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

김성근 감독 ⓒ 한화 이글스


하위권이던 태평양과 쌍방울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고 부진에 빠진 LG를 한국시리즈에 올려 놓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SK 감독으로 재임 중 총 4번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3번의 우승을 일궈내며 SK왕조시대를 열었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을 '야신(野神)'이라 불리게한 대표적인 실적이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팀의 선수들은 시즌 중 강훈련은 물론이고 비시즌 기간에도 '김성근식 지옥훈련'이라 불릴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량을 소화해야 하는 것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김성근식 지옥훈련의 성공 사례로 정근우, 최정 등이 꼽히기도 한다.)

지난 시즌 한화 이글스는 김성근 감독의 현장 복귀와 함께 시즌 내내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전년에 비해 50% 이상 증가한 관중 수(65만7385명)가 대변하듯 최근 몇 시즌과는 다른 경기력을 보여준 것, 팀 성적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혹사 논란의 아이콘이 되다시피한 권혁(112이닝)과 시즌 중 문제가 생기고만 39살 노장 박정진(96이닝), 선발-불펜을 오간 송창식(109이닝), 두 차례 부상끝에 수술대에 오른 윤규진(50.2이닝) 등의 잦은 연투와 과도한 투구 이닝은 김성근 감독의 투수 운용방식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촉발시켰다.

혹사 (酷使) [명사] 혹독하게 일을 시킴.

한국 프로야구의 투수 혹사는 원년시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2연승'의 박철순을 시작으로 장명부, 최동원, 염종석 등 수많은 선수들이 혹사의 제물이 되어 스러져갔다. 당시엔 혹사라는 개념조차 자리잡지 못한 시대였기에 이 모든 것이 투혼이라는 미명하에 양해가 되곤 했다.

투수 혹사는 프로야구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고교 야구에서도 빈번했는데 2000년대 이후에도 한기주나 정영일과 같은 고교 특급 에이스들이 연투와 상식을 넘어서는 투구수를 기록하는 등 미래 없는 투구를 계속했고 그로인해 비롯된 심각한 부상으로 재능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성근 감독의  주요 시즌
태평양 돌핀스
1989년 3위 62승 54패 4무 방어율 3.03 타율 0.247

삼성 라이온즈
1991년 3위 70승 55패 1무 방어율 4.23 타율 0.272

쌍방울 레이더스
1996년 2위 70승 54패 2무 방어율 3.33 타율 0.264
1997년 3위 71승 53패 2무 방어율 3.82 타율 0.269

SK 와이번스 (2011시즌은 제외)
2007년 1위 73승 48패 5무 방어율 3.24 타율 0.264
2008년 1위 83승 43패 방어율 3.22 타율 0.282
2009년 2위 80승 47패 6무 방어율 3.67 타율 0.285
2010년 1위 84승 47패 2무 방어율 3.71 타율 0.274

프로야구 감독에게 있어 최고의 미덕은 바로 우승(또는 포스트시즌 진출)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한 시즌의 반짝 성적을 위해 재능있는
선수를 소모품처럼 활용하는 운용은 최대 160경기(포스트시즌 포함)를 치뤄야 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더이상 통용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

이하에서는 김성근 감독의 주요 시즌을 중심으로 혹사 논란이 발생한 케이스를 순차적으로 되짚어보고자 한다.

1. 1989년 박정현(20세) : 38경기 2.15 19승 10패 2세이브 242.2이닝 17완투

 원조 핵잠수함 박정현

원조 핵잠수함 박정현 ⓒ 박정현


김성근 감독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혹사 논란의 시작은 1989시즌(투수기록 보기) 신인왕인 박정현부터 시작된다. (1984년 신인왕인 OB 윤석환 역시 프로 데뷔시즌에서 57G 146이닝을 투구한 바 있으나 프로야구 초창기인점을 감안하여 본 기사에서는 제외함)

1988년 고졸 우선지명으로 입단해 첫시즌 18.2이닝 7.71로 부진했던 박정현은 1989년 신임감독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마치 이카루스처럼 비상했다.

고졸 2년차인 그는 무려 242.2이닝을 소화하며 38경기(17완투) 19승 10패 2세이브(2.15)로 그해 신인왕을 차지한다. 정규시즌 이후 준플레이오프에서도 14이닝 완봉승 포함  2G  19.1이닝 투구했고 결국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허리통증으로 마운드에 주저앉고 말았다. (박정현은 김성근 감독이 지휘한 1990년에도 191.2이닝을 소화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에이스급 투수들의 전천후 등판이 비일비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허리통증을 참아가며 등판한 박정현의 향후 몸상태에 대한 우려보다는 아름다운 투혼으로 보는 시선이 대세였다.

2. 1991년 김성길 : 52경기 3.30 16승 12패 18세이브 188이닝 3완투

 부시맨이라는 별명으로도 잘알려져 있던 김성길

부시맨이라는 별명으로도 잘알려져 있던 김성길 ⓒ 삼성 라이온즈


김 감독의 혹사 논란이 재점화된 것은 삼성감독으로 부임한 1991시즌이었다. 태평양 시절 약관의 박정현에 이어 이번에는 35세 노장 김성길이 선발, 중간,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등판을 시켜 많은 논란이 야기됐다.

전천후 출격 탓인지 김성길은 그해 엽기적인 기록들을 다수 남겼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와중에 5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했고, 9월 7일 롯데와의 더블헤더에서 같은 날 2승을 거두는 진기록을 남겼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구원 등판해 80구를 던지며 승리투수, 이에 끝나지 않고 3차전 1회 구원 등판으로 198구를 투구하며 13회까지 투구, 플레이오프에서는 2차전 10회 말 구원으로, 3차전 다시 선발 등판해 1실점 완투승을 기록했다. (혹사가 투혼으로 여겨지던 당시에도 김성길의 많은 투구수와 연투에 대해 '저러다 김성길 죽는것 아니냐'며 야유를 보내는 팬들이 있었고 포스트 시즌 이후에는 숟가락을 들 힘조차 없었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1991년 당시 김성길의 나이는 당시로선 선수생활의 황혼기인 35세였고 삼성이 플레이오프에서 조기탈락한 것이 김성길로서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1988~1990년까지 연평균 183이닝을 소화한 35세의 김성길에게 포스트시즌을 포함 200이닝이 넘는 전천후 등판은 치명적이었다.

김성길은 이후 부상과 나이에 따른 기량저하를 이겨내지 못하고 1992~1993시즌 동안 154.2이닝 3승 12패 7세이브라는 평범한 기록을 남긴 후 프로야구계를 떠났다.

3. 1997년 김현욱 (27세) : 70경기 1.88 20승 2패 6세이브 157.2 이닝

레이더스 시절의 김현욱. 레이더스 시절의 김현욱.

레이더스 시절의 김현욱. ⓒ 쌍방울 레이더스 팬북


2003년 11월 한 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연골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과장을 보탠다면 공을 던질 때마다 뼈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날 정도로 뻑뻑하다. 때문에 등판 뒤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른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무릎의 회전을 많이 이용하는 사이드암 투수이기에 그 고통은 더욱 심하다"

이 무릎의 주인은 바로 불펜 20승의 주인공 김현욱이다. 1997시즌 70경기에 등판 157.2이닝을 소화하고 불펜 투수로서 20승 기록을 달성했던 그였지만 그도 부상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97년 말 무릎 십자 인대 수술을 받았고 선수 생활 내내 무릎과 오른 팔꿈치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다행히 그 이후에도 2003시즌까지는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수술 후 이른 복귀와 그에 따른 후유증은 그에게 더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2004시즌 이후 은퇴)

'애니콜'이라 불렸던 1999시즌의 임창용조차 138.2이닝(71경기)을 투구했다는 점과 비교해볼때 1997시즌 김현욱 활용은 어떤 형태로든 정상적이라 보기어려운 투수 운용이었다.

* 1997시즌 투수 기록 보기

4. 2001년 신윤호 (26세) : 70경기 3.12 15승(14구원승) 6패 18세이브 144.1이닝

 슈가맨(?) 신윤호

슈가맨(?) 신윤호 ⓒ LG 트윈스


신윤호는 충암고 재학 당시 촉망받던 고졸 유망주였지만 1994년 입단 이후 좀체 1군 마운드에 자리잡지 못했다. 또한 2군 숙소의 기물을 부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등 사고뭉치로 전락하여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다. 1996년 말 현역으로 입대하여 철원에서 복무했지만 허리 부상으로 의병 제대하였고 1998~2000시즌까지도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진 못한 투수였다. (3시즌간 101.1이닝 소화)

프로선수로서 기로에 선 신윤호는 김성근 감독대행과 조우하며 선수 생활의 전기를 맞게 된다. 시즌 첫 경기를 선발로 뛴 후 바로 불펜으로 전향한 그는 시즌 동안 144.1이닝을 던지며 32세이브포인트(SP)로 구원왕에 올랐다. 그리고 롯데 에이스 손민한과 함께 다승 공동 1위, 승률 1위 등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신윤호는 이듬해부터 팔꿈치 부상으로 급격한 내리막을 겪으며 이후 은퇴할 때까지 단 11승만을 거뒀고 2014년 짧은 복귀 후 소리 소문 없이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 2001시즌 투수 기록 보기

5. 2001년 이동현 (18세) :  33경기 5.37 4승 6패 105.2 이닝
   2002년 이동현 (19세 ) :  78경기 2.67 8승3패 6홀드 7세이브 124.2 이닝

 세번의 수술과 4년의 공백을 이겨낸 이동현

세번의 수술과 4년의 공백을 이겨낸 이동현 ⓒ LG 트윈스


2001시즌의 '신데렐라맨' 신윤호에 이어 2002시즌에는 고졸 2년 차 신인 이동현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2002년 이동현은 78경기에 출장해 124.2이닝을 소화하며 그 해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이동현은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 진통제를 맞아가며 10경기 등판 (22.2이닝) 3승을 거두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포스트시즌까지 포함 이동현이 책임진 2002년 총 이닝수는 147.1이닝으로 고졸 2년차 투수가 감당할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 2시즌동안 149이닝을 소화한 이동현은 2004년 11월 첫 수술인 팔꿈치 수술을 시작으로 2005년, 2007년 총 세 번의 수술을 받았고 4년의 공백기를 지나 2009년에야 1군 무대에 복귀하게 된다.

* 2002시즌 투수 기록보기

6. 2002년 이상훈 (31세) : 52경기 1.68 7승 2패 18세이브 85.2 이닝

 긴 이별 끝에 다시 LG로 돌아온 야생마 이상훈

긴 이별 끝에 다시 LG로 돌아온 야생마 이상훈 ⓒ LG 트윈스


김성근 감독은 올시즌까지 총 12명의 100이닝 돌파 불펜투수(스윙맨 포함)를 배출한 바 있다. 그 리스트에 포함되지는 않았고 2002시즌 당시 이동현 혹사 논란에 가려진 투수가 바로 LG 마운드의 레전드 '야생마' 이상훈이다.

이상훈은 2002시즌 도중  한국프로야구에 복귀했기 때문에 5월 18일에야 첫 등판을 한다. 시즌의 1/5 가량이 소화된 시점에서 등판을 시작한 이상훈이 정규 시즌에 소화한 이닝은 85.2이닝이다. 풀시즌을 치렀다면 110이닝을 기록할 페이스였다.

이상훈은 포스트시즌에선 준플레이오프 2경기, 플레이오프 4경기, 한국시리즈 4경기에 등판했다. 프로야구 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 이승엽에게 통한의 동점 3점포를 허용한 이상훈의 모습에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2002년 포스트시즌 10경기 등판 18.2이닝 투구/ 2002시즌 전체 104.1이닝)

* 2002시즌 투수 기록보기

7. SK 좌완 4인방

 2016시즌에는 그의 투구를 다시 볼 수 있을까?

2016시즌에는 그의 투구를 다시 볼 수 있을까? ⓒ SK 와이번스


SK 왕조 시대의 핵심 전력인 벌떼 마운드의 중심에는 좌완 4인방이 있었다. 좌완 4인방 중 현재 1군 무대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며 프로선수로서 금전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불펜 FA 최고액을 갱신한 정우람 뿐이다. ( 2011년말 FA 이승호 4년 최대 24억)

2009~2011년간 293.1이닝을 책임진 전병두는 2011년말 어깨 회전근 수술 이후 4년째 기약없는 재활이 이어지고 있다. (2016시즌 복귀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있지만 가능성은 미지수다.) 2009~2011년간 339이닝을 소화한 고효준은 2011년말 팔꿈치 수술과 군복무 후 2014시즌 복귀했지만 현저히 떨어진 구위로 인해 전성기 시절의 모습은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전병두(25세) 49경기(11선발) 3.11 8승 4패 8세이브 1홀드 133.1이닝        
2011년 전병두 (27세) 51경기(4선발) 3.80 3승 3패 8홀드 3세이브 92.1이닝

2009년 이승호(28세 68경기 4.42 7승 5패 7홀드 6세이브 106 닝
2010년 이승호(29세) 65경기 4.22 6승 4패 5홀드 20세이브 89.2이닝

2009년 고효준(26세) 39경기(19선발) 4.33 11승 10패 1홀드 2세이브 126.2이닝          2010년 고효준(27세) 51경기(10선발) 5.15 8승 6패 1홀드 2세이브 106.2이닝
2011년 고효준(28세) 35경기(16선발) 4.26 5승 8패  105.2이닝 

2010년 정우람(25세) 75경기 3.53 8승 4패 18홀드 2세이브 102이닝
2011년 정우람(26세) 68경기 1.81 4승 25홀드 7세이브 94.1이닝

이중 이승호는 2009시즌 불펜 투수 중 유일하게 4, 5연투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연투 총 15회 중 3연투 4회를 기록했으며 4연투, 5연투는 각각 1회를 기록했다.

* 2009시즌 투수 기록보기

8. 한화 이글스 권-창-진

 시즌 후반 지친 모습이 역력했던 권혁

시즌 후반 지친 모습이 역력했던 권혁 ⓒ 한화 이글스


2011시즌 중 SK 프런트와의 갈등 끝에 중도 퇴진했던 김성근 감독이 1인 시위까지도 불사한 열성적인 한화 팬들의 요청에 힘입어 2014년말 한화 감독으로 부임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명장이라던 김응룡 감독마저 실패한 상황에서 3시즌 연속 최하위의 팀을 구원할 수 있는 적임자는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뿐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 체제의 한화는 최하위의 수렁을 벗어나 10개팀 중 6위를 기록했다. 감독 선임 당시의 기대치에는 못미쳤지만 한화 이글스가 암흑기에 접어들기 직전인 2008시즌(승률 0.508·5위)) 이후 가장 높은 승률(0.472)과 순위(6위)를 기록하며 시즌 막바지까지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을 다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2015시즌 역시 혹사 논란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김성근 감독 자신은 나름대로의 투구수, 소화 이닝, 등판 간격 등을 관리하고 있다고 인터뷰를 통해 수차 밝힌 바 있지만 후반기에 합류하며 압도적인 에이스의 면모를 과시했던 로저스조차 혹사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해 8월 6일 첫 등판한 로저스는 데뷔 후 2경기를 완투, 완봉으로 장식했고 9월 30일 마지막 경기 등판까지 총 10번을 선발로 등판했다. (경기당 투구 이닝 7.5, 평균 투구수 113개) 로저스의 4일 휴식 후 선발 등판은 6차례였다. 올시즌 상대한 7개팀 중 패전만을 기록한 NC(2G 2패 9이닝 9실점)를 상대로는 선발 등판 두차례 모두 공교롭게 4일 휴식 후 등판이었다.

1승이 급하던 당시의 상황과 투자 금액을 감안할 때 이해할 수 없는 기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느닷없는 등록 말소로 잔여 시즌 로저스 활용 일정이 꼬였음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정상적인 로테이션으로 기용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로저스 상세기록 보기)

불펜 혹사 논란은 마리한화 열풍이 불던 시즌초부터 시즌 막바지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송창식은 64경기(10선발 포함)에서 109이닝을 던지며 선발, 불펜을 오가며 전천후로 등판했고. 39세의 노장 박정진은 불펜으로만 76경기에 출장 96이닝을 소화했고 권혁은 78경기에 불펜으로 등판해 불펜 투수 중 최다이자 본인 커리어 최다인 112이닝을 던졌다.

권혁의 100이닝 돌파로 김성근 감독 휘하 100이닝 이상을 투구한 불펜투수(스윙맨 포함)는 11명에서 12명으로 늘었고 시즌 불펜 이닝 1· 2위 선수는 다시 한 번 김성근 감독이 배출했다.

2015년 권혁(32세) 78경기(1) 4.98 9승 13패 17세이브 6홀드 112 이닝
2015년 송창식(30세) 64경기 10선발 6.44 8승 7패 11홀드 109 이닝
2015년 박정진(39세) 76경기(3) 3.09 6승 1패 1세이브 15홀드 96 이닝

와일드카드 획득에 올인한 듯한 불펜진 가동에도 불구하고 가을 야구 진출에는 실패했고 필승조의 전천후 투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한 팀 방어율은 5.11로 10개 구단 중 9위를 기록했다. 수비 무관 평균 자책점(FIP)은 5.43으로 10개 구단 중 꼴지였다.

승리를 향한 투혼과 희생은 까만 하늘을 수놓는 불꽃처럼 한순간 찬란한 아름다움을 남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비롯된 혹사가 누적되고 깊어지다 보면 한 선수의 야구 인생이 단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국내외의 수많은 사례들이 알려준다.

어떤 이들은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어 한화를 택했다는 권혁과 SK 시절 시즌 100이닝을 넘긴 정우람의 한화행 등을 두고 선수가 원한다면 혹사가 아닐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수가 원했다고 한들, 더나아가 그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다고 해서 혹사가 혹사가 아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혹여 선수가 무리한 출장이나 등판을 원하다하더라도 그것을 적절히 관리하며 긴 시즌을 운용하는 것이, 현대 프로야구에서 요구되는 감독의 역할이다.

단기간의 성적에 집착한 무리한 선수 기용, 선수가 원했다는 식의 변명이 통용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결과와 승리에만 도취되어 과정과 절차에서 선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반복되서는 안된다.

한국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다수 팬들이 원하는 것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남기고 사라지는 불꽃이 아니라, 늘푸른 소나무와 같은 모습과 실력을 긴호흡으로 함께 하는 것이다.

정우람, 심수창, 송신영, 이재우 등 불펜의 질과 양을 보강한 김성근 감독이 2016시즌에는 어떤 투수 운용을 보일지 지켜보도록 하자.

기록 출처 : KBReport.com, KoreaBaseb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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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KBReport.com (케이비리포트)에도 송고했습니다.
(글: 곽동호/ 기록출처: 프로야구 통계기록실 KBReport.com, KoreaBaseball.com )

객원 필진의 칼럼은 프로야구 통계미디어 케이비리포트의 공식적인 입장이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반론을 원하시는 경우 kbr@kbreport.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김성근 혹사 야신 권혁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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