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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6일 북한의 제 4차 핵실험과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급기야 한미 양국은 그동안 중국의 반발로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던 사드배치 논의를 공식화했고, 정부는 남북교류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의 전면중단까지 꺼내들었다.

현재 상황이 매우 심각한 이유는 이것이 일시적인 관계 악화에 따른 후폭풍이 아니라 한반도 신냉전의 도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조적 불안정성을 보여준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반도 평화의 위기는 매우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야당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해서 야당다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아래 민주당 계열 정당이라고 호칭) 주요 인사들은 공히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제재를 강조하였다.

안보에서 진짜 무능한 세력은 바로 보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9일 오전 파주시 임진강 대대를 방문해 대비태세 현황을 듣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제4차 핵실험에 이어 한 달여만인 7일 장거리 로켓(광명성호)을 발사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9일 오전 파주시 임진강 대대를 방문해 대비태세 현황을 듣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제4차 핵실험에 이어 한 달여만인 7일 장거리 로켓(광명성호)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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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화해협력 노선을 내세우는 야당이라면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비판함과 동시에 이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은 대화와 협상에 있음을 동시에 강조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 제재만을 말하면 결국 이명박 정권 이후 이어져온 보수 세력의 대북정책과 한반도 외교의 실패를 제대로 지적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야당의 위와 같은 태도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보수 세력의 안보 공세와 종북 공세가 강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북정책과 관련한 야당의 목소리는 위축되기 시작했으며, 야당은 보수 세력의 공세가 예상되는 사안에 대한 쟁점화를 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야당의 무기력한 태도와 관련하여 2014년 6.15 남북정상회담 14주년 기념행사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5년 전 6월 11일, 6.15 9주년행사가 열린 이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부하셨던 대로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자임하는 민주당이 주축을 이루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행동하는 양심'의 전위대가 되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브랜드인 '민주'자를 쓰려거든 그 분의 또 다른 브랜드인 6.15를 지키라고 대통령과 정부에 촉구해야 합니다. 용기가 없어서 말을 못하는 겁니까, 아니면 철학이 달라서 말을 안 하는 겁니까?" 

그 당시 정세현 전 장관이 지적하고 있다시피 대북 문제에 관한 야당의 무기력함은 꽤 오래된 현상이다. 그러므로 지난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나온 민주당 계열 두 정당의 반응은 최근 경향으로만 본다면 오히려 일관성이 있는 태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대북화해협력 노선을 당 정체성의 근간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야당에서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그 해답은 민주당 계열 정당이 소위 중도화 전략의 관점에서 공히 강조하고 있는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담론 프레임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동안 '안보는 보수'라는 프레임에 대해서 대다수 진보 진영은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프레임을 통해서 진보 진영이 그동안 소홀히 했다고 인식되었던 안보 이슈에 대해서 보수에 대항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안보는 100번, 1000번 강조해도 옳다. 그리고 이유야 어떻든 진보가 안보를 소홀히 한다는 세간의 여론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해법이 과연 '안보는 보수'라는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잘못된 처방을 통해서 진보 세력의 가치와 장점을 스스로 허무는 매우 자해적인 대처라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안보는 보수'는 보수 세력이 진보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구축한 프레임의 덫이다. 이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추진된 대북화해협력 노선을 안보와 대립된 것으로 프레임화한 뉴라이트 전략의 산물이다. '안보는 보수' 프레임은 진보 세력 무능론의 안보 분야 하위 버전이다.

필자는 진보에서 보수로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를 보인 32명의 일반인을 상대로 심층인터뷰를 하여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한국사회 보수화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여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책을 최근에 냈다. 여기에서 보면 진보 세력을 향한 '무능' 프레임은 진보의 약화와 보수의 강화를 초래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무능' 프레임은 그만큼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화해협력 노선이 안보와 대립된 것으로 프레임화한 보수의 담론을 안보 강화라는 이유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치과정에서 프레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 조지 레이코프(미국 인지 언어 심리학자)는 상대방이 설정한 개념과 구호를 사용하는 것은 프레임 전쟁에서 지는 길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그렇게 보면 '안보는 보수' 담론은 진보가 보수의 언어로 대처하는 예로서 레이코프가 우려한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한다.

'안보는 보수' 담론은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로서 의식의 식민화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야당의 가장 빛나는 업적이자 보수에 비해서 확고히 우세한 대북화해협력 노선의 장점과 가치를 무력화시키고, 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 진보 진영은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심각하다.

그리고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일부 진보 진영의 환호도 위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승민 의원은 여러 장점이 있는 정치인이지만, 그는 사드 배치론자로서 대북화해협력 노선이 지향하는 바와 맥을 달리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진보 진영은 그의 '사드배치론'이 갖는 인식 상의 차이점에 대해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안보는 보수'라는 프레임의 결과 아니겠는가?

물론 안보 분야에서 보수가 김대중-노무현 정권보다 잘했다면 '안보는 보수' 프레임은 옳다.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군사적 긴장감으로 인한 전쟁 발발 공포가 조성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4번의 핵실험 중에 3번(2009년, 2013년, 2016년)이 보수 정권 시절에 발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보수 세력은 북한의 정책 전환에 있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렇듯 안보에서 진짜 무능한 세력은 바로 보수다. 그럼에도 '안보는 보수'라는 프레임이 야당의 주요 구성원들의 의식 속을 지배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하다. 의식이 식민화되어 있으니 이 사안에 있어 야당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영혼 없는 중도화의 필연적 결과이다.

지금 야당이 해야 할 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 비대위 선대위 관련 상임위 긴급연석회의에서 국회 국방부위 간사인 윤후덕 의원의 보고를 듣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 비대위 선대위 관련 상임위 긴급연석회의에서 국회 국방부위 간사인 윤후덕 의원의 보고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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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야당은 '보수는 안보'라는 프레임의 덫에서 벗어나서 이명박 정권 이후 보수 세력의 대북·안보·외교 정책의 실패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비판해야만 한다. 평화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대화와 협상을 더욱 강조해야만 한다. 이렇게 하면 보수 세력은 엄청난 '종북' 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러나 이 사안은 논쟁이 펼쳐지면 펼쳐질수록 보수 세력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군사적 대립이 격화되어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가면 우리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데, 사태가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국민들이 먼저 보수에 등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보수 정권의 대북 정책과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실패를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노선을 강조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미국에서도 이 정책의 실패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그 비판 중에서 협상파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더욱 강한 제재, 북한 정권 교체 등등 강경한 대안뿐이다. 이렇듯 미국 내 대북협상파의 목소리는 매우 약화된 상황인데, 대북화해협력 노선의 견인차가 되어야 할 야당마저 무기력해진다면 앞으로 한반도 정세는 벼랑 끝 상황에까지 몰릴 위험이 있다.

야당은 말로만 김대중 계승을 외치지 말고 김대중의 실천을 배우려고 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김대중은 가장 정확한 진단과 해법을 내놓아서 한반도 위기 극복에 큰 기여를 했었다. 94년 1차 북핵위기, 2001년 부시 집권 이후 조성된 긴장 국면, 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및 핵실험 이후 등 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김대중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강조했으며, 그것은 결국 빛을 보았다.

김대중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그는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물론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김대중의 진단과 해법을 교조적으로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으며 일괄타결을 강조한 김대중의 대안이 가장 올바른 해법이다.  그러므로 이럴 때일수록 야당은 군사적 대결 노선을 단호히 반대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노선을 더욱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 영혼 있는 야당의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신기 기자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연구원이며 사회학 박사입니다. 한국 사회 보수화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진보에서 보수로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를 보인 일반인 32명을 심층인터뷰하여 최근에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태그:#김대중, #더민주당, #국민의당,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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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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