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스런 한파와 폭설로 몸은 물론 마음마저 움츠러들었던 2016년 겨울. 오랜만에 모여 앉아 식구들과 훈훈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설 연휴가 목전이다. 이번 설날엔 객지에서 외롭게 맞서야 했던 추위와 내외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경제적 상황을 잠시나마 잊고 혈육의 따스함에 기대보면 어떨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각자의 일정에 쫓기는 현대인의 특성상 가족·친구와 함께 영화 한 편 보기가 힘든 시대. 모처럼 맞이한 긴 연휴에 부모님과 자녀, 또는 연인과 더불어 '영화의 향기'에 빠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명절 즐기기'의 한 방법이 될 듯하다. 아래 그에 어울리는 영화 4편을 추천한다.

부모님에게 추억을 돌려드릴 <오빠 생각>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게 할 <오빠 생각> 포스터.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게 할 <오빠 생각> 포스터. ⓒ NEW


인간의 삶을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면 그 첫 번째 단계는 미래를 꿈꾸는 시절일 것이다. 두 번째 단계가 생존을 위해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시기라면 마지막은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의 단계가 아닐까.

꿈 많던 소년·소녀시절을 지나,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자식들을 키우며 이제는 늙어버린 부모님께 과거의 향수를 돌려드리는 것도 현금 봉투를 건네는 것만큼이나 세련된 선물이 될 듯하다. 그에 어울리는 영화가 이한 감독이 연출한 <오빠 생각>이다. 누구 할 것 없이 가난했고, 힘겨웠던 1950년대. 같은 민족의 가슴에 총구를 겨눠야 했던 불행한 역사 한국전쟁은 사람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희망은 싹트고 있었다. 난리 통에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들과 함께 미래의 희망을 노래하려는 한상렬(임시완 분)과 박주미(고아성 분)의 모습은 우리의 부모세대가 지나온 과거 모두가 슬픔과 절망만은 아니었음을, 그 안에서 웃음과 생의 의미를 찾아가고자 했던 몸부림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한국전쟁 당시 실존했던 어린이 합창단을 소재로 제작된 <오빠 생각>은 얼마 전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 역을 맡았던 임시완과 영화 <괴물>과 <설국열차>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고아성의 만만찮은 연기력을 만날 기회이기도 하다. 영화가 사실적으로 구현해낸 1950년대 과거 모습에서 부모님은 고무신을 신고 단발머리 찰랑거리던 그들의 어린 시절과 만날지도 모른다.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쿵푸팬더 3>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좋은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3> 포스터.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좋은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3>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초등학교 저학년들까지 4·5개의 학원에 다니며 바쁘게 살아가는 시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사라진 21세기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기 싫지만, 또래의 이웃집 아이들을 보면 자기 아들과 딸만 뒤처질 것 같은 걱정에 또 아이를 다그치게 된다.

1년에 몇 번 없는 명절 때만이라도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건 어느 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할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여기에 아버지와 엄마의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가는 즐거움까지 보너스로 준다면 아이의 미소는 더 크고 환해질 듯하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영화계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여인영 감독의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3>는 귀여운 캐릭터와 흥미로운 이야기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눈길까지 사로잡는다. 그런 까닭에 전작 <쿵푸팬더> 1편과 2편은 각각 500만 명 안팎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애니메이션의 특징이라 할 비현실적이지만 아름다운 영화적 배경과 다이내믹한 캐릭터들의 몸짓은 이번 3편에서도 여전하다.

평화로운 판다 마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주인공 '포'. 평소에는 먹을 것만 좋아하고 한없이 덜렁대던 포가 마을을 위협하는 악당 '카이'를 막아낼 쿵후 달인들을 길러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최고의 쿵후 마스터가 된다는 동화적 설정이 재미있다. 한편, 포의 목소리를 연기한 할리우드 배우 잭 블랙은 최근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특유의 익살과 표정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연인과 함께 사랑의 의미 되짚어볼 <캐롤>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고 존재하는 것인가. <캐롤>의 포스터.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고 존재하는 것인가. <캐롤>의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인간이 사랑이라는 마법에 빠지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매혹스러운 순간은 찰나다. 왕가위 연출의 영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은 장만옥이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오는 그 짧은 순간에 사랑에 빠진다. 일시에 타올랐다. 순식간에 꺼지는 불꽃. 사랑이란 이름의 불꽃에 휩싸인 사람들은 행복하면서 동시에 불행하고, 빛나면서 동시에 어둡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비단 배우만이 아닌 카메라가 포착한 모든 사물의 숨소리를 들려주는 미시적인 연출로 일가를 이룬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 <캐롤>. 영화는 바로 이 불꽃처럼 숨 가쁜 사랑에 밀착해 들어간다. 여기서 사랑이란 비단 이성 간의 감정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동성 간의 사랑도 얼마든지 뜨겁게 타오르는 화염일 수 있다.

'동성애'라는 단어가 지금보다 훨씬 더 금기에 가까웠던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에서 점원과 손님으로 처음 만난 테레즈(루니 마라 분)와 캐롤(케이트 블란쳇 분)은 단숨에 서로에게 매료당했음을 느낀다. 이혼 소송 중인 유부녀와 남자친구의 사랑에 확신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의 만남.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이성과 견딜 수 없는 끌림이란 감정 속에서 둘은 어떤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온 연인은 처음 사랑을 시작하던 때의 설렘을 쉽게 잊는다. 그러니, 연애가 시들해지고 상대방에 대한 관심도 옅어진다. <캐롤>은 그의 사소한 손짓 하나에 영혼의 흔들림을 느끼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아주 오래된 연인들'에게 어울리는 영화다.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 아내와 함께 <검사외전>

 강동원·황정민 주연의 영화 <검사외전> 포스터.

강동원·황정민 주연의 영화 <검사외전> 포스터. ⓒ (주)쇼박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명절 준비의 많은 부분은 여자들, 그중에서도 며느리의 몫인 경우가 아직은 많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풀어줄 방법을 고민하는 남편들이라면 황정민과 강동원이 주연한 <검사외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보편적 시각에서 판단할 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사(황정민 분)와 사기꾼(강동원 분)이 짝을 이뤄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인 조직폭력배와 부패한 정치인을 심판한다는 설정. 우선 이 설정 자체가 눈에 띈다. 경찰의 수사를 지휘해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사가, 그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쓰고 징역 15년을 선고받는다는 것이 더없이 비현실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때로 영화란 즐거운 허구일 수도 있는 법 아닌가.

이번 설 연휴 시간 보내기용으론 <검사외전> 만한 게 없을 것 같다. 이는 스트레스 해소용 영화로도 제격이란 이야기.

<국제시장>에서 시작해 <베테랑>을 거쳐 <히말라야>까지 3회 연속 메가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황정민의 질주가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질지 점쳐 보는 것은 <검사외전>의 또 다른 재미다. 여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키 크고 잘생긴 배우' 강동원과의 만남은 명절 준비에 육체와 정신 모두가 피곤했던 아내의 힘겨움을 적지 않은 부분 위로해 주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도 함께 실린 원고를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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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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