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 역의 배우 이혜리가 27일 오전 서울 성수동의 한 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 역을 맡은 혜리. 극중 모습과 실제 모습이 상당히 비슷하다. 혜리는 자신이 출연한 예능 프로를 다시 보며 캐릭터를 잡아갔다. 덕선의 참고자료가 혜리 자신이었던 셈. ⓒ 이정민


수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쳤던 혜리의 눈시울이 순간 붉어졌다. <응답하라1988>(이하 <응팔>) 1화에 등장한 덕선이의 생일 파티 장면을 언급하면서다. "덕선이로서도 혜리로서도 가장 중요한 신이었다"며 애써 웃으며 설명한다.

어쨌든 드라마는 끝났고, 덕선이 역시 떠나보내야 한다. 27일 서울 성수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혜리의 눈은 붉어지거나 맑기를 반복했다. 그만큼 <응팔>이 그에게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커보였다. 아이돌 가수 7년차, 연기자 생활 5년차. 혜리는 분명 이 작품으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혜리가 말하는 덕선의 마음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 역의 배우 이혜리가 27일 오전 서울 성수동의 한 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변에서 오지랖 좀 그만 부리라고 타박할 정도로 혜리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것저것 챙기길 좋아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성격. ⓒ 이정민

대부분이 덕선의 사랑에 집중했다. 극중 사랑의 경쟁자였던 택(박보검 분)이와, 정환(류준열 분)이의 상황과 대사에 따라 함께 안타까워하거나 설레곤 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덕선이 진짜 마음은 '어남류'아니었냐고. 어차피 남편이 택이로 결정난 이상 솔직하게 얘기해보라 몰아붙였다.

"어떤 결말이었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죠?"라고 그가 되물었다. 그의 큰 눈이 흔들리면서 더욱 커졌다. 아뿔싸. 홀로 고민하던 이 착한 덕선이를 곤경에 빠뜨린 건가.

"어릴 때의 자기 마음을 어느 누가 정확히 알까요. 정환에 대한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요. 다만 '남의 마음 말고 네가 좋아하는 사람 찾으라'는 친구의 말에 깨달은 거죠. 알고 보니 덕선이는 초반부터 택이를 의식하고 있었어요. 왜 춥게 입고 다닐까, 몸에도 안 좋은 약을 왜 계속 먹나, 이렇게 신경 쓰면서도 덕선이조차 의식 못하고 있었을 거예요. 저 역시 처음부터 남편을 알고 시작한 게 아니었고, 마지막에 시청자분들을 설득 못한 게 있으니 아쉽긴 하죠.

그리고 솔직히 그 친구들의 멋있는 부분만 보이니 시청자 분들이 좋아하는 거지, 현실 속 인물이라면 다들 감정 과잉이에요! 정환이는 너무 까칠하고, 택이는 바둑밖에 모르고, 선우는 음... 성보라만 좋아하고! 이 넷(선우, 정환, 택, 동룡)을 섞을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누구든 결혼하겠습니다!(웃음)"

아깝다!

촬영하면서 몇 번을 울었다지만 사실 전부 사랑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피지도 못한 정환의 순정에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지만, 혜리를 울린 건 덕선을 품은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연기할 때 진짜로 울면 안된다고들 하시는데 난 진짜로 울곤 했다"며 "아빠(성동일 분)가 붙여주던 케이크 촛불이 그렇게 슬퍼 보였다"고 그가 말했다.

"시원섭섭하다! 이 말이 가장 맞을 거 같네요. 스스로 고생했다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노력한 만큼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응팔>은 사랑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었어요. 다들 덕선 남편에 집중하시니 오히려 전 서운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마음이에요. 가족 간, 이웃 간, 친구 간의 멋진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한 회 안에도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고요. 남편 찾기에 가려져 그런 일화들이 가려진 거 같아 좀 아까워요. 아깝다는 말이 맞겠네!

가족 이야기, 특히 제 입장에선 동생이 있는 장녀인데 류혜영 언니(성보라 역)와 많이 싸우는 덕선이를 연기하면서 오버하는 거 아닌가 걱정도 했어요. 근데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더라고요. 다들 이렇게 싸우면서 정들고 친해지는구나 싶었죠. 원래 가족 중 자매 관계가 제일 친하고 애틋한 거 같아요. 혜영 언니와도 그런 면을 느꼈어요. 언니 결혼식 장면에서 원래 우는 신이 없었는데, 전 친언니가 결혼하는 것처럼 울었고 그걸 본 언니도 엄청 울었어요."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 역의 배우 이혜리가 27일 오전 서울 성수동의 한 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드라마 이후 영화 도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영화요? 제가 해보지 못한 종목... 아니 분야잖아요!"라며 "좋은 시나리오와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꼭 해보고 싶어요"라고 그가 답했다. ⓒ 이정민


왜 혜리였을까?

또래인 박보검을 제외하면 쌍문동 친구들로 등장한 나머지 배우들은 혜리와 나이 차가 꽤 있다. 드라마를 위해서라도 혜리는 고경표, 류준열, 이동휘 등과 친해져야했다. "진짜 일부러라도 촬영 전까지 많이 만났다"며 혜리는 "오히려 너무 친해져서 감독님이 현장서 '촬영 좀 하자'고 외칠 정도였다"고 전했다.

<응팔> 캐스팅 때로 돌아가 보자. 이미 기존 시리즈로 소위 대박을 쳤던 드라마다. 왜 혜리였을까? 이 물음에 혜리도 함께 갸우뚱거렸다. "누가 봐도 이해가 안되지 않나? 설마 하는 마음이 컸다"고 그가 고백했다.

"캐스팅 직전 누리꾼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이해가 갔어요. 저도 '내가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오디션을 봤고, 감독님을 만났죠. 그래서인지 더 솔직하게 임했던 거 같아요. 그 부분을 좋아하시지 않았을까요? 저보고 덕선과 비슷한 거 같다고 또 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덕선이가 잘 웃고 울고 천방지축 같은 소녀잖아요. 그런 밝은 부분은 저도 비슷하다 느꼈어요. 근데 이 친구가 덤벙거리고 바보 같아요. 멍청하고! 어? 이건 전혀 아닌데? 난 되게 똑똑한데!(웃음)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 역의 배우 이혜리가 27일 오전 서울 성수동의 한 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혜리의 부모님은 <응답하라 1988> 덕선의 나이와 동갑이다. 상당히 이른 나이에 자녀를 낳은 셈이다. 혜리는 "그동안 딸이 안 나오면 드라마도 잘 보지 않았던 분들이 <응팔>에서는 딸이 안 나오는 장면에도 좋아하시더라"고 당시 일화를 전했다. ⓒ 이정민

감독님이 '네가 출연한 예능 프로를 다시 돌려보고 와라' 이래서 봤더니, 진짜 그런 모습이 있는 거예요. <진짜 사나이>를 보면 왠지 어깨가 긴장해서 올라가 있고, 눈치도 많이 보고요. 왜 저때 저런 말을 했을까 하는 순간도 있더라고요. 좀 엉뚱하다고 할까. 이런 느낌이구나 싶어서 준비를 해갔죠."

덕선이의 참고 자료가 혜리 본인이었던 셈이다.

5퍼센트의 자신감

특유의 밝고 착한 성격에 현장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극중 엄마였던 배우 이일화는 "지금껏 내 딸 연기를 했던 친구 중 최고"라고 말하기도 했고, 선우 엄마 김선영 역시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은 귀여운 친구"라 표현했다.

이 말을 전하자 혜리는 "오히려 실제 집에서 모습은 성보라 같다"고 답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쉽게 못하는 어찌보면 진짜 일반적인 딸"이라며 그는 "오히려 덕선이를 연기하며 부모님에게 잘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고 덧붙였다.

다만 친구 관계는 그 누구보다 돈독하다. 그의 베스트 프렌드는 초등학교 때 친구 4명과 중학교 때 친구 3명이라고 한다. 혜리는 "인터뷰 전날 혼자 저녁 먹기 싫어서 친구들을 불러냈는데 전부 나와 줘서 감동이었다"며 "사는 곳이 다들 경기도 광주라 춥다고 안 나올 줄 알았다"고 자랑 아닌 자랑도 했다.

"정말 가족 같은 친구들이에요. 어제(26일)는 그래서 제가 고기를 쐈답니다!(웃음) 이들이 있는 게 참 행복해요. 처음 데뷔했을 때 제 목표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거였어요. 이제는 좀 더 넓어져서 절 사랑해주시는 팬들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친구들 이야기를 떠올리며 혜리는 자신을 "공부만 하던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러니까 남들처럼 한 번쯤 생각하고 스치듯 연예인을 품다가도 자신을 위해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나온 가족을 생각하면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러다 국민적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됐다. 혜리는 "모든 게 흘러가듯 하나씩 이뤄졌다"고 말했다. "특정한 목표를 정하지 않고 다가오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하고 싶은 걸 찾게 됐다"며 그는 "하면 할수록 또 다른 걸 하고픈 마음이 드니 이렇게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걸스데이 활동 때 3년 만에 가요 프로 1위를 하는 등 다들 고생했어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뭔지, 이걸 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죠. 지금은 무대와 연기가 좋아요. 좋은 걸 하는 게 참 행복한 일이에요. 물론 많이 부족해요. <응팔>을 통해 자신감이 딱 5프로 정도 생겼어요. 100중에 빵이었다면 5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할까(웃음). 0은 막막하지만 5는 의미 있잖아요. 일단 시작했으니까요. 나머지 95! 채워가야죠."

0은 무(無)고 5는 유(有)다. 그는 이번 드라마로 자신감에 있어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분명 <응팔>의 덕선은 그에게 꼭 맞는 옷이었다.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 역의 배우 이혜리가 27일 오전 서울 성수동의 한 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모와 친구가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 가수이자 배우인 혜리의 소박한 목표다. 이젠 조금 더 목표가 커졌다. "팬들, 공연장을 찾는 분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유난히 이때 눈빛이 반짝였다. ⓒ 이정민



혜리 걸스데이 응답하라 1998 류준열 응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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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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