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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즈음에 어딘가에 가면, 내가 꼭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일하고 있는 분들에게 "고생하시네요, 좋은 설 보내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일이다. 20살 설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쉬었지만, 21살 설에 나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난 당시 주말 알바였는데, 기억하기로 그때 설 연휴는 주말이었다. 22살 설에는 군에 있었고, 23살 설 연휴에는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설 연휴에 알바를 하고 있노라면, 손님이 많아도 짜증이 나고 손님이 없어도 짜증이 난다. 손님이 많으면 설날이라 좀 여유롭게 일을 하고 싶은데 손님이 많아서 짜증이 나고, 손님이 없으면 손님도 없는데 왜 나는 알바를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어 짜증이 난다. 그렇게 하루 받을 일당을 계산하며 머리를 굴리고, 겨우 그 돈 받으려고 남들 다 쉴 때 일하고 있구나 한숨이 푹 쉬어진다.

그렇게 기운이 착 가라앉아 알바를 하고 있노라면, '설 연휴인데도 수고하시네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라는 덕담을 남기고 가는 손님들이 으레 있다. 그 말을 듣고 나면 고개를 번쩍 들고 미소를 짓고는 웃으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며 '그래도 오늘 괜찮구나'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다짐하곤 했다. 그 이후로 설 연휴나 추석 연휴에 돈을 얼마를 받더라도, 일을 하며 큰 숨을 내쉴 아르바이트생들을 마주하게 되면 꼭 나도 마찬가지의 인사를 보내게 됐다.

그래,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어야만 한다

칭찬, 걱정과 같은 말은 미소를 짓게 한다.
 칭찬, 걱정과 같은 말은 미소를 짓게 한다.
ⓒ 알바천국 홍보 동영상 <마음을 더하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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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설날 알바는 어떻게 생각하면 그리 대수로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근무하는 날짜에 운이 나빠 설 연휴가 끼면 '에라이'라고 한 번 내뱉으면서 그냥 근무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오히려 설 연휴 아르바이트를 통해 나름의 목돈을 쥐어보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허나 설 연휴나 추석(그간 내가 아르바이트 할 때마다 추석도 어김없이 근무 날짜에 속하곤 했다) 연휴에 알바를 할 때 마주하는 것은 '나는 이런 때에도 아르바이트나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고, 그 생각은 유쾌하지 않다.

그 생각은 '왜 나는 금수저가 아니라서 이 모양이냐'라면서 부모님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왜 나는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할까'라는 의문이고, 그 의문은 '나는 고작 요 정도 사람인가' 싶은 의문이다. 주말에도 쉬지 않는 이 나라에서 그나마 전 국민의 대부분이 쉬는 이 시점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마주하는 의문이다.

물론 주말이든, 설이든 추석이든 어디에 있는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말 그대로 전 국민 100%가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허나 단순한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동시에 그 연휴 때 일하고 받을 일급이 떠오르는 것이다. 차라리 어딘가의 정직원이었고, 일해야 해서 일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아니면 '설 연휴에는 일을 못하겠네요'라고 농담이라도 던져 볼만한 위치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끔찍한 마음'을 녹여주는 인사 한마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 최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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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설 연휴가 내가 일해야 되는 날짜니까, 직원이 아무런 언질이 없어도 그 설 연휴에는 어김없이 나와서 별 대수롭지도 않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 내 위치는 고작 그 정도라는 것. 그 끔찍한 생각을 그나마 녹여주는 건 "설 연휴에도 수고하시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였다. 나 역시 그 대수롭지도 않은 인사 한마디를 건네며, 설 연휴에 일하는 '나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닌' 아르바이트생들이 조금이나마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이 미소를 지으면 나도 이번 설에는 미소를 지으며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품어보면서.

지난 1월 31일, 아르바이트를 찾다 보니 설 연휴 대목 알바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설 연휴 때 새벽부터 나가서 10시간, 12시간 일을 하고나면 60~70만 원이 들어온다고 내게 속삭이는 문구들. 다른 아르바이트로 70만 원을 벌려면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나.

그 효율을 따지며 지원버튼을 누르거나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다가도, '에이…' 하며 그냥 넘겨버린 건 그래도 이번 설에는 쉬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무책임하게 지나보내면서 '설에는 돈 안 쓰고 집에만 박혀 있으면 되지 않을까, 연휴 끝나고 빡세게 벌지 뭐'라는 것이다.

설날 단기알바 홍보문구
 설날 단기알바 홍보문구
ⓒ 알바몬 사이트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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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 설에도 난 어딘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든, 하지 않든 누군가는 설 연휴에도 어김없이 문을 열어야 하는 곳에서, 아니면 설이 대목인 곳에서 속으로 욕을 한마디 뱉고,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한마디 건네야지. 내가 그들에게 돈을 쥐어주며 고향에 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 한마디로 1분이라도 미소 짓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누군가도 내게 그런 인사를 건네주기를 바라면서.


태그:#최효훈, #설 연휴, #설 단기알바, #명절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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