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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체장으로부터 50만원을 받았습니다.
 한 단체장으로부터 50만원을 받았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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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넷 먹은 아들이 하나 있는데, 8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 한쪽을 못 쓰니까 며늘애도 집 나가고…. 올해 고3 올라가는 손자와 이렇게 셋이 살아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용담리에 사시는 김화순 할머니(66)는 묻는 말에 몇 마디 대답하는 것도 버거운 듯 보였다. 몇 년 전 심장수술 이후 생긴 증세라고 했다. 봄이면 뒷산에 올라 산나물을 뜯어 팔아도 돈이고, 농가 일손이 모자랄 땐 푼돈도 쉽게 벌 수 있을 텐데, 그것마저 할 처지가 못 된다. 매달 기초생활수급자에 지급되는 적은 생계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연말연시, 50만 원씩 두 번... 100만 원을 받았다

설날을 3일 앞둔 지난 5일, 우리 면 총무담당은 내게 흰 봉투를 하나 건넸다.

"면장님, OOO단체 회장님 아시죠? 50만 원 가져오셨어요. 익명으로 해서 어려운 가정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좋은 일 하시는데 실명으로 하면 안 된대요?"라는 말에 꼭 익명으로 해달란다고 했단다.

"지난번엔 소연이네는 줬으니까, 이번엔 진짜 어려운 다른 가구를 같이 찾아보시죠?"

지난해 12월 30일, 화천군 용담교회 목사님이 찾아 오셨다. 늙은 나이에 어렵게 아들을 하나 얻었는데, 면 직원들 회식이나 하라며 50만 원을 내게 건넸다. 기쁜 마음으로 주는 돈이니 거절하면 안 된다고 엄포도 놨다.

화천군 사내면 삼일2리에 사는 소연이가 떠올랐다. 부모님 이혼으로 할머니 손에 맡겨진 아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는 다 쓰러져 가는 집에 할머니와 둘이 산다. 영양실조 때문일까 다른 아이들보다 발육이 늦은 것도 가난이 원인인 듯했다.

"이건 제가 드리는 게 아니라 용담교회 목사님께서 드리는 겁니다."

봉투에 '용담교회 목사 OOO'이라고 쓴 봉투를 건넸다. 뜻밖의 일어어서일까, 할머니는 멍하니 나만 바라 보셨다. "난 심부름만 했을 뿐이고, 이 돈은 OOO 목사님이 드리는 겁니다"라는 말로 재차 확인시켜드린 후 복귀했다.

"직원들 섭섭하겠지만, 사실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불만 있는 사람 말하세요. 내 돈으로 회식 시켜 줄 테니까."

면장이 멋대로 일을 벌였다고 혼날 줄 알았는데, 되레 박수를 받았다.

세탁기를 밖에 내놓고 사용하는 집

집안에 있어야 할 세탹기가 밖에 놓여있다.
 집안에 있어야 할 세탹기가 밖에 놓여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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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이네 보다 더 어려운 가정이 있어요. 할머님이 몸도 편찮으시면서 장애인인 아들과 고등학생인 손자까지 돌보는 딱한 사정이 있는 집이에요."

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7일, 김남억 독거노인 관리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망설일 필요가 없다.

컨테이너로 꾸며 놓은 집, 바람을 막기 위해 쳐 놓은 비닐은 커다랗게 찢어진 구멍으로 바람의 왕래를 허락했다. 방안에 들어섰다. 전기장판은 가녀린 온기를 토해 내지만 허리 위가 차갑다. 밖에서 들어오는 찬바람을 컨테이너 벽이 막기엔 벅찬 듯했다.

잡안 온기를 위해 쳐 놓은 비닐은 바람에 뜯긴지 오래다. 명절 이후 조속히 처리하기로 했다.
 잡안 온기를 위해 쳐 놓은 비닐은 바람에 뜯긴지 오래다. 명절 이후 조속히 처리하기로 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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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누추하지만 앉으세요."

돈 이야기를 꺼내기 전이다. 이것저것 생활상을 물으니 살만 하니 면장이 신경 쓸 일 아니란다. 김 할머니는 내가 찾아왔다는 것만으로 반가운 모양이다. 다른 집처럼 하소연도 하지 않았다. '연탄은 있으세요?'라고 물어야 "아껴 쓰면 돼요"라고 답한다.

"앞으로 연탄 아끼지 말고 때세요. 200장 남았다고 했죠? 50장 남았을 때 내게 전화주세요. 지원해드릴 테니…."

할머니는 연탄을 아낀다고 불구멍을 닫아 놓으셨다. 그러니 조그만 컨테이너 방이 냉골일 수밖에 없다. 아끼지 말고 펑펑 쓰라고 했다. 모자라면 사회단체장들 모아 돕자고 호소하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내가 사드려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설 명절, 그나마 방이라도 따뜻해야 하지 않겠나.

"저게 왜 밖에 있을까요?"
"망가져 버린 거 같은데요."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 김남억 독거노인 관리사는 집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놓여 진 세탁기를 가리켰다. 세탁기는 집안에 놓여 있는 게 맞다. 그런데 그게 밖에 나와 있다. 망가졌거나 버린 경우다.

"어디서 주워 오신 모양인데, 저거 쓰는 거예요. 집에 수돗물이 나오지 않으니까, 물을 녹여서 사용하시는 거랍니다."

김남억씨는 독거노인 관리사다. 더군다나 김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가 있으니 독거노인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 관리사는 이 집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다. 우리 면엔 독거노인 관리사가 세 분 계신다. 30가구씩 90가구를 담당한다. 해당되지 않은 불우계층까지 더하면 120가구가 넘는단다. 모두 자발적 관리에 나선 가구다.

왼쪽 독거노인 관리사 김남억 씨, 오른쪽 김화순 할머니.
 왼쪽 독거노인 관리사 김남억 씨, 오른쪽 김화순 할머니.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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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연휴엔 경로당 방문이나 해야겠다.'

순간 든 생각이다. 살만한 어르신들이야 자녀, 친지, 손자들로부터 질리도록 '새해 만수무강 하시라'는 세배를 받았을 테지만, 독거노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경로당에 모이실 건 뻔하다. 면민을 대표로 내가 세배를 드린다면 뿌듯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나마 외롭지 않은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



태그:#설명절, #독거노인관리사, #사내면, #김화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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