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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페루 대통령선거에서 유력후보로 부각되고 있는 게이코 후지모리
 2016년 페루 대통령선거에서 유력후보로 부각되고 있는 게이코 후지모리
ⓒ 게이코 후지모리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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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시작된 '중남미 우경화'가 베네수엘라 총선을 거쳐 페루 대선에서도 이어질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가오는 4월 10일 페루 대선 1차 투표가 치러질 예정이다. 대선에 뛰어든 대부분의 후보들이 현 오얀타 우말라(중도좌파)와 성격을 달리하는 우파 혹은 중도우파여서 큰 이변이 없는 한 페루도 '중남미 우경화' 물결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영부인 비리 스캔들과 광산개발프로젝트 마찰로 우말라 대통령 지지율은 18%포인트까지 추락한 상태이다. 게다가 현 여당소속 대선후보, 다니엘 우레스티(페루 국민당)는 주요경쟁후보군에 끼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정권교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확실시되는 페루의 정권교체 여부보다는 한 여성 후보의 압도적 여론조사 1위 소식이 우리의 이목을 끈다. 바로 페루의 '박근혜'라 불리는 게이코 후지모리(이하 게이코)의 선전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흔히 쓰이는 말 중에 '~할 각이다'라는 말이 있다. 젊은 세대의 은어이기 때문에 정확한 정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실례(實例)를 살펴보면 '이런 저런 조건이나 모습을 보건데 어떠한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으로 쓰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은어를 써서 현재의 페루 대선 정국을 다음과 같이 정확히 묘사할 수 있다. "게이코가 대선에서 승리할 각이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여론조사와 같이 게이코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페루 최초의 여성대통령 및 중남미 내 두 번째 아시아계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성(姓), 인종보다 더 이목을 끄는 것은 그녀의 가정사이다. 페루에서 10년간 '신독재'를 펼친 알베르토 후지모리(이하 후지모리)가 바로 그녀, 게이코의 아버지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장기 집권한 후지모리의 통치는 90년대 중남미 정치지형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특이한 사례라 할 수 있다. 80년대 군사독재가 대부분의 중남미국가에서 종식되면서 문민정부들에 의한 민주적 통치가 90년대 들어 붐을 이루었다. 피노체트가 물러났고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주정부가 수립됐다. 그러나 페루의 후지모리는 군부와 결탁하여 친위쿠데타를 일으켰고 90년대 중남미 내 나홀로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갔다. 후지모리 집권기간 페루에서는 행정부가 관여한 인권유린과 부정부패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2000년 후지모리는 세 번째 집권을 위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시비를 제기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리고 승리의 여운은 얼마가지 못했다. 후지모리의 심복 중 하나였던 정보부장 몬떼시노스가 '여소야대' 정국 반전을 위해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모습이 비디오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후지모리는 일본으로 도피했고 '팩스 한 장'으로 페루에 대통령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일본과 칠레를 오가며 도피생활을 이어가던 후지모리는 결국 페루로 송환되어 2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까지도 복역 중이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1990년 7000%를 넘기던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후지모리 집권 2년 뒤인 1992년 두 자리 숫자(57%)대로 꺾였고 외국인 투자도 늘어났다. 한 때 페루의 고산 지대 대부분을 차지하며 위세를 떨치던 무장혁명 게릴라 조직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을 대대적으로 소탕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그래서 일까? 페루 내에서 후지모리를 평가하는 시각 또한 극단적으로 나뉜다. 한쪽으로부터는 '페루의 경제와 안보를 살린 구국의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지만 반대편에서는 '부정부패 및 인권유린으로 점철된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결과 페루 내에는 일정 정도 반(反)후지모리 세력이 형성되어 있다. 반후지모리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 1990년 대선에서 자유주의세력의 대표로 후지모리와 맞붙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는 친(親)후지모리 세력(Fujimorista) 또한 강력한 정치세를 구축하고 있다.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정치인들이 다들 그러하듯 후지모리 또한 고정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1년 대선 당시 정치경험이라고는 한 번의 상원의원 경력이 전부였던 서른여섯 살 여성 정치인이 어떻게 결선투표까지 갈 수 있었을까? 물론 부모의 불화로 7년간 후지모리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녀가 정치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불과 2006년부터다. 결국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번 대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게이코는 지난해 7월부터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뺏긴 적이 없다.

1월 각 기관별 여론조사 결과들을 살펴보아도 게이코는 2위, 3위 후보(페드로 쿠친스키, 세자르 아쿠냐)들에 비해 더블스코어 이상 앞서고 있다. 여론조사회사 입소스(Ipsos)의 1월 보고서를 살펴보면 '반드시 게이코에게 투표하겠다'라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32%에 이른다. 이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불과 10%대에서 한자리 수에 그치는 여타 경쟁후보들에 비해 게이코가 줄곧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상원의원 시절 법안 발의가 단 6건에 그친, 말 그래도 뭔가 보여준 게 없는 게이코로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미지로 대선까지 진출했다 볼 수 있다.

게이코는 지난해 7월부터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뺏긴 적이 없다. 1월 각 기관별 여론조사 결과들을 살펴보아도 게이코는 2위, 3위 후보(페드로 쿠친스키, 세자르 아쿠냐)들에 비해 더블스코어 이상 앞서고 있다.
▲ 페루 대선후보 1월 여론조사 지지율 게이코는 지난해 7월부터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뺏긴 적이 없다. 1월 각 기관별 여론조사 결과들을 살펴보아도 게이코는 2위, 3위 후보(페드로 쿠친스키, 세자르 아쿠냐)들에 비해 더블스코어 이상 앞서고 있다.
ⓒ 안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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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결과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게이코에게 아버지의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Ipsos의 12월 여론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게이코는 '치안'(35%) 및 '빈곤탈출'(32%) 부문에서 타 후보들보다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두 이슈는 아버지 시절 대대적인 치적으로 평가받는 부문이다.

문제는 1차 투표 뒤 뒤늦게 반(反)후지모리 전선을 형성하더라도 현재까지 민심의 추이에 따르면 게이코를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이코와 함께 결선투표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유력후보들 모두 게이코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패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1차 투표 이후 후보 간의 지지선언이나 연대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주 페루 대사관의 1월 여론조사기관별 대선 후보 지지도 분석을 살펴보면 설사 후보 간 연대가 이루어지더라도 본선에서 패할 것으로 보인다. 일대일 대결 시 게이코가 다른 후보군에서 흡수해오는 지지 세력이 타 후보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물론 페드로 쿠친스키와의 대결에서 게이코가 흡수해오는 지지 세력이 산술적으로 뒤지지만 페드로 쿠친스키가 흡수해오는 세력의 가장 큰 부분이 지지율이 한 자릿수 대에 불과한 훌리오 구즈만 지지층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결국 반후지모리 전선이 형성되더라도 결선투표에서 게이코가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일대일 대결 시 게이코가 다른 후보군에서 흡수해오는 지지 세력이 타 후보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물론 페드로 쿠친스키와의 대결에서 게이코가 흡수해오는 지지 세력이 산술적으로 뒤지지만 페드로 쿠친스키가 흡수해오는 세력의 가장 큰 부분이 지지율이 한 자릿수 대에 불과한 훌리오 구즈만 지지층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 각 후보 지지층의 해당 후보 불출마시 대체후보 선호도 일대일 대결 시 게이코가 다른 후보군에서 흡수해오는 지지 세력이 타 후보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물론 페드로 쿠친스키와의 대결에서 게이코가 흡수해오는 지지 세력이 산술적으로 뒤지지만 페드로 쿠친스키가 흡수해오는 세력의 가장 큰 부분이 지지율이 한 자릿수 대에 불과한 훌리오 구즈만 지지층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 주 페루 대사관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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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기간 줄곧 게이코는 자신의 아버지 시절 이루어진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버지의 사면은 절대 없을 거라며 저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게이코는 합헌적(constitutional)이고 합법적(legal)인 방법으로 아버지의 자유를 쟁취하겠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사과 발언들이 진심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다가 당선 이후 본격적인 자신의 색깔을 낼 가능성이 높다. 게이코가 당선되는 순간 사실상 아버지 후지모리에게 정치적 사면이 내려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우려가 반후지모리 세력 전반에서 제기되고 있다. 반후지모리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인 세계적 문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지난해 미주언론사회 71차 정기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쓴소리를 남겼다.

"부패와 독재자의 딸 중 하나를 합법화하는 선거가 될 것인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기서 부패로 언급된 인물은 대통령을 두 차례 지내고 이번에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하는 알란 가르시아이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 알란 가르시아도 2위에서 3위를 왔다 갔다 하는 유력 후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요사는 독재자의 딸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는데, 많은 페루인들이 후지모리가 가장 잔인하고 부패한 독재자였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하다고 비판했다.

페루의 '박근혜', 게이코 후지모리 이번엔 '진짜' 대통령 될수 있을까? 현재까지는 "게이코가 대선에서 승리할 각이다." 페루인들은 요사의 말대로 아버지 후지모리의 기억을 모두 망각한 것일까? 4월 1차 투표가 가까워 온다. 결과는 페루인들의 손에 달렸다.


태그:#알베르토 후지모리, #게이코 후지모리, #페루의 박근혜, #페루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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