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연휴 기간에도 업무로 인해 휴식을 취하지 못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제 고향에서 설을 보낸 이들도 서울로 돌아오고 일터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입니다.

최근 명절 연휴에 TV를 보면 이른바 '파일럿 전성시대'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방송사마다 스타들을 내세운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서바이벌 게임을 방불케할 정도로 파일럿 프로그램이 아침부터 심야까지 이어지는 게 요즘 명절 TV의 풍속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때 명절 대표 프로그램이었던 '특선영화'의 비중이 줄었습니다. 물론 올해 설날에 최신 한국영화들이 소개되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비중이 줄었고, 기존 프로그램 재방송 비중이 오히려 늘었습니다. 그나마 씨름 중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제게는 위안이네요.

불현듯 설 연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명절을 즐겁게 해줬던 영화들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영화들'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하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온 가족이 액션을 보며 감탄했던 바로 '성룡 영화'입니다.

느와르의 홍수 속에도 빛났던 성룡의 영화들

 '성룡 신화'의 시작을 알린 <프로젝트A>

'성룡 신화'의 시작을 알린 <프로젝트A> ⓒ 골든하베스트


성탄절이면 <나 홀로 집에>를 매년 방송했던 것 같이 설날이나 추석 연휴에는 성룡 영화가 한두 편씩 방영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폴리스 스토리>, <프로젝트 A>, <쾌찬차>, <미라클>, <성룡의 썬더볼트>, <시티 헌터> 등이 명절 대표 영화였죠.

비틀비틀하는 동작이 인상적인 <취권>으로 국내 팬들을 사로잡은 성룡은 <사형도수>, <용소야> 등 무술영화가 잇달아 히트하며 이소룡의 뒤를 이은 무술 스타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A>를 필두로 <용형호제>, <폴리스 스토리>, 그리고 홍금보, 원표와 콤비를 이룬 <쾌찬차>, <비룡맹장> 등이 잇달아 성공하며 이른바 '성룡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성룡 영화는 일명 '홍콩 느와르'가 대세가 된 시점에도 꾸준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화려하면서도 잔혹한 총격전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성룡의 무술은 빛을 발했죠. <미라클>, <중안조>, <쌍용회>, <용형호제2>는 느와르와는 또 다른, 즉 '잔인하지 않고 재미있는' 홍콩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부담없이 즐기는 코믹과 무술의 조화

 명절마다 방영됐던 성룡의 대표작 중 하나인 <폴리스 스토리>

명절마다 방영됐던 성룡의 대표작 중 하나인 <폴리스 스토리> ⓒ 골든하베스트


성룡이 특히 명절 영화로 사랑받은 이유는 바로 그 코믹과 무술의 조화가 남녀노소에게 전혀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룡의 무술은 악에 대한 응징이나 복수가 주가 아니라 인간의 몸이 어느 정도까지 동작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공 들인 액션이었습니다.

성룡의 영화는 명장면이 많습니다. <프로젝트 A>의 자전거 추격전, <폴리스 스토리>의 백화점 격투신 등은 3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정말 흥미롭고 숨 막히기까지 합니다. 이 어려운 작업을 대역 없이 해냈다니요. 지난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 속 나온 컨테이너 액션 장면은 바로 그 성룡의 영화를 모티브로 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룡은 영화를 찍을 때마다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가 실려 가는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마다 나오곤 했습니다. 영화 말미에 항상 등장하던 NG 장면은 웃기기도 하지만 부상투혼을 보이는 성룡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습니다.

다치면서도 성룡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성룡이 모델로 삼았던 이가 버스터 키튼이라고 하지요. 중간중간 성룡의 슬랩스틱은 영화의 긴장감을 다소 풀어주며 성룡을 '이웃집 아저씨'로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시 '한창 시절' 성룡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성룡의 대표작 <미라클>

성룡의 대표작 <미라클> ⓒ 골든하베스트


성룡은 그렇게 '우리의 친구'가 됐습니다. 가끔 한국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기증하고 쇼 프로에 나와 한국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사람들은 좋아했죠. 그의 영화는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사랑받았고, 이후 <홍번구>가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서 성룡도 헐리우드로 가게 됩니다.

<프로젝트 A>나 <폴리스 스토리>에 등장한 날렵한 성룡의 모습을 이젠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신주쿠 사건>, <뉴 폴리스 스토리>, <신해혁명> 등에서 그는 웃음보다는 현실에 찌든, 그리고 친중국 성향의 보수적인 중년의 모습을 보였죠.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가벼운 절망감(?) 때문이랄까요. 그런 그리움이 명절마다 성룡의 한창 시절 영화들을 소환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었던 아무 생각 없이 봐도 스트레스가 풀리던, 그러면서도 무술과 격투를 예술로까지 승화시켰던 감독이자 배우이며 무술인 성룡. 명절을 맞아 한창 시절 그의 모습을 한 번 추억해봤습니다. 명절이 끝나가는 지금, 문득 그가 다시 보고 싶습니다.

성룡 프로젝트A 폴리스 스토리 미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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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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