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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4대 부문 개혁으로 우리 사회의 기틀을 새롭게 세워나가면서 경제에 새로운 성장의 활력을 불어넣고, 여러분이 헌신해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올바로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52주년 '경우의 날' 기념식 연설문의 일부다. 박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확고한 국가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통일의 시작"이라며,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이 잘 사용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말이 타당한 말일까. 수차례 국정교과서의 정당성을 밝힐 때마다 쓴 박 대통령의 이런 표현은 틀린 말이다. 그런 표현자체는 쓸 수 있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를 고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자랑스러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 자체가 역사 왜곡

<말하지 않는 한국사>(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펴냄 / 2015. 12 / 255쪽 / 1만4800 원)
 <말하지 않는 한국사>(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펴냄 / 2015. 12 / 255쪽 / 1만48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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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표현을 들을 때 자칫 이 표현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그 심각성을 놓칠 수 있다. 그 어느 나라의 역사도 '자랑스럽다'거나 '부끄럽다'는 표현으로 말하면 안 된다. 역사는 그냥 사실이고 역사일 뿐이다.

부끄러운 이야기도 있고, 자랑스러운 이야기도 있다. 그게 역사다. 역사는 거짓을 말하면 안 된다. 역사는 말하지 않는 것이 있어서도 안 된다. 치장해도 안 되고, 빼놓아도 안 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일고 있는 역사 교과서를 고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틀린 이유다.

정부가 되었든, 역사학자가 되었든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기술하는 순간부터 역사는 왜곡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임나일본부설(일본의 주장으로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설),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를 들며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 역시, 정부의 입맛에 맞게 우리 역사를 고치겠다는 발상을 하는 한 일본과 다를 바 없다.

최성락은 그의 책 <말하지 않는 한국사>에서 "한국 역사에도 분명 뒤틀린 부분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우리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의로 누락된 부분들'을 찾아내 사실 대로 알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어떤 나라든 나쁜 역사는 빼놓고 좋은 역사만 기록하려고 할 수 있다.

<말하지 않는 한국사>는 의도적으로 가려졌거나 왜곡된 사실들을 찾아 역사를 다시 읽게 만드는 책이다.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는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금기되는 사건이다. 중국만 빼놓고 다른 나라에서는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런 왜곡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다소 왜곡된 교과서로 역사를 배웠다. 그러나 끝까지 왜곡된 역사가 정설이 되진 못한다. 일례로 나는 고등학생 때 유신헌법이 일본의 메이지유신에 버금가는 한국적 민주주의 헌법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아는 유신헌법은 그냥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독재헌법일 뿐이다.

역사는 시간이 말한다. 역사는 역사가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참 위험한 발상이다. 다소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기술이 있다 해도 역사는 시간에 맡기고 역사에 맡겨야 한다. 책은 이에 대하여도 아래와 같이 말한다.

"설사 현재의 검정교과서가 다소 편향적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나서서 한국사에 대해서 구미에 맞는 관점으로만 전해 주려 하게 되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말하지 않는 한국사> 8쪽

뒤틀린 한국사, 바로 읽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기념촬영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기념촬영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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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역사가 말하지 않는 왜곡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작은 지면에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감명 받았던 일부 내용만 소개해 보겠다.

먼저 우리는 조선시대 일본 침략을 기습 침략으로 알고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당한 건 맞지만 기습 침략은 아니다. 일본이 명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조선으로 들어온다는 데도 조선정부가 이를 무시했다. 명나라는 우리가 일본의 침략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이 없어 차라리 조선을 의심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간신 원균'과 '충신 이순신' 논리도 많이 왜곡되어 있다. 후배 이순신을 직속상관으로 모시게 만든 조선정부의 잘못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저자는 "원균이 성격이 이상해서 이순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게 아니다"라며 "이런 경우에는 어느 누구도 버티기 힘들다"고 말한다.

좀 충격적일 수 있는 내용도 있다. 일제강점기는 완전한 암흑기요 침탈과 탄압의 역사이기만 한 것일까. 우리 역사는 일제 때 문물이 발전했다고 하면 대역 죄인이 된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다. 발전과 일제의 만행은 별개의 문제다. 이젠 일제 때 수준이 좋아졌다는 점도 말해야 한다.

"한국의 역사는 일제강점기가 완전히 암흑기였던 것으로만 묘사한다. '일제 강점기 때 발전했다'라든지 '보다 잘살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다. (중략) 경제적으로 나아지는 것은 나아지는 것이고 독립은 독립이다. 경제적으로 보다 잘 살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 할 수는 없다."- <말하지 않는 한국사> 112-113쪽

너무나 지당한 말인데 우리 역사는 그렇게 쓰고 있지 않다. 책은 또 조선시대에 탐관오리나 아전들의 횡포가 심했던 것이 몇몇 나쁜 인간들의 횡포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500년 동안 뇌물을 받고 부정부패를 하는 것이 암암리에 시스템화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별로 다르지 않은 시스템에 의해 이 나라가 움직인다.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선거 때만 되면 이어지는 줄서기, '친박'이니 '비박'이니 심지어는 '진박'까지. '문의 사람'이니 '안의 사람'이니 하는 건 물론, 더 나아가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까지. 그들이 특별히 나쁘고 좋은 사람들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문제가 분명하다.

또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6.25전쟁 때 사망자 중 대부분 민간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교과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다. 15만의 한국군이 희생당한 반면 민간인은 압도적으로 많은 77만이었다. 왜 그럴까. 남과 북의 점령지가 바뀌면서 공산주의자와 반공주의자가 서로를 숙청했기 때문이다.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많았던 이유는 전투 행위 때문이 아니다. 한국전쟁은 민간인이 민간인을 죽이는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이 참혹한 이유는 단순히 남과 북 구도의 싸움이라서가 아니라 민간인들끼리 서로의 동족을 죽이는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 <말하지 않는 한국사> 136쪽

끔찍한 일이다. 다시는 이런 역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역사책을 바꾸려 할 게 아니고 지난 역사를 사실적으로 보며 역사의식을 바꾸고 앞으로의 역사를 바꿔야 한다.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박 대통령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위험한 것은 그런 시도가 아니라 역사책을 바꾸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말하지 않는 한국사 -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 역사의 불편한 진실

최성락 지음, 페이퍼로드(2015)


태그:#말하지 않는 한국사, #최성락, #역사왜곡, #자랑스러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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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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