳤다. 이 분의 책은 무료함이나 조급함을 느낄 새가 없다. 하지만 와 닿는 감흥이나 글귀는 처지나 형편에 따라 달랐다. 책속 한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인생에서는 기다리는 사람의 몫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을 저지르는 사람의 몫은 분명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찾았다는 다랭이논 모양의 석회층 온천

열기구 위에서 더 높이 더 멀리.
▲ 열기구 위에서 더 높이 더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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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바위 계곡 스머프 만화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 버섯바위 계곡 스머프 만화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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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랴 역시 도시 곳곳에 로마 비잔틴제국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AD 130년 로마 황제 하드리안의 방문을 기념해 만든 하드리아누스 문과 안탈랴의 상징으로 셀주크 왕조 때 세워진 첨탑 이블리 미나레(Yivli Minare)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안탈랴 광장에는 터키 독립의 영웅 아타튀르크 동상이 우람하게 서 있었다. 그에 대한 터키인의 존경과 사랑은 하늘을 찔렀다. 더욱이 며칠간 머물던 터키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띈 건 놀랍게도 터키 국기였다. 마치 매일 매일이 국경일처럼 어느 곳이든 붉은 바탕에 초승달과 별(금성)이 그려진 대형 터키 국기가 사방에서 펄럭였다. 오랜 세월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자국을 지켜온 자부심과 결연한 의지가 담긴 자연스런 국민정서가 아닌지.

안탈랴 거리에서 상점에는 수공예품, 의류, 보석류가 가득했다.
▲ 안탈랴 거리에서 상점에는 수공예품, 의류, 보석류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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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탈랴 식당거리 손님을 끌기 위해 우산으로 예쁘게 치장했다.
▲ 안탈랴 식당거리 손님을 끌기 위해 우산으로 예쁘게 치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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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3대 명소를 뽑으라면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파묵칼레이다. 이스탄불이 동서양 문물의 교차로 성격이 짙다면 카파도키아는 특이한 자연지형으로 명함을 내민다. 파묵칼레는 규모는 작지만 온천이 있어 좀 색달랐다.

다음 날 아침, 황량한 벌판 위의 시간여행이 이어졌다. 버스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파묵칼레는 터키 남서부의 석회층 온천지대로 이곳 역시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즐비했다. 인구 10만의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 14세기 대지진으로 대부분 무너져내려 자취를 감췄지만 폐허 속 어마어마한 규모에 옛 영화가 무색해 보였다.

그중 원형경기장은 과거 전사들의 검투와 함성이 들리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온천을 했다는 다랭이논을 닮은 석회층 온천수에 발을 담그니 2천 년 세월의 격이 한순간에 좁혀진 듯했다.

파묵칼레에는 주택 지붕 위에 병을 세워 놓는 풍습이 있는 재미난 마을이 있다. 지붕 위의 병은 자기 집에 결혼 안 한 딸이 있다는 표시라고 한다. 두툼한 병은 뚱뚱한 딸이, 얇은 병은 날씬한 딸이라는 표시인데 총각 누구든 돌을 던져 그 병을 깨뜨리면 구혼의 의사표시로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 만약 병을 깨뜨리고 변심하면 그 집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살해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원형경기장 전사들의 검투와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 원형경기장 전사들의 검투와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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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층 온천수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에 온천을 했단다.
▲ 석회층 온천수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에 온천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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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0년 넘게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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